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투데이 정명섭 기자] 선택약정 요금할인율 인상(20%→25%)을 두고 정부와 이동통신 3사가 벌인 줄다리기에서 결국 정부가 웃었다.

SK텔레콤과 KT, LG유플러스 등 이통 3사는 29일 오후 과학기술정보통신부에 “지원금에 상응하는 요금할인율 25% 상향 적용을 차질 없이 이행하겠다”는 의견을 전달했다.

이번 주는 이통 3사의 행정소송 여부가 결정되는 분수령이었다. 이들 3사는 막판까지 고심을 거듭하다 결국 정부안을 수용하기로 했다. 이에 따라 신규 통신 가입자는 9월 15일부터 선택약정 요금할인 제도 선택 시 25%로 인상된 요금할인을 받을 수 있다.

기존 고객은 현재 약정을 만료 또는 해지 후 재약정 해야 한다. 기존 가입자를 대상으로 한 소급 적용은 법적 근거가 없어 추진할 수 없다는 것이 과기정통부는 설명했다. 다만 요금할인율 인상이 시행되기 전까지 이통 3사와 협의해 기존 가입자들의 위약금을 줄이거나 면제하는 방안을 협의할 계획이다.

소송 으름장 놓던 이통사, 왜 백기 들었나

이동통신 3사는 국정기획자문위원회가 지난 6월 22일 문재인 정부의 가계통신비 절감 대책을 처음 발표한 이후 요금할인율 고시 적용에 문제가 있다고 강하게 비판해왔다. 선택약정 요금할인 제도는 공시지원금을 받지 않은 소비자에게 지원금 만큼의 요금할인을 제공한다는 취지로 도입됐는데, 정부가 이를 통신비 인하 수단으로 활용하는 것은 권한 남용이라는 것이다.

또한 과기정통부 고시에서 명시한 요금할인율 산정 시 ‘100분의 5 범위 내에서 가감하여 산정한다’는 것이 5%인지, 5%포인트를 의미하는 것인지 해석이 모호하다고 재차 지적해왔다.

이동통신사들의 가장 큰 우려는 정부가 고시를 바탕으로 매년 요금할인율을 올릴 수 있다는 점이었다. 이에 각 사는 대형 로펌의 자문을 받아 행정소송을 준비하는 움직임을 보였다.

그러나 정부를 상대로 법적 다툼을 벌이는 것은 현실적으로 큰 부담이었다. 통신 산업 특성상 피규제집단인 이통사는 정부와의 관계에서 약자일 수 밖에 없다. 또한 이통사는 대표적인 내수 기업으로, 6200만명에 달하는 통신가입자의 여론을 묵살하게 되면 탐욕스런 기업이라는 오명을 받을 것이 불 보듯 뻔했다.

이통사가 소송을 벌여 당장은 요금할인율 인상을 막는다고 해도 보편요금제 도입과 취약계층 요금 감면 등 다른 통신비 절감 대책이 기다리고 있다는 점도 고려해야 했다.

여기에 방송통신위원회와 공정거래위원회가 이통 3사를 대상으로 각각 선택약정 요금할인 제도 고지 이행 여부, 통신요금 담합 실태조사 등에 나서면서 압박 수위를 높인 것도 정부 정책을 받아들이게 된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

이동통신사의 한 관계자는 “법리 검토 결과 법정에서 다퉈 볼만한 사안이었으나, 향후 정부와의 관계 등 종합적인 것을 고려해 정부 안을 수용하기로 했다”고 전했다.

지난 6월 22일 이개호 국정기획자문위원회 위원장이 문재인 정부의 가계통신비 절감 대책을 최종 발표하고 있다.

한 숨 돌린 정부, 보편요금제‧취약계층 요금 감면 등 큰 산 남아

과기정통부는 다소 안도하는 분위기다. 과기정통부는 이통 3사와의 소송에 대비해 내부적으로 관련 자료를 준비하고 있는 상황이었고, 승소에 강한 자신감을 보였다. 다만 요금할인율 인상 시기가 최소 6개월 가량 늦어지는 것을 우려했다.

9월 정기국회까지 대통령 공약인 통신비 인하 대책 중 어느 하나라도 시행하지 못하면 비난의 화살이 쏟아지는 것은 불가피했다. 이통사가 요금할인율 인상 시기로 10월을 원했음에도 불구하고 과기정통부가 9월 15일로 못 박은 것은 이같은 이유에서다.

과기정통부는 넘어야할 더 큰 산이 남아있다. 요금할인율 인상은 과기정통부 고시만으로 적용 가능해 독자적인 추진이 가능했으나, 보편요금제 도입과 취약계층 요금 감면 등 나머지 통신비 절감안은 전기통신사업법 개정이 필요해 국회를 거쳐야 한다.

그러나 관련 법안을 심사할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는 16곳의 상임위원회 중 법안심사소위원회 개최 수가 가장 적어 ‘식물 상임위’라는 오명을 받고 있다. 실제로 문재인 대통령의 공약이었던 지원금 상한제 조기 폐지도 국호에서 논의조차 되지 않은 채 데드라인을 넘기고 말았다.

과기정통부 관계자는 “통신비 인하는 산 넘어 산”이라며 “국회를 통과해야 하는 보편요금제 도입이나 취약계층 요금 감면 등이 남아있어 사실상 이제부터가 시작”이라고 말했다.

유영민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이 29일 정부과천청사 국무위원 식당에서 출입기자들에게 인사말을 하고 있다. (사진=과학기술정보통신부)

고가 단말기 구매자의 요금할인 선택 고착화

이동통신업계에 따르면 요금할인율이 20%인 현 상황에서 고가 단말기 구매자의 선택약정할인 선택 비율은 80%에 달한다. 최신 스마트폰에 제공되는 공시지원금은 상한선인 33만원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해 20% 요금할인을 받는 것이 더 유리하기 때문이다. 요금할인율이 25%로 인상되면 이같은 현상은 고착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변수는 9월 30일부로 일몰되는 지원금 상한제다. 지원금의 상한선이 사라지는 만큼 이통사와 제조사는 단말기의 지원금을 전보다 늘리겠으나, 시장을 자극할 정도로 크게 증가하진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공시지원금은 선택약정 요금할인율과 상호 연동되는 성격이 있기 때문이다. 공시지원금은 이통사와 제조사가 함께 나눠내고 요금할인은 이통사가 홀로 부담해야 하는 만큼, 소비자가 요금할인에 치우치지 않을 정도로 지원금을 책정할 것으로 예상된다.

김재영 방통위 이용자정책국장은 “이통사가 지원금을 무작정 올리면 선택약정 요금할인율도 올려야 하는 등 서로 보완적인 부분이 있어서 지원금 상한제가 폐지돼도 시장이 요동치진 않을 것으로 보인다”며 “또한 모든 가입자에게 차별 없이 지원금을 제공하도록 공시하는 제도가 있어 시장 교란 가능성은 적다”고 말했다.

저작권자 © 디지털투데이 (DigitalToday)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