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 실시한 유료방송업계 상생협의체 현장 모습 [사진 : 과기정통부]
지난 7월 실시한 유료방송업계 상생협의체 현장 모습 [사진 : 과기정통부]

[디지털투데이 백연식 기자]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유료방송시장 채널계약절차 관련 가이드라인’ 개선과 ‘표준 PP(방송채널사용사업자, Program Provider) 평가기준 및 절차 제정을 추진 중인 가운데 PP 업계의 반발이 거세다. (관련기사/[단독] 방송사업자 간 콘텐츠 공급 절차 가이드라인 나온다) 과기정통부는 지난달 15일 2차 유료방송업계 상생협의체를 열었지만 결론이 나지 않아 국정감사가 끝나는 10~11월경 3차 유료방송 상생협의회가 열릴 예정이다. (관련기사/[단독] 과기정통부, 표준PP평가기준 공개...2년 연속 하위 10% 종료)

하지만 중소 PP 업계에서 정부의 일방적인 가이드라인 개선이라고 반발하고 있어 정부 의도대로 개선이 될 수 있을지 불투명하다. 특히 가이드라인에 선계약 후공급을 명시하는 것에 대해서 중소 PP들이 사실상 CJ ENM, 지상파, 종합편성채널에 대한 특혜라며 거세게 반발하는 상황이다. 

1일 과기정통부 및 유료방송업계에 따르면 정부는 국정감사가 끝나고 이르면 10월 말, 늦어도 11월 3차 유료방송업계 상생협의체를 열 예정이다. 정부는 현재 현행 ‘유료방송시장 채널계약절차 관련 가이드라인’을 ‘방송사업자간 콘텐츠 공급 절차 등에 관한 가이드라인’으로 개선하는 것을 추진 중이다. 또한 ‘표준 PP 평가기준 및 절차’를 공개했는데, 이를 통해 기존 유료방송사(SO, IPTV, 위성)의 자율 기준에 대한 평가와 ‘표준 PP 평가기준 및 절차’에 따른 평가 모두 가능하도록 했다.

하지만 정부 안인 ‘표준 PP 평가기준 및 절차’에 따라 평가한 경우 합리적 평가로 간주하기 때문에 중소 PP들은 물론 유료방송사도 사실상 반대하고 있는 입장이다. 유료방송사(SO, IPTV, 위성) 입장에서는 PP 평가에 대한 자율권을 침해한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정부는 유료방송사가 자체 평가 기준 시스템(기준) 활용 시 과기정통부에서 합리성을 체크하겠다는 입장인데, 이는 자율성을 무시하고 간섭으로 비춰질 우려가 있다. 정부는 ‘선계약 후공급 원칙’의 경우 계약기간 종료전 협의를 완료해야 하며 선계약 결렬시 정부가 책임소재를 따지겠다고 설명했는데, 이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 역시 나오고 있다. 

정부는 PP 평가 대상 기간의 경우 기존 전년도 10월 1일~다음 연도 9월 30일에서 매년 1월 1일~12월 31일로 변경하는 것을 추진한다. 평가 주기는 기존 평가 요소 별로 월평가, 분기, 반기로 진행했던 것을 연가 평가 방식으로 바뀐다. 기존에는 분기별 연속 E이하이거나 장르별 하위 10%에 속하는 그룹은 재계약 보류 대상이었지만 이제는 2년 연속 하위 10% PP를 채널 종료할 수 있도록 했다. 물론 사업자 협의 후 종료가 가능한 부분이라 강제조항은 아니라고 정부 측은 설명했다. 하지만 PP들은 이를 믿을 수 없다는 입장이다.

한 중소 PP 관계자는 “가이드라인이 법적 구속력이 없다고 하지만 시행되다 보면 가이드라인이 나중에는 고시, 그 후에는 시행령이 될 수 있다. 어떤 사업자가 정부가 정한 가이드라인을 어떻게 안 따를 수 있을 지 의문”이라며 “유료방송 생태계가 현재 형성돼 있는데, 정부의 가이드라인 개선안은 생태계를 파괴하려는 잘못된 정책”이라고 주장했다. 

정부는 이번 ‘방송사업자간 콘텐츠 공급 절차 등에 관한 가이드라인’은 오는 10월부터 시행할 계획이지만, 내년 1월 1일 이후 채결하는 채널 계약부터 적용한다고 설명했다. 이 가이드라인에 따르지 않는 채널사용계약 및 채널 구성은 ‘방송법’ 상 정당한 사유 없는 채널 제공 거부·중단 또는 채널 변경의 변경 행위 및 ‘IPTV법’ 상 부당한 계약체결 금지행위 조사 우선 대상자로 선정해 정부 조사를 실시할 계획이다. 과기정통부는 이번 가이드라인에 따르지 않는 이용약관의 변경 신고는 수리가 거부될 수 있다고 문서를 통해 분명히 명시했다. 정부가 민간 업체를 대상으로 협박에 나서고 있다고 볼 수밖에 없다. 

중소 PP 다른 관계자는 “2년 연속 하위 10% PP를 채널 종료할 수 있도록 한 것이 가장 큰 문제다. 사실상 중소 PP를 죽이는 정책”이라며 “매일 한 프로그램을 5방, 6방, 7방 틀어대는 PP는 물론 문제다. 이들은 솔직히 사라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무조건 매년 10%를 강제적으로 퇴출하려는 가이드라인은 중소PP를 다 사라지게 하려는 정책”이라고 주장했다.

이번 방안의 또 다른 핵심은 가이드라인을 통해 선계약 후공급 원칙을 명시하는 것이다. 법안은 IPTV 사업자들이 PP와 먼저 계약한 뒤 프로그램을 방송화하도록 의무화한 것이다. CJENM이 주도해  한 법안이 제출된 것으로 알려져 있고, 실제로 적극 지지하는 상황이다.

선계약 후공급의 경우 CJ ENM 등 대형 PP의 독주를 통해 오히려 불공정 계약을 야기할 수 있다는 시각이 우세하다. 방송통신위원회의 ‘2019년 방송사업자 재산상황공표집’에 따르면, 현재 유료방송 채널 거래 시장은 전체 145개 PP 중 상위 5개 사업자가 전체 PP 프로그램 사용료 매출의 47.6%를 차지하며 대형PP 중심의 극심한 불균형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이에 대해 한국케이블TV방송국(SO)협의회 측은 성명서를 통해 “대형 PP의 독주 현상은 플랫폼 사업자와 불공정 계약을 야기한다”며 대표적인 사례로 시청률 높은 채널을 앞세워 자사 채널의 추가 편성을 요구하는 ’채널 끼워팔기‘를 언급한 바 있다. 이어 “자사채널 끼워팔기는 중소PP 또는 신규채널의 시장 진입 기회를 박탈한다”며 “SO는 강력한 협상력을 가진 대형 PP의 요구조건을 수용할 수밖에 없는 실정“이라고 지적했다.

지난 4월 열린 법안소위에서 조경식 과기정통부 제2차관은 “협상력이 강한 사업자가 우월적 지위를 행사할 가능성이 생길 수도 있어 좀 신중하게 검토돼야 하지 않냐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에 중소 PP들은 ▲CJ ENM이 원하는 ‘선계약 후공급’ 대신에 ‘매출액 대비 수신료 배분 쿼터제’를 도입하고(전체 유료방송 플랫폼 수신료 배분액 중 일정 부분을 PP사업 매출대비 등급으로 분류) ▲IPTV 3사가 원하는 ‘채널계약 절차 가이드라인 및 PP평가 기준 개선방안’ 재협의를 주장했다. ‘채널계약 절차 가이드라인 및 PP평가 기준 개선방안’은 플랫폼 위주의 평가정책으로 기존의 사업자 간 협상보다 후퇴한 시행지침이라는 것이 그들의 판단이다. 또한 유료방송사에게 PP 퇴출이란 무기를 통해 PP의 대 플랫폼 협상력을 약화시키는 방안이라고 강조했다. 

한 PP 관계자는 “이번 정부의 정책은 지상파, 종편, CJ ENM 만을 위한 정책이다. 과기정통부는 중소 PP를 전혀 생각 안하는 것 같다”며 “사실상 정부가 시장에 개입해 직접 PP 구조조정에 나서려는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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