왓슨. [사진: 셔터스톡]
왓슨. [사진: 셔터스톡]

[디지털투데이 황치규 기자]2011년 2월 IBM 슈퍼컴퓨터 왓슨은 미국 ABC 인기 퀴즈쇼 제퍼디!에서 당대 최고로 꼽히던 켄 제닝스를 완파하고 우승해 폭발적인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되돌아 보면 IBM에겐 꿈같은 시절이었다.

제퍼디에서 왓슨이 우승하자 IBM은 사회를 휩쓸  인공지능(AI) 기술 헉명의 시작이라며 대대적인 마케팅을 시작했다. 왓슨을 헬스케어, 금융, 법과 학문 분야에 적용할 수 있는 방법을 찾고 있다는 장밋빛 시나리오들을 거침없이 쏟아냈다. AI가 곧 산업 지형도를 바꾸고 변화를 이끄는 주인공 자리는 IBM에게 돌아갈 듯 보였다.

현실은 달라도 아주 많이 달랐다. 제퍼디 우승 때와 비교하면 IBM 왓슨의 현재는 초라하다. IBM이 내놨던 청사진들은 대부분 현실화되지 않았다. 중도하차한 프로젝트들이 다수다.  AI 혁신을 주도하는 업체들도 IBM이 아니라 아마존이나 마이크로소프트, 구글 같은 회사 이름이 훨씬 더 자주 소환되고 있다.

도대체 지난 10년간 무슨 일이 벌어졌던 것일까? 

뉴욕타임스가 최근 전현직 IBM 관리자 및 과학자들을 인터뷰해 IBM이 왜 왓슨에 내걸었던 초창기 비전을 현실화하는데 실패했는지,  왓슨은 지금 어떤 상황인지, 앞으로는 어떨 것인지를 조명하는 기획 기사를 내보내 눈길을 끈다.

하고 싶은 것과 할 수 있는 것은 다르다

상황이  뜻대로 안굴러 갔던 이유는 IBM이 왓슨으로 할 수 있는 것보다 하고 싶은 것들을 너무 많이 쳐다봤기 때문이다.

기사를 보면 왓슨 연구진 차원에서는 왓슨으로 많은 걸 할 수 있다는 회사 차원의 오버액션을 경고하는 목소리가 있었지만 경영진들은 귀담아 듣지 않았다. 왓슨을 앞세운 대담한 마케팅에 거액을 쏟아부었다. 테니스 스타 세레나 윌리엄스, 팝가수인 밥 딜런과 왓슨이 대화를 나누는 장면이 나오는 TV광고까지 찍었다. 암과 기후 변화에 대응하는 것을 포함해 IBM이 꼽은 왓슨 응용 분야도 경계가 없었다.

당시 IBM은 왓슨을 메인프레임 컴퓨터가 회사에 가져다준 부와 명성을 다시 안겨줄 성장동력으로 바라봤다.

하지만 결과는 거꾸로였다. 왓슨은 산업을 바꾸지도 못했고 IBM 금고에 현금을 늘려주지도 않았다. 아마존, 마이크로소프트, 구글은 주가가 급등하며 빅테크 시대를 열었지만 IBM은 2011년 제퍼디 우승 이후 주가가 오히려 10% 이상 떨어진 민망한 처지가 됐다.

결과만 놓고 보면 IBM이 초창기 왓슨으로 하려고 했던 것들은 사회적으로는 그럴 듯해 보였지만 현실과는 거리가 멀었다. IBM만  말만 화려하게 한건 아니었다. 대학 및 연구기관들과 협력을 맺고 나름 이런 저런 프로젝트들을 적극 추진했다. 하지만 대부분 성과로는 이어지지 못했다.

IBM의 이같은 행보는 기술이나 제품 전문가 보다는 서비스와 영업을 백그라운드로 가진 경영진들이 회사를 이끌었던 것과도 무관치 않아 보인다. 

제품 담당자였다면 왓슨이 퀴즈쇼에 최적화돼 있다 보니 퀴즈쇼 밖 다른 쪽에 적용하기는 제한적인 기술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지만 마케팅과 비즈니스 파트에서 나오는 목소리가 내부에서 크다 보니 회사 차원에서 방향을 잘못 잡는 결과로 이어졌다는 설명이다.

헬스케어 시장을 공략하기 위해 왓슨을 적극 투입한 것도 결과적으로는 별 성과 없이 끝나는 모양새다.

IBM은 왓슨이 모든 의료 정보를 분석하고 이해하면 실시간 진단 도구가 될 수 있다는 비전 아래  헬스케어 시장 공략에 공격적으로 나섰지만 의료 현장 데이터는 IBM이 다루기에는 생각보다 훨씬 복잡했고 혼란스러웠다. 이같은 상황은 결국 IBM이 헬스케어 쪽에서 진행했던 왓슨 프로젝트 다수를 접는 결과로 이어졌다.

뉴욕타임스 기사를 보면 하버그 경영대학원 교수로 MD 앤더슨대학교 암센터에서 진행된 왓슨 프로젝트에 대한 사례 연구 공동 저자인 쉐인 그린스타인은 "미성숙한 기술로 실시간 암진단이라는 가장 높은 목표를 선택했다"면서 "리스크가 매우 높은 경로였다"고 말했다.

이후에도 IBM은 수십억달러 규모 인수합병(M&A)를 포함해 왓슨 헬스 플랫폼에 대한 투자를 계속했지만 시장에 미친 임팩트나 수익 측면에서 건진 건 별로 없다는 지적이 많다.

시행착오와 헛발질이 계속되는 사이 언제부터인가 왓슨에는 브랜드 캠페인에 불과하다는 냉소적인 꼬리표도 따라붙었다. 실제로 왓슨의 실체는 없다고 보는 이들이 적지 않다. 하지만 일각에선 왓슨이 최근 기술적으로 나름 진전을 이뤘다는 평가도 나오고 있다고 뉴욕타임스는 전했다.

AI2라고도 불리는 앨런 인공지능연구소(Allen Institute for Artificial Intelligence)는 사람, 장소, 문장에 있는 감정을 확인하는 것과 같은 표준 자연어 업무 성능을 놓고 왓슨과 아마존, 마이크로소프트, 구글과 같은 대형 클라우드 서비스 업체가 제공하는 AI를 비교했다.

비교 결과 왓슨도 성능이 좋았고 일부에선 빅3를 앞섰다. 오렌 에치오니 앨런 AI 연구소 CEO는 "많이 놀랐다"는 말까지 했다.

비즈니스 측면에서도 왓슨은 나름 의미있는 성과를 내고 있다고 IBM은 강조한다.

IBM은 이제 왓슨을 기업들이 AI 기반 애플리케이션을 개발하기 위한 소프트웨어 도구 모음으로 포지셔닝하고 있다. 제퍼디쇼 이후에 했던 판타지 마케팅과는 확실하게 거리를 두고 있다. 대신 회계, 결제, 기술 운영, 마케팅, 고객 서비스 등에서 기본적이 업무를 간소화하고 자동화하는 역할을 전진배치했다. AI를 파는 다른 기업들과 마찬가지로 일하는 AI가 IBM이 왓슨에 내건 메시지다.

뉴욕타임스를 보면 왓슨 핵심 역량은  예전이나 지금이나 달라진게 없다. 제퍼디쇼 우승 때와 마찬가지로 왓슨은 여전히 자연어 처리가 강점이다. 자연어 처리 기술은 IBM 왓슨 어시스턴트에 기반으로 쓰이고 있고, 기업들이 고객들 질의를 자동화하는데도 사용되고 있다. 

IBM은 왓슨으로 얼마를 버는지에 대해서는 별도로 공개하지 않고 있다. 하지만 나름 성공의 신호가 보이고 있다는게 회사측 설명.

회사측에 따르면 IBM은 전세계 20개 산업에 걸쳐 4만개 왓슨 고객을 보유하고 있다. 4년전과 비교하면 두배 이상이다. 왓슨 사용도 증가했다. 왓슨 제품과 서비스들은 한달에 1억4000만번 가량 사용되고 있다. 2년전 월 1000만번과 비교하면 크게 늘어난 수치다.

IBM 글로벌 세일즈를 이끄는 롭 토마스 부사장은 "AI는 아직 초기 단계다. 시장 기회는 클 것이다. 지금 단계에서 핵심은 왓슨 소프트웨어 적용을 앞당기는 것이다"고 말했다.

AI는 글로벌 테크 시장의 격전지다. 클라우드와 함께 빅테크 기업들 사이에서 최고의 전략적 요충지로 통하고 있다.  '왕년의 빅테크 기업 ' IBM이 왓슨이 현재 빅테크 기업들의 공세를 버텨내고 왓슨으로 뭔가 제대로 보여줄 수 있을까? 많은 이들에게 잊혀졌지만 IBM은 아직 왓슨을 포기하지 않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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