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차 시대가 도래함에 따라 전 세계 자동차 제조사가 SW 능력을 시험받고 있다 [사진: 셔터스톡]
전기차 시대가 도래함에 따라 전 세계 자동차 제조사가 SW 능력을 시험받고 있다 [사진: 셔터스톡]

[디지털투데이 추현우 기자] 테슬라가 기존 자동차 업계에 던진 충격파는 크게 2가지다. 첫째, 전기차가 내연기관차를 대체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실제로 입증했다는 점이다. 둘째, 자동차를 탈 것이 아닌 '바퀴 달린 컴퓨터'라고 인식하게 만들었다.

그동안 시제 차량이나 제한된 형태의 특수목적차량에 한정했던 전기차를 테슬라는 대중적인 승용차의 대안으로 제시했고 그게 시장에 먹혔다. 소비자들은 테슬라 등장 이후 선택의 폭을 전기차로 넓혔다. 심지어 이제는 '머지않아 단종될 운명의 내연기관차를 지금 사야하나?'라는 고민을 하게 만들고 있다. 전기차가 자동차의 미래라는 이미지를 심어준 것이다.

전기차는 동력계의 변화를 의미한다. 가솔린(혹은 디젤)을 쓰는 내연기관과 복잡한 변속기, 연료 탱크, 흡배기 시스템을 들어내고 모터와 배터리를 채워넣었다. 자동차의 기본 구조를 바꾸진 않는다. 때문에 기존 자동차 제조사들은 초기 테슬라 충격을 극복하면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하이브리드에 미련을 버리지 못하는 토요타, 혼다 등 일본 제조사를 제외하면 미국의 GM과 포드, 독일의 폭스바겐, 벤츠, BMW, 그리고 한국의 현대, 기아까지 매년 신형 전기차를 출시하며 테슬라 따라잡기에 나서고 있다. 실제로 야금야금 시장점유율을 넓혀가며 테슬라의 아성을 허물고 있다.

그러나 자동차를 '바퀴 달린 컴퓨터'로 만드는 것은 모터와 배터리를 채워넣는 것과는 다른 문제다. 철과 기름, 전기를 다루는 것에 익숙한 자동차 제조사에게 반도체 칩셋과 소프트웨어는 낯설고 어려운 과제다.

HW 옹고집 독일 자동차 제조사, SW 문턱 넘을까

글로벌 경영 컨설팅 기업 액센츄어의 자동차 사업부 글로벌 책임자인 엑셀 슈미츠는 언론 인터뷰를 통해 "하드웨어 관점에서 기존 자동차 제조사들이 훌륭한 자동차를 만들 수 있다는 데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소프트웨어에 필요한 민감성과 품질을 120년 역사의 자동차 제조사가 마스터할 수 있을까? 별로 확신이 들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자동차, 특히 내연기관차의 원조 기업으로 불리는 독일 3개사(이른바 '독3사'로 불리는 벤츠, BMW, 폭스바겐) 역시 마찬가지다. 

전 세계 자동차 분야 1위 기업으로 불리는 폭스바겐은 헤르베르트 디스 회장 시절부터 현재 올리버 블루메 회장에 이르기까지 일관되게 전동화 전략을 외치고 있다. 2023년까지 20억 유로를 투자해 대규모 전기차 전용 공장을 건설하는 것은 물론 오는 2030년까지 내연기관을 포기하고 모두 전기차로 전환하겠다고 선언하는 등 전기차 시대를 대비한 전략 수립에 여념이 없다.

그러나 전기차 소프트웨어 부문에서는 이렇다할 진전이 없는 상황이다.
전기차 전문매체 클린테크니카에 따르면, 폭스바겐 그룹은 올해 카리아드(Cariad)라는 별도의 소프트웨어 전담 부서를 설립, 통합 전기차 소프트웨어 플랫폼 개발을 시작했지만, 구체적인 개발 로드맵과 일정조차 확정하지 못하는 등 난항을 겪고 있다는 내부 평가다. 
 

엑사급(ExaFLOP) 성능을 발휘하는 테슬라 슈퍼컴퓨터 도조(Dojo) [사진: 테슬라 유튜브]
엑사급(ExaFLOP) 성능을 발휘하는 테슬라 슈퍼컴퓨터 도조(Dojo) [사진: 테슬라 유튜브]

완전자율주행 구현을 위해 스스로 통합 칩셋과 슈퍼컴퓨터까지 만들어 내는 테슬라에 비하면 너무 늦었고 규모도 초라하기 그지 없다. 게다가 폭스바겐은 자체 브랜드 뿐만 아니라 아우디, 포르쉐 등 계열사 수십종의 다양한 차량에 각각 대응해야 하는 문제도 있다. 우수한 소프트웨어 인력이 유럽 시장을 선호하지 않는다는 점도 무시할 수 없는 요소다.

올리버 블루메 회장도 이런 부분을 인식하고 있다. 그는 "가능한 모든 프로젝트와 투자를 검토하고 실행 가능성을 확인하는 기회를 마련할 것"이라고 언급했지만, 폭스바겐이 이정도 소프트웨어 통합 프로젝트를 스스로 추진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것인지 확신하지 못하고 있다.

이는 싸고 좋은 전기차는 생산할 수 있지만, 편리하고 쓸모있는 전기차를 시장에 판매할 수는 없다는 얘기다.

전기차 미래 경쟁력은 배터리 아닌 소프트웨어

블룸버그는 독3사가 대담한 전동화 계획을 발표했지만, 아직 제대로 실현하지는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특히 전기차 배터리 관리와 통합 소프트웨어 개발에서 여전히 약점을 안고 있다는 분석이다. 실제로 올해 출시한 폭스바겐 전기차 ID 시리즈에서 발생하는 결함의 대부분은 소프트웨어 분야에 속한다. 블룸버그는 현재 테슬라 수준의 통합 소프트웨어 플랫폼을 확보하는 시기를 일러야 2026년으로 보고 있다.

독일 자동차 산업 분석가인 마티아스 슈미트는 자동차 전문매체 오토모티브 뉴스 유럽과 인터뷰에서 "독일인들이 실수를 하고 있다. 내재된 완벽주의가 빠르게 변화하는 전기차 환경에선 오히려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자율주행이 아직까지 완벽한 기술은 아니다. 실제로 유용한지도 아직 검증이 필요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기차 시장은 소프트웨어 중심으로 바뀌었다. 아무리 좋은 하드웨어를 만들어도 좋은 소프트웨어없이는 제대로 된 경쟁력을 발휘할 수 없는 것이 전기차 시장이다.

일론 머스크가 바꿔 놓은 새로운 게임의 법칙에 독일은 물론 전 세계 자동차 제조사가 맞서야 할 때가 왔다. 누가 더 빠르게 적응하느냐에 따라 승자와 패자가 나뉠 것이다. 120년 역사의 독일 자동차 산업이 시험대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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