[아이티투데이 이경탁 기자] “대국에서 좋은 모습이나 내용을 보여줬어야 되는데 알파고에게 무력한 모습을 보여 죄송하다. 모든 것이 내 능력이 부족해서 그런 것 같다. 이는 인간의 패배가 아닌 이세돌이 패배한 것이다” 이세돌 9단이 지난 12일 3국에서 알파고에게 3연패를 하며 남긴 말이다.

그리고 다음날 13일 열린 4국에서 이세돌 9단은 180수만에 알파고에게 불계승을 거두며 인류 대표로서의 자존심을 회복했다. 다른 사람이 아닌 바로 이세돌 9단이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이세돌 9단은 인공지능 기계 알파고와의 연패 충격에 흔들릴 수 있는 상황이었지만 전혀 흔들리지 않는 의연한 모습을 보여줬다.

▲ 이세돌 9단 기계 알파고를 상대로 인간의 의지를 보여줬다 (사진=구글)

이세돌 9단(백돌)은 4차 대국 초반 알파고(흑돌)를 상대로 3국과 달리 무리수를 두며 공격을 하기 보다는 안정적인 실리 바둑을 지향했다. 지난 대국에서 알파고가 초반 난전과 전투에 굉장히 강한 모습을 보여줬기 때문이다.

이세돌 9단의 표정은 굉장히 긴장한 모습을 보여줬던 지난 대국과 달리 편안한 모습이었다. 마음을 비운 듯 바둑 천재 이세돌로 돌아와 알파고를 상대했다.

대국 초반 이세돌 9단은 좌단에서 알파고와 치열한 수 싸움이 벌였다. 좌하귀에서는 알파고가, 좌상귀에서는 이세돌 9단이 알파고를 포위하는 형국이 이뤄졌다.

초반 판세는 이전 대국과 마찬가지로 알파고에게 유리하게 흘러갔다. 수상전(미생이 되지 못한 돌 들끼리 사활을 걸고 싸우는)이 펼쳐지자 이세돌 9단의 백돌이 확장을 못하고 알파고에 전부 차단당했다. 판세는 이세돌 9단에게 점점 불리해졌다.

바둑TV에서 해설을 맡은 홍민표 9단과 이현욱 8단은 “이세돌 9단에게 뾰족한 수가 보이지 않는다. 만화에서 나올법한 ‘신의 한 수’가 나오지 않는다면 4국 역시 알파고의 승리로 끝날 것"라 내다봤다.

알파고의 기세는 마치 이창호 9단의 전성기를 보는 모습이었다. 알파고의 돌들은 지나치게 두텁지도 않고 실리에 있어서도 이세돌 9단에 뒤지지 않았다. 이창호 9단의 바둑은 발 빠른 스타일의 바둑보다는 묵묵하게 돌들을 연결시켜 후반부에 집을 만들어 승부를 보는 스타일이다.

▲ 이세돌 9단은 78수 째에 중앙에 돌을 놓으며 상황을 완전 반전시키는 묘수를 뒀다 (사진=구글)

바둑판 좌단에서 알파고에 밀린 이세돌 9단은 다시 우상귀로 자리를 옮겨 알파고와 치열하게 돌을 교환하며 수읽기를 펼쳤다. 이에 우상귀에서 이세돌 9단이 평소 가장 잘 둘 수 있는 판세가 형성이 되고 이 때 이세돌 9단은 78수 째에 중앙 우상단에 돌을 끼워 넣으며 상황을 완전히 반전시키는 묘수를 뒀다.

중국에서 4차 대국을 해설하던 구리 9단 기사는 “이 수를 대국을 완전히 반전시킨 ‘신의 한 수’라고 표현했다. 4국에서도 승산이 보이지 않던 이세돌 9단의 작전이 성공한 것이다.

하지만 이세돌 9단은 대국 시간이 3시간이 다 되어가며 초읽기에 들어가 다시 알파고에 쫓기는 상황이 연출됐다.

이세돌 9단이 초읽기에 들어간 후 알파고가 보여준 수읽기와 수상전을 마무리 짓는 화룡점정은 역시 명불허전이었다. 이세돌 9단에게 뚜렷한 수와 전략이 보이지 않고 있는 상황에서 알파고는 갑자기 좌하귀에 엉뚱한 수를 두더니 이어 우중간에도 판세에 전혀 도움이 안되는 악수를 연속해서 배치시켰다.

홍민표 9단은 “알파고가 갑자기 엉뚱한 수를 계속해서 두고 있다”며 “알파고가 오류가 난 것인지 일부러 불리한 수를 둬 경기를 더 오래 끌려는 것인지 알 수 없다”고 설명했다.

▲ 알파고는 대국 4시간 45분 만에 이세돌 9단에게 불계패를 던졌다.

이세돌 9단은 이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초읽기 찬스가 1번 밖에 안 남은 상태에서 초인적인 집중력으로 한수 한수 알파고의 흑돌을 압박해나갔다. 알파고가 다시 정신을 차리고 뛰어난 수읽기와 대응을 보여줬지만 이미 승기는 두집 반을 앞서는 이세돌 9단에게 넘어가 있었다.

결국 알파고는 대국 4시간 45분 만에 이세돌 9단에게 'resign' 창을 띄우며 불계패를 던졌다. 인간 이세돌 9단이 인류 대표로서 자존심을 회복하는 순간이었다.

대국 직후 이세돌 9단은 기자 브리핑 자리에서 “사실 7집 반을 덤으로 주는 백돌로 이기는 것보다 흑돌로 이기는 것이 더욱 승리의 가치가 있다”며 “남은 5국에서 흑돌로 알파고를 이겨보겠다”고 자신감을 나타냈다.

한편, 이세돌 9간과 알파고와의 마지막 세기의 대국은 5국은 15일 서울 포시슨즈 호텔에서 오후 1시에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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