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픈AI가 개발한 대화형 챗봇 AI 기술인 챗GPT(ChatGPT) [사진: 셔터스톡]
오픈AI가 개발한 대화형 챗봇 AI 기술인 챗GPT(ChatGPT) [사진: 셔터스톡]

[디지털투데이 고성현 기자] 미국 스타트업 오픈AI의 '챗GPT(ChatGPT)'가 열풍을 불러일으키자 세계 주요 반도체 및 IT 기업이 AI 챗봇 투자에 열을 올리고 있다. 국내 반도체업계도 본격적인 경쟁 대열에 올라설 태세다.

상황이 이러니 챗GPT는 국내 반도체 업계에 희망이 될 수 있다는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특히 미숙한 시스템반도체 생태계 구축에 절호의 기회로 다가서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심화된 국내 인력난과 함께 거대자본이 없는 국내 팹리스 업계의 고질적인 생태계적 한계 극복이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AI 반도체는 인공지능에 필요한 대용량·대규모 연산에 최적화된 시스템반도체다. AI의 딥 러닝을 위한 연산 처리를 담당하는 칩이다. FPGA(Field Programmable Gate Array), 주문형반도체(ASIC), 신경망처리장치(NPU) 등이 대표적이다.

과거에는 중앙처리장치(CPU)와 그래픽처리장치(GPU)가 이 역할을 담당했다. 하지만 데이터를 병렬, 대규모로 처리해야 하는 AI용으로는 부족하다는 한계점이 있어 AI반도체가 등장하게 됐다.

시장조사업체 가트너에 따르면 지난해 AI 반도체 시장 규모는 444억달러로 전년 대비 27.8% 성장했다. 2026년에는 861억원 달러 수준이 전망된다. 적용처 역시 서버, 자율주행 및 전장, 보안, 소비자용 등 무궁무진하다. 마이크로소프트, 구글을 비롯한 빅테크와 삼성·SK 등 대기업이 이 시장에 뛰어든 이유다.

사피온이 개발한 X200 [사진: SK텔레콤]
사피온이 개발한 X200 [사진: SK텔레콤]

국내에서는 스타트업 규모 반도체 설계 전문(팹리스)업체들이 NPU 개발 등에 적극 나서고 있다.

SK스퀘어, SK텔레콤, SK하이닉스가 합작한 사피온은 데이터센터용 AI반도체 '사피온 X330'을 올해 출시할 예정이다. KT가 투자한 스타트업 리벨리온은 최근 데이터센터향 시스템온칩(SoC) '아톰'을 내놨다. 아톰은 챗GPT의 원천 기술인 자연어 처리, 이미지 검색 기술 등을 지원한다. 퓨리오사 AI는 내년 상반기 챗GPT와 같은 언어모델을 지원하는 2세대 칩을 양산할 계획이다.

챗GPT와 같은 데이터센터용과는 용도가 다른 엣지 컴퓨팅(Edge Computing)용 AI 팹리스도 개발에 한창이다. 엣지 컴퓨팅은 서버 데이터를 현장 등에서 실시간 처리하는 방식으로, 자율주행·보안·사업 현장 등의 엣지 디바이스를 거쳐 AI를 구현한다. 스타트업 딥엑스가 이 분야의 NPU 기반 SoC를 개발하고 있으며, 오픈엣지테크놀로지도 엣지 디바이스용 NPU 설계자산(IP)을 개발해 팹리스에 공급하고 있다.

이 분야의 글로벌 경쟁자도 적지 않다. 미국 엔비디아는 GPU 경쟁력을 기반으로 한 데이터센터용 AI 반도체 개발을, 인텔은 2019년 인수한 하바나랩스를 통해 엣지 디바이스용 NPU를 개발하고 있다. 특히 미국의 팹리스들은 기존 반도체 칩 설계 경쟁력을 바탕으로 AI 반도체 분야의 강자로 꼽힌다.

국내 스타트업이 미국 등 글로벌 기업과 경쟁할 수 있는 이유는 AI 반도체를 확고하게 선점한 기업이 없어서다.

기존 반도체 칩 시장은 IP 부문에서 영국 ARM이, CPU·GPU 등에서는 인텔, AMD, 엔비디아가, 모바일 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AP)는 퀄컴, 애플, 미디어텍 등이 자리잡고 있었다. 이로 인해 노하우가 없는 신규 진입 업체는 고객사 유치는 커녕 선제적인 개발 진행마저도 어려웠다.

이에 반해 NPU 등 신규 AI 반도체는 최근 상용화 사례가 등장한 무주공산의 시장이다. 당장은 엔비디아가 우위를 점하고 있으나, 향후 등장할 신기술 구현 및 고객사 간 출혈 경쟁에 따라 언제든 주인이 바뀔 수 있는 상황이다.

15일 한림대학교 도헌학술원 개원 기념 학술 발표회에서 기조연설을 진행한 박정호 SK하이닉스 부회장 [사진: SK하이닉스]
15일 한림대학교 도헌학술원 개원 기념 학술 발표회에서 기조연설을 진행한 박정호 SK하이닉스 부회장 [사진: SK하이닉스]

문제는 국내에 반도체 칩을 설계하는 개발 인력풀이 적다는 것이다.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이 메모리반도체에 주력해왔던 만큼 관련 인력도 해당 인력에 집중돼 있는 데다, 과거 시스템반도체 생태계 구축을 위해 등장했던 팹리스들도 자금난과 경영난에 직면하며 규모가 크게 위축됐다. 얼마 없는 설계 인력마저도 구글, 마이크로소프트, 인텔 등 유수 기업에 빼앗기거나 메모리반도체로 직무를 전환하고 있는 실정이다.

한 팹리스 관계자는 "국내의 경우 메모리반도체는 삼성, SK가 주도하는 시장이지만, 시스템반도체의 핵심인 팹리스는 삼성전자나 디스플레이구동칩(DDI)을 만드는 LX세미콘 외 큰 기업이 없는 소규모 시장"이라며 "그나마 있던 인력마저 삼성이나 SK로 향하고 있어, 중소 기업은 선제적인 개발을 진행하면서도 인력까지 길러내야 하는 이중고를 겪고 있다"고 말했다.

이같은 고민은 중소기업 중심 팹리스만이 가진 것이 아니다. 삼성전자, SK하이닉스의 고뇌도 크다. 메모리반도체 분야 인력을 확보하기 위한 임금 경쟁은 물론, 차세대 시장을 잡기 위한 신규 인력마저 확보해야 하는 상황에 놓여 있다.

박정호 SK하이닉스 부회장은 지난 15일 한림대학교 도헌학술원 개원 기념 학술 발표회에서 "대화형 인공지능 '챗GPT'를 시작으로 이 분야가 반도체 수요의 새로운 '킬러 애플리케이션(Killer Application)이 될 것"이라면서도 "한국이 반도체 강국의 위상을 지키기 위해서는 우수 인재 육성, 정부의 반도체 생태계 강화 노력, 미래 기술 준비가 필수적"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삼성전자는 SAFE(Samsung Foundry Ecosystem)를 통해 국내 IP 및 SoC 파트너의 성장을 돕고 있다. 이밖에 삼성 DSP에 속한 디자인하우스와 오픈형 혁신 플랫폼을 구축해나가고 있다. 하지만 이들 역시 인력난은 물론, 실적마저 부진에 빠진 상태다.

김기남 삼성전자 SAIT(옛 삼성전자종합기술원) 회장도 해당 발표회에서 "첨단 기술력을 가지려면 우수한 인재가 있어야 한다"며 "민간 투자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경쟁국에 뒤지지 않는 지원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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