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의대 정원은 2006년 3058명이 된 후 지금까지 유지되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국내 의대 정원은 2006년 3058명이 된 후 지금까지 유지되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디지털투데이 AI리포터] 2000년 의약분업을 시작으로 3507명이었던 국내 의대 정원이 2006년 3058명까지 줄었으며 20년 가까이 지난 오늘날까지 그대로다. 동년을 기점으로 국내는 고령화사회에 진입했으며 2020년 사망자 수가 출생아 수를 앞지르는 데드크로스가 발생해 지금까지 현재 진행중이다.

병상 수와 외래 진료 횟수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기준 가장 많았지만 의사 수는 최하위권 수준에 그쳤다. 수도권 쏠림현상이 가속화되면서 지방 의사 수는 턱없이 부족한 상태다.  

그러는 동안 국내 의료체계가 무너지는 '의료 붕괴' 여파는 걷잡을 수 없이 커져가고 있다. 지방에서는 의사 부족 문제가  끊임없이 거론되며 구급차는 환자를 응급실로 보내도 의사가 없어 거부당하기 일쑤다. 산부인과, 외과, 흉부외과 등 비인기과에 지원하는 의사가 대폭 감소하고 있으며 소아청소년과는 폐과를 선언했다. 정부는 의대 정원 확대를 위해 여러 방안을 마련했지만 번번이 의료계의 거센 반대로 무산됐다. 시간이 흐를수록 갈등이 격화되는 정부와 의료계, 언제쯤 미소로 서로를 볼 수 있을까.

'의약분업' 후 고령화·인구 감소로 '지방 의사' 부족해져

2000년 전국 의대 규모는 41개교 3507명이었다. 이전에는 병원이 진료부터 약 처방까지 했지만 같은 해 7월부터 진료는 의사가, 조제는 약사가 책임지는 의약분업이 시행됐다. 의약분업으로 병원은 수입 감소를 우려했고, 정책 반대를 위한 대규모 파업에 돌입했다. 그러면서 의료 대란이 발생하자 정부는 '2002년까지 의대 정원을 10% 감축하고 전공의 보상을 강화한다'는 대책으로 진화에 나섰다. 그러면서 교육부는 3507명이던 의대 정원을 2002년 3156명까지 줄였으며 이후에도 조금씩 감해 2006년 3058명까지 낮아졌다. 이를 마지막으로 오늘날까지 17년간 의과대학 정원은 늘지도, 줄지도 않았다.
 

유소년층은 감소하는 반면 노인층은 증가하며 한국이 빠르게 늙고있다 [사진: 연합뉴스]
유소년층은 감소하는 반면 노인층은 증가하며 한국이 빠르게 늙고있다 [사진: 연합뉴스]

의약분업이 시행된 2000년, 국내 65세 이상 노인이 712만명(7.3%)으로 나타나며 고령화사회에 진입했다. 국제연합(UN) 등 여러 국제기구는 내국인 중에서 노인 비율이 7% 이상이면 고령화사회, 14%를 넘기면 고령사회, 20%를 웃돌면 초고령사회로 분류한다. 2000년을 시작으로 2017년(14.2%) 고령사회가 됐는데 이웃나라 일본(24년)보다 7년 빨랐다. 미국과 영국 등은 고령화사회가 고령사회로 되기까지 100년 안팎의 시간이 소요된 점을 감안하면 그 어느 나라보다 한국은 급속도로 늙어갔다. 올 4월 기준 국내 노인 비율은 17.5%로 통계청은 오는 2025년 노인 비율이 20%를 웃돌며 초고령사회가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반면 합계출산율은 고령화와는 상당한 온도차를 보였다. 15~49세 여성 1명이 평생 낳을 것으로 예상되는 평균 출생아 수인 합계출산율은 2000년 1.48명이었으나 2017년 1.05명까지 줄었으며 지난해에는 0.78명으로 OECD 평균(1.58명) 대비 큰 차이를 보였다. 이 같은 현상은 사망자가 출생아를 넘어서는 데드크로스로 이어졌다. 2020년 사망자가 총 30만5100명으로 집계돼 출생아 수(27만2400명)를 처음으로 웃돌았다. 이는 2022년까지 이어졌다.

유소년층이 줄고, 노년층이 늘며 병상과 의사 수가 크게 요동쳤다. 올 3월 복지부가 발표한 '보건통계 2023' 자료에 따르면 국내 병상 수는 2021년 기준 인구 1000명당 12.8개로 OECD 평균(4.3개)의 3배 가까운 차이를 보이며 가장 많았다. 병원 외래 진료 횟수는 15.7회로 OECD 평균(5.9%)을 크게 웃돌며 이 역시 가장 컸다. 병상과 환자는 늘었지만 의료 인력이 이를 뒷받침하기엔 턱없이 부족했다. 2021년 한의사를 포함한 국내 임상 의사 수는 인구 1000명당 2.6명으로 멕시코(2.5명) 다음으로 적었다. 간신히 꼴찌는 면했지만 OECD 평균(3.7명)과 비교하면 갈 길이 멀다.

데드크로스로 인한 인구 감소는 곧 지방 감소로 흘러갔다.
올 4월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가 여론조사기관 모노리서치에 의뢰해 수도권 외 지역 거주 만 18세 이상 국민 1000명을 대상으로 '지역경제 현황과 전망'을 조사한 결과 지방 인구 10명 중 4명(41.1%)이 현 거주지를 떠나 수도권으로 이주를 희망한다고 답했다. 그 이유로는 열악한 일자리 여건(47.4%)이 가장 높았으며 문화 및 휴식시설 부족(20.9%), 보건 및 의료시설 접근성 미흡(20.4%) 등으로 나타났다.
 

지방도시 의사 감소 및 병상 부재 등으로 발생한 의료 붕괴가 걷잡을 수 없이 커지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지방도시 의사 감소 및 병상 부재 등으로 발생한 의료 붕괴가 걷잡을 수 없이 커지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지방 인구가 줄며 의사 수도 덩달아 감소해 의료 불균형 문제가 수면 위로 떠올랐다. 복지부에 따르면 2022년 서울시 인구 1000명당 의사는 3.47명으로 전국 17개 시·도 가운데 가장 많았다. 인구 1000명당 전국 평균 의사 수(2.18명)보다 약 1.3명 많았으며 2018년 3.01명에서 꾸준한 증가세를 보였다. 반면 지방 시·도 중 11곳은 인구 1000명당 의사 수가 2명도 채 되지 않았다. 인천과 강원이 1.81명을 기록했으며 제주(1.79명), 경기(1.76명), 전남(1.75명), 경남(1.74명), 울산(1.63명), 충북(1.59명), 충남(1.53명), 경북(1.39명)으로 나타났다. 세종은 1.29명으로 의사 수가 가장 적었다. 의사가 부족한 지자체는 평균 대비 높은 연봉을 제시하는가 하면 정년을 넘긴 고령 의사를 채용하는 등 자구책을 쓰고 있지만 그 효과는 미미하다.

환자는 '응급실 뺑뺑이', 의사는 '비인기과' 외면

설사 응급실에 환자가 도착하더라도 의사 또는 병상이  없어 다른 병원으로 돌려보내는 사례가 최근 5년간 3만7000여건에 달했다. 올 6월 최혜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소방청으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 2018∼2022년 119 구급대 환자 재이송 건수는 3만7218건으로 집계됐는데 1차 재이송이 3만1673건, 2차 재이송은 5545건이었다. 재이송은 구급차가 환자를 병원으로 옮겼는데 진료 등이 거부돼 다른 병원으로 다시 이송한 사례다.

2018년 5086건이었던 재이송은 2019년 1만253건으로 두 배 가까이 늘었다. 코로나19 팬데믹 기간인 2020~2022년에는 각각 7542건, 7634건, 6703건으로 감소세를 보였지만 코로나19 이전 대비 2000여건 많다. 거절 사유로는 전문의 부재가 1만1684건으로 전체의 31.4%를 차지했다. 이어 응급실이나 수술실·중환자실 등 병상 부족이 5730건(15.4%)으로 나타났다.

피부과, 성형외과, 안과 등 피부미용과 관련한 과가 인기를 끌며 상대적으로 임금이 낮고 기술적으로 어려우며 인원수가 적어 과도한 근무시간 등이 지적되는 소아청소년과, 산부인과, 흉부외과 등의 충원율이 좀처럼 늘지 못하고 있다. 

복지부에 따르면 저출산과 낮은 수가, 환자 보호자의 민사소송 및 형사처벌 등으로 고초를 겪다가 지난 3월 폐과를 선언한 소아청소년과의 충원율이 2018년 101.0%에서 올해 16.3%로 90% 가까이 추락했다. 같은 기간 외과는 83.2%에서 65.1%로 감소했다. 산부인과와 흉부외과의 올해 전공의 충원율은 각각 71.9%, 51.4%에 불과하다. 지난해 소아청소년과는 개업 대비 폐업률이 65%를 기록하며 보호자는 조금이라도 먼저 아픈 아이 치료를 위해 새벽부터 일찍 '오픈런'을 한다.
 

정부는 의료 붕괴 해결을 위해 의대 정원 증원 방안을 제시하고 있지만 의료계의 거센 반발에 부딪혔다 [사진: 연합뉴스] 
정부는 의료 붕괴 해결을 위해 의대 정원 증원 방안을 제시하고 있지만 의료계의 거센 반발에 부딪혔다 [사진: 연합뉴스] 

이러한 의료 붕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정부는 오는 2025년부터 의대 입학정원을 확대한다. 다만 구체적인 확대 규모나 의대 신설 등과 같은 세부내용을 두곤 "모든 당사자의 의견을 수렴하겠다"며 신중한 태도를 보였다. 

지난 20일 한덕수 국무총리는 정부서울청사에서 '지역의료 혁신 이행을 위한 관계장관회의'를 열고, 전날 윤석열 대통령 주재로 열린 '생명과 지역을 살리는 필수의료 혁신 전략회의'에 대한 후속대책 마련을 주문했다. 이번 회의에는 교육부와 법무부, 행안부, 문체부, 복지부 등이 참석했다. 

한 총리는 “우리나라의 의사 수는 인구 1000명당 2.6명 수준으로 지방 의료의 붕괴와 필수분야 의사인력 부족으로 나타나고 있다"고 우려했다. 이어 "2050년에는 의사인력 부족이 2만2000여명에 이를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며 "의대에 입학해 전문의가 되는데 10년의 시간이 필요한 만큼 지금 증원하지 않으면 우리 사회에 더 심각한 위협으로 다가올 것"이라고 의대 정원 확대 필요성을 부각했다. 증원을 위해 범정부적 대응과 협조체계를 강조하며 복지부와 교육부, 법무부, 행안부 등 각 부처가 충분히 상호 간 협의하여 세부적인 추진방안을 마련하라고 지시했다. 그러면서 의료계와 국민 의견을 적극 수렴해 공유할 것도 강조했다. 

한 총리는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사전 소통노력"이라며 "정부는 의료인력 확충을 포함하여 여러 가지 대책들이 충분한 논의와 협의를 거쳐 마련되도록 할 것"이라고 역설했다.

의대 정원 증원 시도마다 거센 반대 입장 표명한 의료계

과거부터 꾸준히 의대 정원 증원에 대한 목소리가 이어져왔지만 대한의사협회(의협)은 의대 정원 확대를 두고 '집단 휴진'까지 예고하는 등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의료계는 의대 정원 증원에 반발하는 성명서를 냈다.

지난 16일 의협 대의원회 운영위원회는 "일방적으로 의대 정원을 확대할 경우 가용한 모든 수단으로 총력 대응에 나서겠다"고 경고했다. 의료계는 의대 정원 확대의 부작용을 최소화하기 위한 제도 정비를 생략한 채 벌이는 정책은 의료 체계를 무너뜨릴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의대 정원 증원은 2020년 문재인 정부가 한 차례 추진하려 했으나 의사들의 집단 휴진과 의대생의 국가고시 거부 등의 반발로 물거품이 됐다.

또 지난 17일에는 우봉식 의협 의료정책연구원장이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지금까지 연구된 자료로는 의사 숫자가 많고 적음을 판단하는 것이 사실 불가능하다"는 입장을 보였다. 우 원장은 의대 정원이 유지되면 2035년에 2만7232명의 의사가 부족할 것이란 내용이 담긴 한국보건사회연구원 발표와 관련해 "보고서는 국가마다 다른 제도와 공급 구조, 의료 이용 문화 등을 전혀 반영하지 않았다"면서 "부실한 연구 보고서 하나만으로 의사 인력을 결정한다는 것은 굉장히 위험하다"고 지적했다. 

이어 "현재 의료 과소비가 문제 되고 있는데 (의사 수가 늘어나면) 과소비 불길에 기름을 끼얹어서 결국 건강보험 붕괴와 보건의료 자체가 붕괴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말미에는 "실제 일주일 전 국회 예산정책처에서 발표한 2023~2032년 건보 재정 전망을 보면, 이미 2024년에 적자로 전환되고 2028년에는 누적 준비금이 소진되는 것으로 되어 있다"고 덧붙였다.

정부와 의료계의 이어지는 갈등으로 격해진 '의료 붕괴', 언제쯤 타협점을 볼 수 있을 지 국민들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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