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셔터스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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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투데이 황치규 기자] 사람이 바뀌기 쉽지 않듯, 사람들이 모인 기업 또한 바뀌기 어려운 건 마찬가지다. 기업 현장 여기저기에서 울려퍼지고 있는 변화의 함성소리가 단순 구호나 잘해야 용두사미로 끝나는 경우가 수두룩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그럼에도 기업들이 때가 되면 변화에 나설 수밖에 없는 건 변하지 않으면 먹히거나 사라질 가능성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기업들에게 변화는 거부할 수 없는 숙명이다.

대표적인 빅테크 기업 중 하나인 구글 또한 다양한 변화를 진행 중이다. 최근에는 구글 클라우드 부문이 시도하는 일반 소비자 대상(B2C) 엔지니어링 회사에서 엔터프라이즈 테크 기업으로의 변신 행보가 눈에 띈다.

B2C 회사가 B2B 기업 DNA를 갖추는 게 생각보다 만만치 않다. 엔지니어링 조직 '말발'이 센 구글 같은 회사라면 특히 그렇다. 

이런 가운데 구글은  퍼블릭 클라우드 시장에서 앞서 있는 아마존웹서비스(AWS)와 마이크로소프트 애저를 따라잡기 위한 '문화 혁명'을 계속해왔다. 오라클 출신 엔터프라이즈 사업 베테랑인 토마스 쿠리안을 구글 클라우드 CEO로 영입했고 기업을 상대해 본 경험이 많은 세일즈 조직도 강화해왔다.

26일(현지시간) 구글 클라우드가 발표한 엔터프라이즈 API도 엔터프라이즈 테크 기업으로의 변신 전략 일환이다. 

구글 클라우드, 구글 워크스페이스, 구글맵스를 포함하는 엔터프라이즈 API는 고객들이 활발하게 쓰고 있는 한, 기존과 호환성이 없는 변화나 서비스 중단을 하지 않겠다는 것이 골자다. 

엔터프라이즈 API 기반으로 개발된 고객 소프트웨어에 영향을 줄 있는 변화에 대해 엄격한 정책을 적용하고 중단이나 변경이 불가피할 경우 최소 1년 전에 이를 통지한다는 내용도 담고 있다.

크리파 크리슈난(Kripa Krishnan) 구글 클라우드 부사장은 "API 사용 중단 또는 주요 변경 사항이 불가피한 경우 고객들은 가능한 품이 덜 들어가고 고통스럽지 않도록 해야 한다. 부담은 구글이 져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구글이 비용 부담을 떠안더라도 고객을 막다른 골목으로 몰거나 뒤에 남겨두지 않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엔터프라이즈 판에서 솔루션 팔려면 이 정도는 당연히 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할 수 있겠지만 구글 입장에선 엔터프라이즈 API는 나름 '과거와의 결별'이다.

AWS는 퍼블릭 클라우드 시장을 개척하면서 개발자와 CIO들로부터 나름 신뢰를 확보했고 마이크로소프트는 수십 년에 걸쳐 기업 고객들과 관계를 구축한 반면 구글은 상대적으로 엔터프라이즈 시장에서 기업 고객들과 스킨십이 부족하다.

구글은 충분한 예고나 공지 없이 서비스를 중단하기로도 유명하다. 인터넷이나 트위터에선 '킬드 바이 구글'(Killed By Google)이라는 말까지 떠돌 정도다. 2013년 RSS 구독 서비스인 구글리더를 폐쇄하기로 결정이 대표적인 '킬드 바이 구글' 사례다.

갑작스런 구글리더 폐쇄 공지는 지금도 비판이 나올 만큼 논란을 일으켰다. 구글리더는 꽤 많은 사용자 기반을 갖고 있었지만 구글 내부에선 리소스 지원을 정당화할 만한 수준은 되지 못했다. 기자 역시 구글리더를 애용했던 터라 예상치 못한 폐쇄 조치에 여전히 아쉬움을 갖고 있다.

별볼일(?) 없는 무료 서비스를 중단하는 건 B2C 시장에선 과감한 카드로 비춰질지 모르겠지 만 엔터프라이즈 시장에선 적지 않은 걸림돌이다. 엔터프라이즈 고객들을 상대로 구글리더를 중단할 때처럼 했다가는 바로 외면받기 십상이다. 돈 내는 고객들에게 오랫동안 큰 어려움 없이 쓸 수 있을 것이란 신뢰를 주지 못하면 기술이 좀 좋다고 해도 먹혀들기 어려운 곳이 바로 엔터프라이즈 시장이다. '갑'이 아니라 '을' 마인드가 어느 정도 필요한 것이 현실이다.

구글이 엔터프라이즈 API이라는 카테고리까지 새로 만들어 오랫동안 문제 없이 쓸 수 있게 하겠다는 메시지를 강조하는 것은 이같은 상황을 밑바탕에 깔고 있다. 갑자기 버리고 떠날 일은 없을 것이란 얘기다. 

물론 구글이 전제 조건으로 내건 '활발하게'(Active) 사용한다에서 '활발하게'의 디테일은 여전히 분명치 않다는 지적도 있지만 구글이 점점 엔터프라이즈 고객 친화적으로 바뀌고 있음은 분명해 보인다.

시장 조사 업체 가트너에 따르면 2020년 퍼블릭 클라우드 서비스 시장에선 구글 클라우드는  4.2%의 점유율로 AWS(24.1%)와 마이크로소프트(16.6%)에 이어 3위에 랭크됐다. 넘버3라고는 해도 AWS, 마이크로소프트와 격차는 많이 벌어져 있는 상황이다.

구글 클라우드 사업을 총괄하는 토마스 쿠리안. [사진: 구글 웹사이트]
구글 클라우드 사업을 총괄하는 토마스 쿠리안. [사진: 구글 웹사이트]

이에 구글 클라우드는 점유율 확대를 위해 공격적인 투자를 계속해왔다. 2018년 11월 토마스 쿠리안이 지휘봉을 잡은 이후에는 제대로된  엔터프라이즈 테크 기업이 되기 위해 비즈니스 프로세스에도 상당한 변화를 줬다. 특히 클라우드를 구매하는 기업들과 긴밀한 관계를 맺기 위해 세일즈 조직을 대폭 강화했다.

이 과정에서 구글 클라우드 조직 내부에선 이런저런 내부 충돌과 반발도 있었던 모양이다. 토마스 쿠리안은 취임 이후 엔지니어링 문화에 기반한 '구글 스타일'과는 거리가 있는 미션들을 구글 클라우드 소속 직원들에게 부과하기 시작했다.

구글 엔지니어들은 마감에서 비교적 자유로운 환경에서 일해왔고, 고객 보다는 자신들이 원하는 프로젝트들에 집중했는데, 쿠리안 리더십 아래서는 마감과 고객 중심주의가 우선이었다. 느슨한 실행 계획에 익숙해져 있던 직원들에게 까다로운 프로젝트 마감 일정이 부과됐고, 여기에 불만을 느낀 일부 직원들은 회사를 떠난 것으로 알려진다.

토마스 쿠리안식 개혁은 점점 가속화되는 양상이다. 토마스 쿠리안은 적자를 감수하더라도 규모를 먼저 키워야 한다는 명분 아래 영업 조직 확대에도 계속 실탄을 쏟아붓고 있다.

구글이 클라우드 시장에서 '자타공인' 엔터프라이즈 테크 기업으로 '제대로', '확실하게'  변신할 수 있을지는 현재로선 미지수다.  한국 시장만 놓고 보면 엔터프라이즈 고객들에게 구글 클라우드는 웬지 낯설다는 얘기가 적지 않게 들리는 것을 보면 엔터프라이즈 테크 기업 DNA가 아직 구글에  확실하게 뿌리를 내린 것 같지는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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