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반도체 제조업체 창신메모리(CXMT)
중국 반도체 제조업체 창신메모리(CXMT)

[디지털투데이 고성현 기자] 중국이 강화되는 미국 반도체 수출 통제 조치에도 반도체 자립을 위한 행보에 속도를 내고 있다. 자국 메모리반도체 기업에 자금을 투입하며 우리 업계의 '초격차'를 뒤쫓는 한편, 인공지능(AI)·로직반도체 등 첨단 칩 개발 및 양산에서 성과를 내고 있다.

업계에 따르면 창신 신차오 메모리 테크놀로지는 최근 중국 정부가 지원하는 투자자 등으로부터 390억위안(약 7조원) 규모 투자 유치에 성공했다. 이 업체에 자금을 댄 투자자는 중국 정부가 조성한 반도체 투자 펀드 '대기금'과 창신 신차오 메모리테크놀로지의 본사가 있는 허페이 정부 관계자들이다. 대기금은 2014년 중국 재정부가 일부 금액을 출자해 조성한 국가 차원 펀드다.

이 기업은 2021년 설립된 신생 메모리 기업으로, 중국 D램 생산 기업인 창신메모리테크놀로지(CXMT)의 일부 주주를 공유하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창신메모리는 지난해 10월 미국의 수출 통제 대상이 된 이후, 자체적으로 인공지능(AI)용 메모리인 광대역폭메모리(HBM) 개발에 나서고 있는 상황이다.

중국은 반도체 자립을 위한 투자에 열을 올리고 있다. 미국이 ASML·어플라이드머티리얼즈(AMAT)·엔비디아 등 자국 첨단 기술을 활용한 장비와 반도체 칩을 중국에 수출하지 못하도록 한 탓이다. 미국 상무부는 지난달 17일 대중 반도체 수출통제 추가조치를 발표하며 후속 강화 조치를 내놓는 등 규제 강화의 고삐를 당기고 있다.

이같은 수출 규제 강화 조치는 곧바로 시장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엔비디아는 당초 규제 대상이 아니었던 중저가용 AI GPU인 H800과 A800을 중국에 판매해왔다. 그러다 지난달 조치로 두 제품이 수출 금지 리스트에 포함되며 사실상 판로가 막히게 된 상황이다. 엔비디아 칩 반입이 불가능해지자 중국 IT기업인 바이두가 화웨이로부터 910B 어센드 AI 칩을 대량 구매하고 나서는 등 자국 간 거래가 늘어나는 모습도 관측되고 있다.

업계에서는 미국의 수출 규제 조치가 중국의 반도체 자립에 속도를 붙이는 계기가 되고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수출 규제 조치에 따라 중국이 장비·설계·생산 수준을 점차 높이고 있고, 향후 이같은 결과가 성과를 낸다면 미국 등을 위협할 수 있는 기술력을 갖출 수도 있다는 의미다.

이는 우리나라 업계에도 커다란 위협 요소다. 메모리반도체 시황이 여전히 부진한 만큼 거대 시장인 중국으로의 수출이 실적 반등을 위한 기회가 되고 있는데, 고성능·고용량 제품 등 판매가 불가해진다면 그만큼 매출 성장이 더뎌질 수밖에 없다. 중국 내 HBM, 낸드, D램 등 제품 개발에 가속도가 붙을 경우 국내 업계의 입지를 위협할 여지도 남아 있다.

국내 장비 업계 입장에서도 이같은 규제가 달갑지 않다. 중국 내 반도체 공정 장비 개발이 빨라진다면 대중 수출 의존도가 높았던 장비사들에 타격이 가게 된다. 특히 주성엔지니어링, 원익IPS, 유진테크 등 중국 수출 비중이 높은 기업들에게는 더욱 큰 여파가 미칠 우려가 있다.

한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당장 중국의 반도체 굴기가 국내 메모리, 장비 업계에 영향을 미치지는 않을 것이다. 오히려 타격을 받는 시간이 더욱 길 수도 있다"면서도 "다만 대응 전략을 미리 짜놓지 않으면 장기적으로는 중국산 장비, 메모리, 반도체 칩 등에서 충분한 위협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화웨이 기린 프로세서 [사진: 하이실리콘]
화웨이 기린 프로세서 [사진: 하이실리콘]

실제로 중국은 높은 자본을 꾸준히 투입해왔던 일부 분야에서 성과를 내고 있다. 화웨이 자회사 하이실리콘이 자국 위탁생산(파운드리) 업체인 SMIC를 통해 생산한 7나노미터(㎚) 모바일 애플리케이션프로세서(AP) '기린9000S'가 대표적 사례다. 이 칩은 현재 최첨단 수준인 3~4나노 공정 칩과 비교하면 낮은 성능이지만, 미국의 제재를 뚫고 10나노 이하 공정을 자체적으로 개발했다는 것에 큰 의의가 있다.

메모리반도체 부문에서도 양쯔메모리테크놀로지(YMTC)가 232단 3D 낸드플래시를 양산하는 성과를 거뒀다. SK하이닉스가 238단, 삼성전자가 236단급 낸드를 생산하고 있는 걸 고려하면 기술 격차를 대폭 줄인 것이다. 업계에서 국내 기업이 유지했던 '메모리 기술 초격차'가 사라지고 있다는 우려가 나온 배경이다.

물론 중국의 첨단 칩 제조에도 결함은 있다. 높은 원가가 그 사례다. 7나노 AP인 기린9000S는 심자외선(DUV) 노광 장비로 실리콘 웨이퍼에 여러번 회로를 새기는 멀티 패터닝 방식을 도입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노광 공정을 여러번 반복하면 그만큼 비용이 기하급수적으로 올라갈 수밖에 없다. YMTC의 낸드 역시 구식 장비가 사용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어 수율 등이 낮을 것으로 추정되는 상황이다.

다만 중국 정부가 자본금 투자로 이를 보조해주고 있다면 일정 수준 이상의 가격 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어, 국내 업체들이 여전히 안심할 수는 없을 전망이다.

업계 관계자는 "중국 기업들은 막대한 정부 지원을 앞세워 연구개발(R&D) 결과물의 다양한 적용과 도전적인 시도를 하고 있다"며 "자본에서는 국내 업계가 열위에 있는 만큼, 적극적인 R&D 시도와 투자만이 초격차를 유지할 수 있는 길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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