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한 은행의 대출창구.
서울 한 은행의 대출창구.

[디지털투데이 신민경 기자] 금융권이 저마다 '대안 신용평가 모델'을 선보이면서 기존 개인 신용평가(CB) 회사들이 수세에 몰리고 있다. 대안 신용평가란 통신료와 전기·가스·수도 요금 등 비금융 데이터를 토대로 고객 신용도를 매기는 것으로 소비자들에겐 여러 대출조건을 받아볼 수 있는 선택지를 터준다. 주요 타깃은 1300만명에 이르는 주부, 사회초년생 등 씬파일러(금융 이력 부족자)다.

은행과 카드 등 금융회사들을 비롯해 거물급 테크 회사들 도전까지 받게 된 기존 신용평가 업체들은 "금융회사들이 당장은 틈새시장을 겨냥하겠지만 점차 대상을 확대해 나갈 것"이라며 우려하는 모습이다.

13일 업계에 따르면 최근 시중 은행과 카드 회사들은 자체 보유한 데이터를 기반으로 신용평가 시장에 속속 진출하고 있다. 이를 위해 주주사나 제휴사 등 비금융 회사들과의 협력도 강화하는 모습이다.

은행·카드·핀테크 등 금융회사 '대안 신용평가 모형' 구축 러시

인터넷전문은행 케이뱅크는 하반기 중 출시할 '개인사업자 신용대출 상품'에 대안 신용평가 모형을 적용한다. CB 회사가 수집하는 금융거래 정보에 더해 자사 내부 정보와 모기업 격인 KT 통신 데이터를 함께 활용하는 새 평가모형을 내놓을 계획이다. KB국민은행은 현재 통신과 부동산 정보를 결합한 '소매부문 전략모델'을 개발 중으로 오는 12월 구축을 끝낼 예정이다.

카드 업계에선 지난해 10월 개인사업자 전용 신용평가 모형인 '마이 크레딧'을 공개한 신한카드가 대안 신용평가 모델의 첫 테이프를 끊었다. KB국민카드도 가맹점 카드 매출 정보 등 내부 정보를 비롯해 상권 경쟁력 같은 부동산 정보를 반영하는 평가 모형 '크레딧 트리'를 6일 내놨다.  

최인혁 네이버파이낸셜 대표. [사진: 네이버]
최인혁 네이버파이낸셜 대표가 지난달 28일 서울 역삼동에서 열린 네이버 서비스 밋업 행사에서 연내 가동할 대안 신용평가 모델을 설명하고 있다. [사진: 네이버]

핀테크 회사들도 대안 신용 평가 모델 구축에 적극적이다. 네이버파이낸셜은 네이버 오픈마켓 플랫폼인 '스마트스토어'에 입점한 판매자들 매출 흐름과 개별 신뢰도, 단골 이용자 비중 등과 같은 정보를 활용해 하반기 중 자체적인 평가 모형을 내놓을 계획이다. 핀크도 모회사인 SK텔레콤으로부터 통신료 납부 정보 등을 받아 새 평가 방식인 'T스코어'에 적용했다.

향후 고도화 땐 시장 위협 가능성... 성과도 속속 가시화

이들 금융회사가 내세우는 데이터들은 아직은 기존 CB회사 방법론에 보조자료 정도로 활용되고 있다. 비금융 정보에 기반한 신용 평가에 대한 공신력이 입증되지 않은 만큼, 독립된 평가 시스템을 만드는 데는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다.

하지만 개인 신용평가 시장을 양분하고 있는 코리아크레딧뷰로(KCB)와 나이스평가정보 입장에선 금융 및 테크 기업들의 행보가 곱게 보일 리 없다. 이들 회사가 빅데이터와 인공지능 등 신기술을 바탕으로 평가 모델을 계속 고도화해 나간다면 향후 비금융 정보로도 직접 신용평가 시스템을 운영하는 곳들이 생겨날 수 있어서다. 금융회사들이 기존 CB회사 대신 대안 신용평가 분야 핀테크 업체와 제휴하거나 금융회사 자체적으로 신용등급을 산출해 대출에 활용할 경우 사업 기반이 흔들릴 수 있다고 보는 모습이다.

국내 CB회사 한 관계자는 "씬파일러는 대출 시장에선 아직은 상당히 작은 규모"라며 "기업들이 이들을 대상으로 신용평가 모델을 구축했다는 것은 명분 쌓기에 불과하고 점차 적용 대상을 늘려갈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기존 CB 회사들 입장에서 금융 및 테크 기업들이 구축한 대안 신용 평가 모델 수준은 만만치 않다. 핀크가 내놓은 T스코어의 경우 기존 CB회사에서 5등급 이하를 받은 중저신용자들 대출 승인 건수를 약 40% 확대한 것으로 확인됐다. T스코어 적용 전후와 비교할 때 최대 1% 할인된 금리 혜택을 받을 수 있는 고객 비율이 86%에 달했다. 네이버파이낸셜도 자체 구축 중인 신용평가 모델을 시뮬레이션해 본 결과 1등급 대상자가 기존 신용등급 대비 2배 가까이 증가했다고 최근 밝혔다.

정부도 진입규제 완화 등 '신규 CB사' 지원

금융당국도 신규 CB회사들 등장을 정책적으로 지원하고 있다. 데이터3법(개정 개인정보보호법·정보통신망법·신용정보법)이 발효된 5일부로 '비금융정보 전문 CB회사' 설립에 대한 법적인 근거가 마련됐다. 해당 사업자 등록에 대한 진입 규제 조건도 대폭 완화했다. 최소 자본금은 종전 50억원에서 5억원(대량 정형 데이터의 경우 20억원)으로 줄었고 50% 이상이어야 하던 금융회사 출자요건은 삭제됐다. 금융회사를 대주주로 두지 않아도 신용평가업을 영위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자금이 부족한 핀테크 업체들이 비금융 CB회사로 나설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된 셈이다.

신용정보사업 규제체계 정비 내용. [자료: 금융위원회]

기존 CB회사도 신용정보 개방 의무 대상에 포함되는 점도 주목된다. 데이터3법 시행으로 금융기관들은 보관 중인 이용자 데이터를 제3자에 개방해야 한다. 신용정보법 시행령 개정안(제18조의6 4항)에서는 신용정보회사도 신용정보 제공·이용자로 규정하고 있다. 다만 CB회사 데이터는 각종 공공기관과 민간 금융기관으로부터 수집된 것인 만큼 개방 범위에 대해선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 신용정보원 한 관계자는 "마이데이터 워킹그룹에서 각 업권별 정보 제공 범위에 대한 논의를 이어가고 있다. CB회사의 개방 범위도 아직 특정되지 않았다"고 했다.

전문가들도 대안 신용평가 모델이 기존 신용평가 시장을 위협할 가능성이 크다는데 이견이 없는 듯하다. 이효섭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금융권 대안 신용평가 모델을 활용했을 때 부도 확률과 부도 시 회수율, 대출 한도 등 여러 항목에서 긍정적인 결과가 나온 실험이 많이 나왔다"며 "데이터3법 발효로 CB회사들이 독점하던 데이터들의 경계가 허물어졌다. 신기술을 방법론에 활용하는 등 대안책을 강구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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