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웅 서플러스글로벌 대표이사 [사진: 서플러스글로벌]
김정웅 서플러스글로벌 대표이사 [사진: 서플러스글로벌]

[디지털투데이 고성현 기자] "전체 시스템반도체 시장은 확대되는 반면, 반도체 성숙 공정의 공급망 이슈는 앞으로 점점 확대될 것이다. 현재도 전세계 1000여개 정도의 작은 수리 전문 기업들이 처리하고 있지만, 각자도생하며 근근이 버티는 실정이다. 누군가는 이를 전세계적으로 통합해 고객이 8인치 웨이퍼 사업을 할 수 있게 해야 한다."

경기 용인시 서플러스글로벌 본사에서 만난 김정웅 대표는 반도체 중고 장비 유통 기업에서 성숙(레거시) 공정 통합 플랫폼으로 거듭나겠다고 강조했다.

서플러스글로벌은 김정웅 대표가 2000년 창업한 반도체 중고장비 유통 전문 기업이다. 초기 표면실장장비(SMT)와 같은 전자기계 기업간거래(B2B) 유통 사업을 시작으로 통신 장비, 반도체 공정 장비로 영역을 확대했다. 설립 7년 만인 2007년 매출 300억을 달성하며 성장가도를 탔지만 다음해 찾아온 금융 위기로 인해 역풍을 맞았다. 어려운 상황에도 지속적인 투자를 이어나갔고, 그 결과 지난해 매출 2349억원을 기록하는 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

현재 서플러스글로벌은 전세계 중고 장비 시장에서 1위(장비 기업 제외)를 차지하고 있다. 누적 장비 판매 대수 5만대를 돌파하고 5000여개가 넘는 거래선을 확보한 글로벌 네트워크 능력이 빛을 발했다. 반도체 핵심 기업인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국내에 있어, 장비를 매입하는 데 어려움이 덜했던 점도 장점이 됐다.

서플러스글로벌의 사업 구조는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 반도체 칩 제조사들로부터 장비를 매입해 다른 칩 제조사로 파는 형태다. 단순 유통과 리퍼비시(Refurbish)로 불리는 수리 후 판매 사업을 병행하고 있다. 영역은 반도체 공정 전체다. 노광·식각·증착 등 핵심 전공정부터 웨이퍼 테스트(EDS)·패키징에 이르는 후공정 장비를 모두 판매한다. 최근에는 자체 장비기술팀을 구축하고 상대적으로 수익성이 높은 리퍼비시 사업을 확대하는 중이다.

김 대표는 "우리나라는 지금 첨단 공정이 핵심이라 전체 레거시 생산 규모가 총 월 80만장 정도다. 하지만 전세계적으로 보면 레거시 공정이 월 700만장에 이르는 거대 시장"이라고 운을 뗐다.

이어 "또 아직 8인치(200mm) 웨이퍼에 대한 수요가 높은 상황이다. 전기차 시대 진입으로 인한 전력반도체(PMIC)나 차량용 반도체가 대표적"이라며 "수요에 비해 공급망은 아직 많이 부족한 상황으로, 이에 대한 대안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고 전했다.

레거시 반도체 공정은 회로 선폭 10나노미터(㎚) 이상인 구 공정을 의미한다. 마이크로컨트롤러유닛(MCU), 디스플레이구동칩(MCU), PMIC 등이 이에 해당한다. 28나노, 40나노대 선폭의 칩이라 첨단 공정 대비 구세대로 불리고 있으며 주로 8인치 웨이퍼를 쓴다. D램·낸드 등 메모리나 CPU·GPU·AP 등 10나노 이하 12인치(300mm) 웨이퍼와 대조된다.

구식 공정이란 인식이 많은 반면 여전히 수요는 높은 분야다. 전력을 활용하는 분야부터 가전, 각종 전자기기, 자동차 등 쓰지 않는 영역이 없어서다. 지난 2020년 말 반도체 수급난이 시작된 이유도 이와 같은 8인치, 레거시 공정에 수요 과잉 사태가 벌어진 탓이다.

최근에는 전기차, 에너지저장장치(ESS) 등 친환경적 요소와 결합하며 수요 기대치를 끌어올리고 있다. 차세대 전력반도체로 불리는 실리콘카바이드(SiC)나 질화갈륨(GaN) 반도체가 6인치(150mm), 8인치 등 레거시 공정에서 주로 개발되고 있다. 반면 레거시 공정 장비를 생산하는 기업은 점점 줄어들고 있는 추세다. 극자외선(EUV) 노광 장비 등 첨단 장비 영역이 글로벌 기업 수요 확대로 높은 판매단가로 고수익을 내는 반면, 레거시 장비는 수익성이 다소 떨어진다고 보고 있어서다.

기자들과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는 김정웅 서플러스글로벌 대표이사 [사진: 디지털투데이]
기자들과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는 김정웅 서플러스글로벌 대표이사 [사진: 디지털투데이]

서플러스글로벌은 성숙 공정 장비 수요가 꾸준히 있지만, 수익성이 낮아 장비 공급이 줄어든다는 점에서 기회를 찾았다.

김 대표는 "중고로 판매가 되려면 표준화가 선행돼야 한다. 아시아에서는 2000년대 초반부터 중고 장비 시장이 형성되기 시작했다"며 "이때 유통 시스템을 구축해 (중고 장비) 공급망을 만들려고 했다. 과거 거래 하나 '잭팟'이 터지면 1년간 실적이 좋던 업황에서 벗어나, 시스템과 네트워크 기반으로 회사를 성장시키기 위해서였다"고 회상했다.

그러면서 "신 장비 시장은 지난해 약 130조원에 달했지만, 중고 장비 시장은 7조원밖에 되지 않았다. 글로벌 5대 장비기업이 전체 장비 60%를 판매하는 구조라 더 이상 유통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라며 "중고 장비가 고철이 되어가는 게 안타까웠고, 이곳에서 기회를 보고 사업을 확대한 것"이라고 밝혔다.

중고 장비 기업으로 성장하면서 적지 않은 수모도 겪었다. 구식 제품을 유통한다는 인식 때문이었다. 최근에는 분위기가 바뀌었다. 레거시 공정 내 장비 수급이 어려워지고, 친환경적 요소가 기업 평가에 긍정적 영향을 미친 덕분이었다. 이는 ASML, KLA, 온토이노베이션 등 글로벌 기업이 서플러스글로벌 반도체 장비 클러스터 사옥 내 트레이닝 센터를 차리는 성과로도 이어졌다.

김 대표는 "서플러스글로벌이 하는 일은 ESG 경영 취지에 부합한 일이다. 지배구조나 사회공헌 면에서 특히 그렇다"며 "국내 반도체 기업들이 전세계 장비의 30%를 구매하는 큰 손이지만  아직 재활용되지 못한 장비가 많다. 이를 늘리는 것이 우리 회사의 역할"이라고 말했다.

잇단 글로벌 기업의 한국 트레이닝 센터 오픈에 대해서는 "ASML, KLA, 온토 등 거대 회사들이 최대 고객사가 있는 한국을 노리고 트레이닝 센터를 차리려 했지만 부지 선정과 투자가 쉽지 않았다. 이를 서플러스글로벌이 해결해주면서 더욱 영역이 확대된 것"이라고 덧붙였다.

김 대표는 이같은 글로벌 네트워크를 바탕으로 리퍼비시 사업과 반도체 부품 유통 사업을 확대할 계획이다. 현재 매출 비중 10%인 리퍼비시 사업을 점진적으로 19%까지 높이는 한편, 자회사 이큐글로벌(EQ Global)을 통해 판매가 중단된 부품을 유통하는 사업으로 영역을 넓히겠다는 의미다.

특히 반도체 부품은 칩 제조사가 재고를 축적해뒀다가 사용하지 않아 불용 재고자산으로 쌓이는 부품이 산더미처럼 많다. 이같은 불용품은 대부분 스크랩 처리가 되면서 제조사들의 부담이 되기 십상이다. 김 대표는 이큐글로벌을 통해 이같은 부품을 유통할 수 있는 온라인 플랫폼을 만들어 대규모·중견·중소에 이르는 고객사들이 거래할 수 있도록 할 계획이다.

반도체 8대 공정 중고 장비를 갖춘 서플러스글로벌과 ASML, KLA, 온토이노베이션 등의 트레이닝센터를 유치한 강점을 살려 인재 양성에도 기여한다. 국내에는 반도체 장비 운영을 위한 별도 장소가 부족했는데, 이를 현장에서 실습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 엔지니어 양성을 돕겠다는 취지다.

김 대표는 "산업통상자원부, 반도체산업협회가 진행하는 반도체아카데미가 입주할 수 있도록 공사를 진행하고 있다. 여기에 입주한 ASML 등 글로벌 기업과의 협력도 병행해 교육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을 것"이라며 "교육을 위한 공유팹 외 매입한 장비를 보관하는 장소도 부족해질 상황이라, 가까운 시일 내 1만평에 이르는 추가 공간 투자도 단행하겠다"고 강조했다.

이미 반도체 부품·장비 유통, 리퍼비시, CSR에 이르는 영역을 구축한 김 대표의 시선은 더 먼 곳을 향하고 있다. 반도체 레거시 장비를 일괄적으로 공급하는 '레거시 공정 솔루션 플랫폼'으로 자리잡겠다는 의지다. 아직은 갈 길이 먼 만큼, 차근차근히 준비해 8인치 기반 턴키(Turn-Key) 솔루션을 구축해나갈 계획이다.

칩 제조사로부터 많은 중고 장비를 매입하는 한편, 작은 리퍼비셔나 새로운 장비를 개발하는 기업과 각종 협력을 추진하는 배경이 바로 이 때문이다. 김 대표는 레거시 플랫폼 구축으로 공급 차질이 예상되는 8인치 시장 장비 수급을 원활케 하고, 크고 작은 회사와 상생하는 두 마리 토끼를 노리고 있다.

김 대표는 "첨단 공정은 물론, 레거시 공정에서도 공급망 이슈는 확대될 것이다. 반면 레거시 장비를 수리하는 곳은 전세계 1000여개의 작은 리퍼비셔들이 각자도생하며 처리하고 있다. 통합이 되지 않은 것"이라며 "누군가는 이를 합쳐서 8인치 웨이퍼 고객사가 사업을 영위하도록 새로운 장비를 개발해야 한다. 이에 적합한 회사가 바로 서플러스글로벌"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이어 "시장에는 몇 천억원을 들여 증설을 계획하고 있는 고객사가 있어 반도체 공정 전체 라인업을 갖추도록 하는 사업을 구성하고 있다"며 "이제 막 추진하는 사업이지만, 장기적으로는 이 플랫폼을 구축해 장비 기업 및 고객사를 통합하는 회사가 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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