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투데이 고성현 기자] 고성능 배터리 개발에 박차를 가하던 국내 배터리업계가 리튬인산철(LFP) 배터리에 눈길을 주고 있다. 중국 배터리업체가 북미 시장에 진입이 어려워지자, 현지 LFP 배터리 수요도 선점하기 위해서다.
글로벌 전기차 시장은 배터리 고성능화에 따라 시장이 둘로 나뉘고 있다. 에너지밀도를 높이는 니켈 함량을 높인 하이니켈 양극재 배터리 중심 하이엔드 전기차와 LFP와 망간리치(LMO, OLO) 중심 중·저가 전기차가 대표적이다.
당초 국내 배터리 업계는 하이니켈 중심 하이엔드 전기차로 시장을 노렸다. LFP 배터리가 전기차로 쓰이기 어려웠던 탓이다.
LFP 배터리는 인산, 철 등 저렴한 원료로 만들 수 있는 배터리다. 기존 NCM(니켈·코발트·망간) 등 삼원계 배터리보다 단가가 30% 가량 낮다. 에너지밀도가 낮아 전기차 주행거리 향상에 한계가 있다. 에너지밀도가 낮으면 더 많은 배터리가 투입돼야 한다. 그만큼 무게가 늘어나 차량도 무거워진다. 중국 배터리업체의 LFP 배터리 공세로 설사 LFP 사업에 진입하더라도 이익 내기가 어렵다는 것이 업계 중론이었다.
그러다 기조가 차츰 바뀌기 시작했다. 리튬·코발트·니켈 등 핵심 원료 가격이 급등해 배터리 판가가 인상됐기 때문이다. 전기차 시장이 막 커지기 시작하며 경쟁이 점점 치열해지자 저렴하고 비교적 공급이 쉬운 LFP 배터리가 각광을 받게 된 것이다. 이에 따라 테슬라를 시작으로 벤츠, 폭스바겐, 현대자동차, BMW 등 유수 자동차 기업이 LFP배터리를 중·저가 라인업에 추가한 상황이다.
LFP가 구형 배터리란 인식을 떨쳐내고 있는 점도 한몫했다.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등 중형 차량이 인기를 끌며 차량 무게 증가란 단점이 상쇄됐고, 셀투팩(CTP) 및 셀투샤시(CTC) 기술을 적극적으로 개발하면서 에너지밀도가 높아지고 있는 추세다. CTP, CTC는 기존 셀-모듈-팩으로 구성된 전기차 배터리에 모듈을 제거한 기술이다. 이 기술은 모듈 프레임 제거로 충격에 의한 열폭주 등의 한계가 있지만, 더 많은 셀을 투입해 에너지밀도를 높일 수 있다.
특히 K배터리 기업의 LFP 배터리 변심은 미국 인플레이션 법안(IRA) 발효로 중국 업체의 공급망 배제가 주된 원인이다.
IRA에는 배터리 핵심 광물을 미국이나 미국 자유무역협정(FTA) 체결국가에서 일정 비율 수급해야만 세액공제 혜택을 준다는 내용이 담겼다. 아울러 중국, 러시아, 이란 등 우려 국가 광물 사용 시에는 세액공제 대상에서 제외된다. 원료 경쟁력을 바탕으로 배터리 사업을 진행하는 중국 기업은 사실상 북미 시장 진출이 좌절된 것이다.
한 배터리 업계 관계자는 "그동안 중국은 워낙 시장이 컸고 경쟁이 어려워 진입하지 않았으나 IRA 발효로 기회가 생긴 상황"이라며 "북미 내 무주공산이 된 LFP 배터리 수요마저 국내 배터리 업계가 점유하자는 게 현재의 구상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전에는 에너지저장장치(ESS) 등 LFP 효율이 높은 애플리케이션 중심으로 개발을 고려해왔지만, IRA로 본격적인 LFP 배터리 양산 일정까지 고려하고 있다는 것이 업계 입장이다.
LG에너지솔루션은 내년 중국 난징 공장을 LFP 제조라인으로 전환하고, 2024년에는 미국 미시간 공장에 신규 라인을 만들 계획이다. 공식적으론 ESS용으로 언급하고 있지만, 업계는 전기차 공급 시발점이 될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SK온도 주요 고객사 요청에 따라 LFP 배터리를 개발하고 있다.
양극재 업체도 배터리 셀 제조사의 로드맵에 따라 LFP 개발을 서두르는 모습이다. 엘앤에프는 3분기 컨퍼런스 콜 당시 "하이엔드(전기차 시장)는 하이니켈로, 중저가용으로는 LMO나 LFP가 가는 방향인데 LFP의 경쟁력이 더 강해지는 추세"라며 "당사는 LFP도 개발하고 있고 고객사와 샘플 테스트를 잘 진행하고 있다"고 언급했다.
에코프로비엠은 지난 1일 열린 '에코 프렌들리 데이'에서 저가형 양극재 시장을 타겟으로 LFP 양극재 양산 라인을 내년에 착공, 2025년 양산할 계획을 밝혔다. 포스코케미칼과 LG화학에서는 LFP 양산 계획이 나오진 않았으나 관련 사업화를 고려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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