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 화성 사업장 반도체 클린룸 내부 [사진: 삼성전자]
삼성전자 화성 사업장 반도체 클린룸 내부 [사진: 삼성전자]

[디지털투데이 고성현 기자] 반도체 시장에 바닥을 쳤다는 기대감이 점점 커지고 있다.

메모리반도체의 감산 효과가 서서히 나타나는 가운데 인공지능(AI)·DDR5 D램 등 고성능 제품 수요가 살아날 기미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내년 하반기면 반도체 산업 생태계 전반의 정상화가 이뤄질 것이란 관측도 나오고 있다.

업계에 따르면 반도체 사업을 영위하는 삼성전자 디바이스솔루션(DS) 부문은 올해 3분기 3조원대의 영업손실을 기록한 것으로 추정된다. 올해 시작된 적자 행보는 이어지고 있으나, 1~2분기 기록한 4조원 규모 영업손실이 1조원 이상 축소했다는 의미다. 증권가 등에서는 삼성전자 DS 부문이 올해 4분기 영업손실 1조원, 내년 상반기 흑자로 전환할 수 있다는 기대감이 나온다.

반도체 낙관론이 나오는 배경에는 높아진 고성능·고용량 메모리 수요 상승이 자리잡고 있다. 올해 초 인공지능(AI) 열풍이 불며 급격히 늘어난 데이터 처리량을 감당할 수 있는 고성능 메모리 필요성이 부각됐고, 이에 따라 광대역폭메모리(HBM), DDR5 D램 등 고부가 제품을 요구하는 기업이 늘고 있는 추세다. 여기에 일반 데이터센터 투자가 AI 서버 투자로 전환되면서 주요 적용처였던 서버향 제품 비중도 점점 증가하고 있다.

차세대 표준인 DDR5 D램 수요가 탄력받는 점도 지켜볼만한 대목이다. 당초 DDR5 D램은 지난해 본격 양산된 이래 더딘 교체 수요로 전체 D램 매출 중 한 자릿수에 불과했으나 올해부터는 수요가 늘고 있다. 악성재고로 남았던 DDR4 D램 역시 감산과 DDR5 D램 공급 탄력에 따라 재고소진이 전보다 빠르게 이뤄지는 중이다. 대만 시장조사기관인 트렌드포스는 감산과 DDR5 D램 수요 상승이 맞물리며 평균판매가격(ASP)이 4분기부터 3~8% 가량 오를 것으로 내다봤다.

삼성전자가 예상했던 것 대비 적자폭을 크게 줄인 것으로 파악되자 업계의 시선은 SK하이닉스로 쏠리고 있다. SK하이닉스가 AI용 메모리인 HBM에서 과반 이상의 점유율을 확보하고 있어, 실적 개선 수치도 더욱 높을 수 있다는 기대감이 있어서다. 에프앤가이드 기준 SK하이닉스의 실적 전망치(컨센서스)는 영업손실 1조6424억원으로 전분기(-2조8821억원) 대비 1조원 가량의 손실폭 완화가 예상된다.

반도체 업황이 개선될 여지를 보이자 업계 내에서도 메모리 증산 가능성이 거론되고 있다. DDR4 D램 라인을 DDR5 D램으로 돌려 고부가 제품 집중도를 높이고, 감산은 업황 반등이 더딘 DDR4 D램·낸드플래시 일부 제품으로만 유지하는 방향으로다. 만약 이같은 방향이 실현된다면 한동안 멈췄던 반도체 업계의 설비투자가 다시금 시작될 수 있는 셈이다.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의 설비투자가 재개될 시 국내 반도체 소재·장비·부품 업계로도 수혜가 돌아갈 것으로 예상된다. 국내 소부장 업계는 올해 SK하이닉스 등의 설비투자 지연과 중국 경제 침체에 따라 적지 않은 타격을 받은 바 있다.

다만 소부장 생태계를 아우르는 국내 반도체 업계 전반의 반등은 내년 이후에야 가능할 것이라는 관측이 여전히 지배적이다. D램 가격 상승과 AI 수요 촉진 등 긍정적인 소식이 흘러나오고 있으나 실제로 수요가 정상화되는 시점은 내년 하반기로 예상되고 있어서다.

이스라엘과 하마스의 전쟁 등 지정학적 리스크가 커지는 점도 불안 요소다. 특히 이스라엘 남부 키랴트가트에 위치한 인텔의 CPU 생산기지의 위험 여부가 메모리 업계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메모리는 단독으로 기능할 수 없는 칩 특성상 CPU·GPU 수요와 연동돼 공급 흐름이 움직이기에, CPU 생산에 차질이 걸리면 메모리 역시 차질이 불가피하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메모리 수요가 높아지는 긍정적이나 지정학적 위협 요인이 늘고 있어 마냥 긍정적으로만 볼 수 없다"며 "인텔의 생산 기지가 차질을 빚게 된다면 글로벌 공급망이 또다시 흔들리게 되고, 주요국의 자국 투자 우선주의가 커지게 돼 반도체 업계의 부담도 늘어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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