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셔터스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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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투데이 황치규 기자] 애플이 혼합현실(MR) 기기 비전프로를 2월 2일(현지시간) 3500달러에 공식 출시한다. 구글, 마이크로소프트, 메타, 삼성전자, 소니, 스냅 등 내로라하는 테크 기업들이 출사표를 던졌지만 여전히 틈새 시장에 머물러 있는 가상현실(VR), 증강현실(AR) 기기 시장이 애플의 가세로 활성화될지 비상한 관심이 쏠린다.

시장 조사 업체 IDC에 따르면 MR 및 VR 헤드셋 판매량은 지난해 8.3% 감소했다. 애플은 비전 프로에 대해 공간 컴퓨팅(spatial computing) 시대의 시작이라며 기존 MR 기기들과는 다른 혁신성을 강조하고 있지 애플이라고 해도 MR 시장에선 쉽지 않을 것이란 시선도 여전하다.

특히 얼굴에 쓰는 VR 헤드셋이나 글래스 기기들은 기술 외에 사용자 행동 측면에서도 대중성을 확보하기엔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계속 나오고 있다. 뉴욕타임스 최근 보도를 봐도 얼굴에 쓰는 컴퓨터에 대해 금방 싫증을 낸다는 점이 MR 기기가 풀어야할 가장 큰 숙제들 중 하나로 꼽힌다. 

그동안 많은 테크 기업들이 얼굴에 쓰는 방식의 다양한 MR 기기 시장에 출사표를 던졌지만 어떤 업체도 제대로 된 한방을 터뜨리지 못했다. 야심차게 출사표를 던졌다가 민망하게 철수하는 장면들이 이어졌다.

3세대 구글 글래스
3세대 구글 글래스

구글은 2012년 MR 기기 구글 글래스를 공개했다. 구글 글래스는 초기 관심은 많이 끌었지만 비즈니스 측면에선 졸작이었다. 사람들 허락 없이 동영상을 촬영할 수 있는 사람을 가리키는 밈도 나오는 등 구글 글래스가 야기하는 부작용에 대한 지적도 쏟아졌다. 구글은 구글 글래스를 비즈니스 기기로 판매하는 쪽으로 방향을 틀었고 결국 2023년 제품을 단종했다고 뉴욕타임스는 전했다.

구글 사례를 반면교사로 삼은 테크 기업들은 얼굴에 쓰는 기기와 관련해 디자인과 프라이버시 문제를 해결하는데 초점을 맞췄다. 2016년과 2021년 스냅과 메타는 꽤 스타일리시한 글래스를 선보였다. 하지만 두 제품 역시 인기를 얻는데 실패했다. 뉴욕타임스의 브라이언X 첸 기자는 메타 2세대 글래스를 최근 테스트해봤는데, 근사해 보였지만 사진을 찍을 때 아무도 알아채지 못해 프라이버시 이슈는 여전하다고 전했다.

테크 기업들은 MR 기기 대중화 전략으로 스마트폰을 활용하는 전술도 구사했다. 스마트폰 화면과 컴퓨팅 파워를 활용하는 대신 가격을 낮춘 VR 기기를 제공하는 전략이었다. 삼성전자는 2015년 기어VR(Gear VR) 디자인을 위해 VR 전문 업체 오큘러스와 손을 잡았고 2016년 구글은 안드로이드폰을 활용해 쓸 수 있는 데이드림VR(Daydream VR)을 공개했다. 이들 제품은 가격은 저렴했지만 VR 소프트웨어가 돌아갈 때 스마트폰이 뜨거워지거나 배터리가 빨리 닳아 없어졌다고 뉴욕타임스는 전했다. 구글은 2019년 데이드림VR을 포기했고 삼성전자는 2020년 VR 콘텐츠 서비스를 중단한다고 발표했다.

데스크톱에 MR 기기를 연결하는 방식으로 문제를 풀어보려는 시도도 있었다. 2014년 메타에 인수된 오큘러스는 2016년 데스크톱에 꽂아 쓸 수 있는 고성능 VR 시스템 오큘러스 리프트를 공개했다. 헤드셋, 게임 컨트롤러, 컴퓨터를 포함한 오큘러스 리프트는 가격은 1500달러였고 차세대 게임 기기로 판매됐다.

오큘러스 리프트가 나온 이후 유사한 제품들도 등장했다. 소니는 플레이스테이션 콘솔에 연결해 쓸 수 있는 VR 헤드셋인 플레이스테이션 VR을 400달러에 선보였고 지난해 2세대 제품을 내놨다. 하지만 소니는 아직까지 VR로 크게 재미를 보지 못하는 상황이다. 소니의 한 고위 경영자는 최근 VR은 게임 산업을 많이 바꾸지 않았고 많은 사람들은 여전히 텔레비전에서 게임을 하는 것을 선호하고 있어 VR은 여전히 도전적인 영역이라고 말했다.

뉴욕타임스 첸 기자는 수년 동안 이들 제품을 모두 테스트해 본 경험을 근거로 "모두 같은 결점들이 있었다. 헤드셋은 무겁게 느껴졌고 하드웨어와 선은 거실을 어수선하게 만들며, 매력적인 게임들도 많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컴퓨터, 디스플레이, 센서 기술을 한 제품에서 구현해 스마트폰이나 PC에 의존할 필요가 없는 독립적인 헤드셋은 현재까지 가장 편리한 VR기기로 통하지만 여전히 갈길이 멀어 보인다. 메타는 2019년부터 250달러에서 1000달러대 퀘스트 헤드셋을 판매하고 있지만 여전히 주류 시장에는 진압하지 못했다고 뉴욕타임스는 전했다.

메타 퀘스트3(좌), 애플 비전 프로 [사진: 메타, 애플]
메타 퀘스트3(좌), 애플 비전 프로 [사진: 메타, 애플]

지난해 메타는 MR에 초점을 맞춘 개인 사용자용 기기를 표방하는 500달러 짜리 퀘스트3를 공개했다. 퀘스트3의 경우 그래픽은 크게 개선됐지만 15분 쯤후부터 목에서 무겁다는 느낌이 들었고 게임도 인상적이지 않았으며, 배터리 수명도 2시간 밖에 되지 않았다고 뉴욕타임스 첸 기자는 전했다.

애플의 경우 비전프로에 대해 가상 스크린과 키보드를 갖춰 노트북을 대체할 수 있는 생산성 툴, 3D 영화 플레이어, 그리고 게임 기기라는 점을 강조하는 모습이다. 비전 프로 무게는 21온스(약 0.6kg)로 메타 제품과 유사하다. 첸 기자는 비전프로를 쓰고 나서 1시간 후에 눈과 목에 피로를 느꼈다고 전했다. 배터리도 2시간 쓸 수 있지만 대부분의 장편 영화는 물론이고 많은 작업을 수행하기에는 충분치 않으며 아직 비전 프로 전용 게임을 발표한 주요 게임 스튜디오들도 없다고 덧붙였다.

애플은 MP3플레이어와 스마트폰 시장에 늦게 뛰어들었지만 경쟁력 있는 제품을 앞세워 시장을 접수했다. MR 기기 시장에서도 유사한 장면을 연출할 것이란 기대도 있지만 MR 기기가 직면한 근본적이고 구조적인 문제를 푸는 것은 '천하의' 애플이라고 해도 만만치 않을 것이란 전망이 아직은 많아 보인다. 애플이 MR 기기를 둘러싼 고정 관념을 파괴할 수 있을까? 비전 프로가 받아들 초반 성적표가 어떨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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