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티투데이 이호연 기자] 삼성과 애플이 명분 대신 실리를 택했다. 양사가 미국을 제외한 국가에서의 특허 소송을 모두 취하하면서 3년에 걸친 특허 전쟁이 화해 국면으로 접어들었다. 삼성과 애플의 시장 지배력이 예전과 같지 않은 가운데 장기간 소송으로 얻는 실익이 없다는 판단에서다.

여기에 최근 샤오미 등 중국 업체의 약진도 이들을 위협하는 수준에 이르렀다. 사실상 미국에서의 특허 소송도 원만한 선에서 합의되지 않겠냐는 추측이다. 세계 스마트폰 시장을 양분하는 삼성과 애플의 다음 행보에 글로벌 업계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삼성-애플 “소송은 나의 힘”
지난 6일 삼성과 애플은 미국을 제외한 국가에서 진행하던 소송을 모두 취하하기로 합의했다. 이에 한국, 일본, 독일, 네덜란드, 영국, 프랑스 등 9개국에 걸려있던 소송은 종지부를 찍고, 미국에서의 소송 2건만 남았다. 다만, 이번 합의는 양사간 특허 라이센싱 협의와는 별개이다.

삼성과 애플의 특허 소송은 만 3년 이상 전개되어 왔다. 삼성은 주로 모바일 기기 통신 표준 특허를 애플은 디자인 특허를 가지고 소송을 치러왔다. 현재 진행소송만 10개국에서 30여건 수준이다.

겉보기엔 삼성과 애플은 하늘아래 둘도 없는 앙숙처럼 보인다. 그러나 속을 들여다보면 훨씬 복잡한 관계이다. 원래 삼성과 애플은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했었다. 애플은 ‘아이팟’을 개발할 때부터 삼성을 파트너사로 선정해 주요 부품을 공급해왔다. 현재도 아이폰이나 아이패드 등의 주요 부품에는 디스플레이 등 삼성 부품이 쓰이고 있다.

그러나 삼성이 스마트폰 시장에서 무서운 성장세를 보이자, 애플은 이를 견제하기 위해 2011년 4월 미국 법원에 삼성을 제소한다. 엄청난 돈과 시간이 소요되는 특허전이었지만, 양사는 이를 통해 최고의 홍보 효과를 누렸다. 양사의 특허 소송은 수많은 이슈를 양산하며 IT업계의 최대 화두로 꼽혔다.

특히, 삼성은 애플에 대항하는 글로벌 업체로 급부상했다. ‘갤럭시’ 모델 또한 아이폰에 맞먹는 브랜드 파워를 얻었다. 애플 역시 돈 한 푼 안들이고 아이폰 홍보 효과를 누렸음은 물론이다. 양사는 이후에도 대립 구도를 마케팅에 교묘히 적용, 시장 파이를 키우며 지배력을 지켜왔다. 일각에서 삼성과 애플을 두고 ‘적대적 공생 관계’라 부르는 이유다.

▲ 팀 쿡 애플 CEO(왼쪽),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바람이 바뀌었다” 삼성-애플, 2세대 돌입
삼성과 애플이 그간 특허 소송에 지불한 변호사 수임료만 최대 7000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양사는 최고의 특허 변호사만을 선정해 팀을 꾸렸으며, 전세계 50여건의 소송을 진행했다. “양사의 특허 소송으로 가장 이득을 얻은 것은 변호사”라는 우스갯 소리가 있을 정도이다.

스마트폰 시장 초기에는 양사 모두 특허 소송에서 잃는 것보다 얻는 것이 많았다. 그러나 3년간 시장이 급변했다. 애플 아이폰의 글로벌 시장 점유율은 지속 하락하고 있으며, 눈높은 소비자를 만족시킬 ‘혁신’을 내놓기도 만만치 않은 상황이다. 삼성은 최근 계속되는 실적 하락에 위기감이 팽배하고 있다.

중국 휴대폰 제조업체도 무섭게 치고 올라오고 있다. 중국 업체들은 고사양 저가폰으로 신흥시장을 중심으로 점유율을 확대하고 있다. 사양은 갤럭시나 아이폰에 뒤지지 않으면서 가격은 3분의 1수준으로 제품을 내놓고 있다. 중국 샤오미는 지난 2분기 글로벌 시장에서 LG전자를 제치고 5위에 오르며 양사를 추격하고 있으며, 같은 기간 최대 시장인 중국에서는 판매량으로 삼성을 제쳤다. 애플은 6위에 그쳤다.

▲ 애플 '아이폰5S'(왼쪽)와 삼성전자의 '갤럭시S5'

이러한 상황에서 장기적인 소송은 소모전으로 치닫을 수 밖에 없다는 분석이다. 아직 미국에서의 소송이 남았지만 화해 분위기로 갈 가능성이 높을 것으로 보인다. 양사는 지난 6월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판정에 대한 항고를 취하했다. 지난달에는 애플이 미국에서 제기한 1차 소송 항소를 포기했다. 2차 소송 또한 지금보다 확대하지 않거나 원만한 선에서 합의될 것이라는 분위기다.

삼성과 애플의 기업 분위기도 변화가 감지되고 있다. 팀 쿡은 아이폰의 보급형 모델 출시, 아이폰 화면 크기 확대 등 잡스와 다른 행보를 보이고 있다. 이번 소송 취하도 팀쿡이 이 부회장과 만나 1년간의 논의 끝에 나온 결과인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삼성 또한 이건희 회장이 병석에 누운 뒤 이재용 부회장 체재로 개편하기 위해 속도를 내고 있다. 전 세대에서 벌인 일은 털고 가야 부담이 없지 않겠냐는 관측이다.

한편, 삼성은 애플 외에 마이크로소프트(MS)라는 새로운 변수가 생겼다. MS는 최근 삼성을 상대로 특허 소송을 제기했다. 삼성이 노키아를 인수한 MS가 자사 특허를 경쟁업체인 노키아에게 제공하는 것을 문제 삼자, MS가 법적 대응에 나선것이다. 삼성 내부에서는 MS에게 강경 대응을 취하겠다는 입장이다. 당분간 삼성의 적은 애플에서 MS로 바뀔 듯 하다. 이 바닥에는 영원한 적도 동지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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