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버킷리스트에 한 줄 적어 놓았을 법한 액티비티(옥외 레포츠 활동), 번지점프. 온갖 예능이나 방송에서 많이 나와 사람들에게 많이 알려진 액티비티이기도 하다. 남태평양 섬나라 바누아투의 펜테코스트 섬의 성년식에서 유래된 번지점프는 높은 곳에서 줄을 묶고 뛰어내려 본인의 담력을 증명하는 활동이다.

샌프란시스코 금문교에서 공식 점프가 성공한 후로 열대 덩굴이었던 ‘번지’는 오늘날 탄력이 좋은 고무줄이 됐고, 나무 탑이었던 점프대는 타워크레인이 됐다. 무모하기만 해 보이는 모험스포츠건만 왜 모두의 버킷리스트에 등극하게 된 걸까. 답을 얻기 위해 직접 체험해보기로 했다.

서울에서 한 시간 남짓, 꼬불꼬불 강가를 따라 난 길을 달렸다. 가평과 춘천 근처에는 번지점프를 할 수 있는 곳이 몇 군데 있다. 이번에 방문할 곳은 리버랜드. 북한강의 넓은 풍경을 한눈에 담으며 뛰어내릴 수 있는 데다가, 바로 옆에는 워터파크가 갖춰져 있어 여름철에는 많은 사람이 모여드는 곳이다.

김민정 여기어때 액큐가 번지점프를 체험하고 있다.(사진=여기어때)
김민정 여기어때 액큐가 번지점프를 체험하고 있다.(사진=여기어때)

내비게이션이 목적지가 가까이 있다고 말하기도 전에 오늘의 점프대가 어디인지 알게 됐다. 멀리서도 잘 보이는 타워크레인 덕분이다. 그 위용에 무서울 법도 했건만 출발하기 전 미리 먹은 우황청심원 덕분인지 차분하기만 했다.

사무실 안으로 들어가서 여기어때 예약내역을 내밀면, 모든 과정이 자연스럽게 진행된다. 첫째로 서약서를 쓴다. 안전 규율에 따르지 않아 발생한 사고는 업체에서 책임을 지지 않는다는 내용이다. 둘째로 무게를 잰다. 몸무게에 따라 줄이 달라지기 때문에 가장 중요한 과정이라 할 수 있다. 셋째로 장비를 착용한다. 여러 개의 하네스(harness)가 연결된 모양새에 양쪽 다리를 끼우고 허리까지 올려 입으면 직원이 다가와 뒤에서 단단하게 고정해준다. 꼼꼼히 확인해주는 모습에 한결 안심됐다. 상반신에도 간단한 하네스를 입는데, 양팔을 걸칠 뿐이어서 의아했지만, 점프대 앞에서 줄과 고정할 부분이라는 설명이 뒤따라 납득할 수 있었다.

이 세 과정이 끝나면 엘리베이터를 타고 타워 꼭대기까지 올라간다. 공사 현장에서 사용될 법한 엘리베이터는 올라갈 때와 멈출 때 거칠게 움직여 공포감을 더했다. 덜컹, 하고 승강기가 올라가기 시작하자 심장이 점점 조여오는 기분이 들었다. 긴장을 풀기 위해 번지점프를 하는 시간에 대해 질문을 던져보았다. 돌아온 대답은 단순했다. 15분. 승강기를 타고 올라가 주의사항을 듣고, 등에 줄을 연결한 다음 바로 뛰어내린다면 15분도 안 걸릴 거라고 덧붙여주셨다. 그 짧은 시간 동안 극한의 공포를 체험해야 한다니 눈앞이 까마득해졌다.

설명 또한 간단했다. 시선을 멀리 둘 것, 점프하기로 마음을 먹은 후에 근처의 구조물을 붙들고 매달리지 말 것, 크게 점프할 것. 허리에 줄을 고정하자 준비는 끝났다. 직원이 내 무게에 맞춰 줄을 얼마나 늘어뜨릴지 조정하더니, 손짓으로 점프대를 가리켰다.

김민정 여기어때 액큐가 번지점프를 하기 위해 점프대에서 서 있다.(사진=여기어때)
김민정 여기어때 액큐가 번지점프를 하기 위해 점프대에서 서 있다.(사진=여기어때)

앞이 탁 트인 점프대로 가서 섰다. 북한강의 풍경은 드라이브할 때와 비교도 안 되게 아름다웠지만, 그 풍경을 감상할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미리 들었던 대로 손을 교차시켜 가슴 위에 놓고는 "준비가 다 됐냐"고 묻는 직원의 말에 잠시 대답을 망설였다. 심호흡을 세 번 크게 하고 "준비가 됐다"고 말했다. 숫자를 세고 "번지"라고 외치면 뛰어내리라고 했고, 나는 먼 산을 응시하며 카운트다운을 기다렸다.

쓰리, 투, 원, 번-지!

엘리베이터 안에서 오래도록 생각했다. 어떻게 하면 실패하지 않을 수 있을까. 자유낙하를 상상할수록 몸이 굳어가는 것 같았다. 짧은 시간 동안 치열하게 머리를 굴려본 결과, 아무것도 생각하지 말고 몸을 움직이자는 결론이 나왔다. 그리고 다행히도 점프대 위에서 내 다리는 움직여주었다. 차마 풍경을 바라볼 수는 없어 눈을 질끈 감아야 했지만.

걷는 듯 주춤주춤 한 발 먼저 내딛는 바람에 일어선 자세 그대로 쭉 하강하게 됐다. 자유낙하하는 그 짧은 시간이 엄청나게 길게 느껴졌다. '찰나의 순간이었지만 영원과도 같았다'는 묘사를 볼 때마다 이게 무슨 모순이냐며 코웃음을 쳤었는데…. 실제로 그런 기분을 겪을 수 있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살짝 눈을 뜨자 자유롭게 떨어지고 있는 내 팔다리와 그 아래로 넘실거리는 북한강이 아주 천천히, 슬로 비디오처럼 보였다. 나중에 동영상으로 봤을 때 이렇게 짧은 순간이었다는 걸 믿기 어려울 정도였다.

진짜 무서운 순간은 다시 치솟아 오를 때였다. 점프코드(번지점프 줄)가 충분히 늘어났다가 다시 수축할 때, 몸이 허공으로 끌어당겨지는 게 인생에서 가장 무서운 순간으로 남았다. 너무 무서워서 하네스라도 붙잡으려고 손끝을 달달 떠는 게 동영상에 그대로 남았다. 기절을 한다면 이럴 때 하는 게 아닐까 싶었다가 다시 몸이 중력에 이끌려 떨어지고, 또다시 탄성에 끌려 올라가고 또 떨어졌다 올라갔다 하면서 수면과 점점 가까워졌다. 마지막에 끌려 올라갈 때는 대체 언제 끝나냐고 소리를 지르며 주먹으로 눈물을 닦았을 정도였다.

그러는 와중에 동력 없이 노로 젓는 보트로 다가온 다른 직원이 내 발목을 붙잡아 보트에 태웠다. 다리가 후들후들 떨려서 주저앉을 뻔 했지만 점프코드가 분리되는 동안은 억지로 버티고 서 있어야 했다. 코드가 분리된 후에는 앉아도 된다고 하길래 숫제 그냥 드러누워 버렸다. 긴장했었던 온몸이 약하게 경련하는 걸 그대로 두고 호흡을 골랐다. 하늘은 맑기만 하고, 그 하늘로 생명줄이었던 번지 코드가 끌려 올라가고 있었다. 머릿속이 오롯이 단 하나의 생각으로 가득 찼다. '해냈구나!'

글을 쓰는 지금에 와서 돌이켜보면, 사실 번지점프 자체에는 굉장할 것이 없다는 게 나의 결론이다. 줄에 매달려 떨어지고 다시 튕겨 오르는 행동 자체는 인생 버킷리스트로 꼭 꼽힐 만큼 환상적인 경험은 아니었다. 그보다 더 중요한 건 '결단' 그 자체였다. 번지점프를 하기로 결심하고, 마음속을 꽉 채우는 두려움에 맞서 도전을 관철하는 경험은 언제 겪어도 고무적이다.

(사진=여기어때)
(사진=여기어때)

덤으로, 먼저 겪은 사람들과의 공감 또한 꽤 즐거웠다. 번지점프가 끝난 후 벤치에 앉아 타워크레인을 올려다보며 쉬었다. 호들갑을 떨며 타워크레인으로 올라가는 연인이나, 아래에서 번지점프하는 사람들을 지켜보며 박수를 치는 사람들 모두가 친근하게 느껴졌다. 내가 느꼈던 감정을 이 사람들도 함께 공유할 수 있을 거라는 게 기뻤다.

세상의 모든 일이 그렇듯, 어떠한 일을 경험하기 전에는 그 일에 대한 온갖 상상과 공포가 머릿속과 마음속을 꽉 채워 현실을 바라볼 수 없게 된다. 그 때문에 경험하기까지의 과정이 가장 어렵다. 하지만 직접 겪어보고 나면 상상과 두려움이 완전히 깨지면서 오로지 현실만 남는다. 다 지나간 후에는 어쩐지 덤덤하고 대수롭지 않은 기분까지 드는 것이다. 번지점프 후에 든 기분 또한 정확히 같았다. 내가 겪었던 그 모든 두려움과 공포는 전부 잊어버리고, 다음을 위한 다짐을 하게 되는 것이다.

'한번 더 번지점프를 하게 된다면, 그때는 눈을 질끈 감고 무작정 발을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접었던 팔을 쭉 펴고 영화의 한 장면처럼 뛰어내려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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