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셔터스톡]
[사진:셔터스톡]

한국 경제와 사람들의 일상에서 테크 기업들이 갖는 위상이 그 어느 때보다 높아졌다. 작은 벤처 기업으로 출발한 카카오와 네이버는 국내 기업 시총 순위 각각 3, 4위에 오르며 한국 경제의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을 주도하는 거물급 기업 반열에 올랐다. 몇 년 전만 해도 쉽게 상상하지 못했던 장면이다. 코로나19 상황 이후 테크 기업들이 몸집은 더욱 커지는 분위기다.

하지만 단기 간에 초고속으로  압축 성장하다 보니 테크 기업들의 조직 문화는 기대에 못미친다는 지적이 적지 않다. 회사 비즈니스와  조직 문화 사이에서 균형이 무너져 사회적인 이슈로 불거지는 사례도 속출하고 있다. 그런 만큼, 테크 기업들이 지속 가능성을 성장을 위해서는 외형적인 규모에 걸맞게 조직력을 업그레이드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디지털투데이가 조직 문화 측면에서 빅테크 기업들이 직면한 딜레마와 해법을 점검했다. [편집자주]

[디지털투데이 최지연 기자] 유명 IT 업체들에서 직장 내 괴롭힘, 장시간 노동 등 각종 노무 이슈들이 잇따라 불거지는 것에 대해 관련 업계는 조직 문화와 사내 소통 방식을 바꾸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단발성 사건이 아니라 누적된 문제들이 쌓이고 쌓인데 따른 결과로 보는 이들이 적지 않은 것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최근 알려진 이슈들은 알고 있음에도 쉬쉬했던 일들이 터진 것이라 놀랍지도 않다”며 “그동안 누적된 문제들이 터져 나오기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지난해 민주노총 화학섬유식품노조 IT위원회에서 판교지역 IT·게임 노동자를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52시간 초과 근무자가 32%나 되었지만, 보상(수당·휴가)받지 못한 자가 27.7%나 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2018년 도입된 주 52시간 근무도 여전히 지켜지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올해 카카오, 네이버, 펄어비스 등은 주 52시간을 지키지 못해 시정 명령을 받은바  있다.

직장 내 괴롭힘과 갑질 등의 사건을 경험하거나 목격한 비율(47.3%)도 높은 것으로 조사됐다. 사건이 해결되지 못한 비율은 58.1%에 달했다. 최근 수평적 문화 이미지가 컸던 카카오와 네이버, 높은 연봉 인상으로 주목받았던 크래프톤에서도 직장 내 괴롭힘 사건이 발생했다. 앞서 네이버 직원이 직장 내 갑질과 업무 스트레스를 호소하며 극단적 선택을 한 사실이 알려지며 충격을 안겼다.

[사진:사람인]
[사진:사람인]

고속 성장 속 관리 시스템 불균형...수평적 문화 퇴색‧성과주의 만연

그동안 IT업계는 수평적 문화와 자유로운 소통, 높은 임금과 수준 높은 복지로 주목받았다. 성장 가능성과 워라벨를 중시하는 기업 문화는 20·30세대 청년들이 선망하는 기업으로 꼽히는 이유였다. 구인구직 플랫폼 사람인에 따르면 20·30세대가 가장 취업하고 싶은 기업으로 카카오와 네이버가 1위와 3위를 차지했다.

그러나 산업이 급성장하면서 초기 수평적 조직 문화는 수직 관료적으로 변한 지 오래고 자유로운 의사소통 또한 사라졌다는 지적이 적지 않다.

민주노총 노동조합이 발간한 ‘IT·게임 산업 노동실태와 노사관계 개선 방향 연구’ 보고서는 “지난 20년간 급격한 성장을 지속해 오면서도 벤처기업으로서의 정체성을 강조하고 유지하려 노력하고 있지만, 빠른 의사결정과 시장 상황에 대한 능동적 대응이 지나치게 강조되면서 기업의 규모에 맞는 관리역량을 키우는 데 실패했다”고 평가했다.

이어 “기업의 규모나 시장에서의 지위에 부합하는 관리 시스템이 부재한 결과로 발생하는 비효율성이나 불확실성 문제가 인사 관리 시스템의 역량, 조직 구성원의 공정성 인식, 고용안정성과 노동조건에도 부정적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밝혔다.

IT 기업들이 고속 성장을 하며 대기업으로 자리 잡았지만 기업 규모에 걸맞은 인사관리 시스템은 미흡하다는 지적이다. IT업계 종사하는 한 직장인은 “IT업계가 자유로운 분위기라고 부러워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어떤 사람이 조직장(팀장)으로 있느냐에 따라 조직(팀) 분위기가 천차만별이다”며 “직급없이 ‘님’을 사용하지만 모두 같은 님은 아니다”고 말했다.

또 다른 IT업계 종사자는 “능력과 성과를 강조하고 고성과자 직원에게만 보상을 주는 문화도 문제”며 “이번 사건들로 IT업계에도 변화의 바람이 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카카오는 지난 5월 고성과 직원 전용 복지 혜택을 마련하다가 내부 반발에 부딪혔다. 일부 직원 계정에서만 ‘휴양시설 예약’ 버튼이 보이게 해 서울 시내 호텔 숙박권을 주기로 한 사실이 알려져 논란이 일었다. 이에 카카오는 파일럿으로 운영해보려고 했으나 소통을 통해 재검토하는 방안을 논의하겠다고 밝혔다.

기성세대와 젊은 세대 간 충돌...근무 환경 개선 노력 필요

세대 간의 문화적 충돌도 조직 갈등의 원인으로 꼽힌다. 집단 문화에 익숙한 기성세대와는 달리 개인주의가 강한 젊은 세대들 간의 문화적 충돌이 발생하고 있다. IT업계도 여기에서 자유롭지 않다.

IT업계는 직원들의 연령층이 상대적으로 젊고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성장한 2030 MZ세대의 비중이 높다. 이들은 워라벨을 추구하고 공정성을 중시하며 근로환경과 고용조건, 사내 문화 등을 중요시한다.

산업화를 이루며 권위주의, 상명하복 등에 익숙한 기성세대가 당연하게 여기는 문화와 개인주의와 개성을 중요시하는 젊은 세대가 느끼는 문화가 다르기에 직장 내 갈등이 발생할 경우 느끼는 감수성이 차이가 다르다는 것이다.

민주노총 산하 IT산업 노조의 ‘IT산업 온라인 실태조사’에 따르면 이직 경험이 있는 응답자들은 이직 사유로 ‘조직문화 및 인간관계에 대한 불만’을 첫 번째로 꼽았다. IT업계 내 이직을 해본 경험이 있는 20대 직원은 “야근을 강요하고 주말에 업무 지시를 내리는 상사는 ‘당연히 해야지’라며 희생을 강요한다”며 “차라리 적게 받더라도 퇴근을 할 수 있는 회사를 다니는 게 낫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에 급성장한 IT 기업들이 일련의 사건들을 계기로 변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들린다. 세대 간 문화적 차이를 이해하고 조직문화를 유연하게 바꿔나가려고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 수직적 조직문화와 끼리끼리 문화 개선하고 수평적 구조와 업무 강도를 낮춰 근무 환경을 개선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사진:셔터스톡]
[사진:셔터스톡]

IT 업계 노조 확산..."기업들도 변화의 필요성 체감해야"

IT기업들도 내부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조직 문화와 관련한 변화의 목소리를 적지 않게 듣고 있는 만큼, 인사관리(HR) 개선에 속도를 내는 모습이다. 네이버의 경우 이사회 차원에서 새로운 조직문화와 리더십은 더 이상 늦출 수 없다며 경영진에 변화를 주문했고 회사 측도 이번 일을 계기로 전체 문화를 다시 들여다보고 점검하면서 리더십과 건강한 문화는 어떤 것일지 등을 고민하겠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하지만 직장 내 괴롭힘, 장시간 노동 등 각종 노무 이슈는 어느 한쪽이 주도적으로 풀 수 있는 성격의 일이 아니다. 노조와 회사 그리고 정부가 모두 나름의 역할을 해야 시스템 차원의 변화로 이어질 수 있다는 얘기다.

최근 IT업체들에서 노조 활동이  활발해지는 것도 이같은 측면에서 주목할 필요가 있다. IT업계 노조는 2018년 처음 생기기 시작해 작년부터 늘어나고 있다. 2018년에 네이버·카카오·넥슨·스마일게이트·안랩에 노조가 만들어졌고 지난해 엑스엘게임즈에 이어 올해 카뱅·한컴·웹젠 노조가 설립됐다.

노조는 기업이 자체적으로 조직 관리 시스템을 갖추고 구조적 문제를 개선해야 한다고 말한다. 정부도 좀더 적극 나서줄 것으로 주문하고 나섰다. 지난 10일 민주노총 화섬식품노조 수도권지부 IT위원회는 IT기업에서 ▲위계에 의한 과도한 업무와 괴롭힘 ▲52시간을 넘는 장시간 노동 ▲정규직임에도 불안정한 고용 ▲임산부의 연장근로 등이 벌어지고 있다며 "IT 노동자가 목소리를 내어도 그 누구도 응답하지 않는 시스템이 지금의 참담한 IT 노동 현실을 만들었다"며 "기업이 대책을 마련하지 않는다면 고용노동부가 책임지고 대책을 마련하라"고 촉구했다.

한 업계 관계자는 "기업이 자체적으로는 근로 환경과 내부 문화를 변화하려 노력을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노동 관련 불법적인 문제가 발생할 경우 사회적 제재를 가할 수 있는 정부 차원의 개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코로나19 상황 이후 세계 경제에서  테크 기업들이 갖는 중량감은 점점 커지고 있다. 한국도 마찬가지다. 테크 기업들이 산업 패러다임 변화를 주도하며 경제의 체질 개선을 이끌고 있다. 하지만 기업 간 경쟁이 국가를 넘어 글로벌로 확대된 상황에서 한국 시장에서 확보한 지위로는 지속 가능한 성장을 담보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국내 주요 테크 기업들이 사활을 걸고 해외로의 확장에 속도를 내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를 위해서는 미래 지향적인 HR 역량은 필수라는 목소리가 높다. 국내 테크 기업들도 이제  글로벌 시장까지 고려한 HR 프로세스를 수립할 타이밍이 됐다는 것이다.

익숙한 것과 결별하는 것은 쉽지 않은 문제다. 조직 문화는 특히 그럴 수 있다. 하지만 최근 일련의 사건 사고들로 인해 조직 문화와 HR 혁신은 명제가 됐다. 테크 기업들도 변화의 필요성을 보다 크게 인식하고 있고, 테크 기업들을 사회적으로 지켜보는 눈도 늘었다. 변화의 디테일은 어떤 것일까? 거물급 테크 기업들이 또 한번의 도전을 향한 출발선에 섰다.

저작권자 © 디지털투데이 (DigitalToday)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