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정영 율촌 전문위원
최정영 율촌 전문위원

블록체인, 암호화폐, 가상화폐, 가상자산... 어떤 단어를 쓸지 고르기가 늘 어렵다. 김춘수 시인이 '꽃'이라는 시에서 노래한 것처럼, 어떤 이름으로 불려지는 지에 따라 그 존재의 본질 마저 달라질 수 있다.

블록체인이라 하면 대단한 혁신기술 같고, 코인이나 암호화폐라고 하면 누군가에게는 황금이 묻힌 신대륙으로 느껴지지만 다른 누군가에게는 뭔가 가치 없는 폰지사기를 위한 테마 같은 느낌이다.

최근 특금법에서 '가상자산'이라는 용어를 공식적으로 사용하기로 하였지만, 가상자산 또한 이러한 부정적인 프레임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이 프레임은 어떻게 생긴 것일까? 가상자산 문제가 사회적인 이슈로 떠오른 2016년 이후 현재까지  이어져 온 정부의 일관된 입장과 관련이 있을 것이다.

가상자산은 규제를 넘어선 억제의 대상 그리고 블록체인은 육성의 대상이다. 최근 이슈가 되고 있는 특금법상 가상자산사업자 신고제도 또한 다수의 언론은 가상자산 시장의 성숙을 위한 제도화라기 보다는 은행의 실명확인 의무를 이유로 은행에 가상자산사업자에 대한 관리 책임을 넘기는 장치에 가깝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가상자산의 ICO를 금지하고 가상자산과 관련한 거의 모든 행위를 자금세탁방지대상으로 폭넓게 규율하며, 명확한 기준이 없이 금융회사의 가상자산에 대한 보유∙ 매입∙ 담보취득∙ 지분투자를 금지하고 있다.

반면에 블록체인 기술을 활용한 혁신금융서비스는 제도 시행 이후 지속적으로 승인되고 있다. 금융분야 외에도 과기부, 중기부 등에서 다양한 블록체인 진흥책이 실행되고 있다. 가상자산과 블록체인은 별개라는 것이다.

최근 부정적인 여론에 떠밀려 가상자산 이슈의 주무부처가 금융위원회로 지정되고, 국회에 다양한 가상자산업법안이 발의되고 있다. 투자자산으로서의 가상자산을 규율하기 위해 T/F가 구성돼 연구를 시작했지만, 아직은 기존의 이분법적인 정부의 정책적 입장이 근본적으로 달라졌는지에 대해 의문을 가지는 시각이 대부분이다. 

정책당국의 고민도 십분 이해할 수 있다. 미국, EU 등 선진국에서도 규제의 틀이 잡히지 않은 상황에서 가치교환수단(화폐)의 특징을 가지는 기술 기반의 글로벌 네트워크를 규율하기 위한 방향성을 잡는 것 자체가 어려웠을 것이다. 또 유사수신, 폰지사기, 환치기 등 범죄와 피해는 우후죽순처럼 발생하기 시작했는데, 탈중앙화 네트워크의 특성상 기존의 법률로 규율하기도 쉽지 않다.

사실상 규제의 회색지대에서 대규모 자금조달행위인 ICO가 진행되는 경우 투자자 피해의 규모도 예상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지난 몇 년간의 정부의 대응 프레임을 무조건적으로 비난하는 것도 타당하지 않다. 

그러나 이제는 새로운 프레임과 시각으로 가상자산과 블록체인을 바라볼 필요가 있다. 

블록체인이란 이해관계가 없는 다수 소유자들의 참여를 통한 탈중앙화와 이를 기반으로 한 작업증명으로 높은 보안성과 무결성을 달성하기 위한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탈중앙화를 위해선 결국 블록체인의 소유가 분리되어야 하고 이를 위해선 결국 가상자산으로서 거래가 이루어져야만 한다(가상자산의 가격형성은 별론으로 하자). 결국 블록체인과 가상자산은 지킬박사와 하이드 같이 마치 서로 다른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분리할 수 없는 하나의 존재인 것이다. 

특히 가상자산은 기존 가치교환 수단으로 머물러 있지 않다. 지분 증명을 위한 증권형 토큰(Security Token), 소유권 증명의 NFT, 게다가 가상자산간 대차와 레버리지를 일으키는 디파이(Defi)까지 가상자산을 활용한 복잡하고 예측하기 어려운 기묘한 서비스들이 계속해서 나타나고 있다.

게다가 최근 주목받고 있는 메타버스에서의 수많은 활동들(유명 온라인게임 WOW를 상상해보자)도 가상자산과 블록체인을 기반으로 구현될 것으로 전망된다. 

해외에서는 이러한 변화에 대비하여 가상자산을 유형화하거나 기준을 수립하여 개별적으로 판단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영국의 감독기관은 가상자산을 교환 토큰, 유틸리티 토큰, 증권 토큰 등 유형별로 분류하고 각기 다른 규제 수준을 적용하고 있다. 또 미국 SEC는 가상자산의 증권성을 판단하기 위한 기준(디지털자산에 대한 투자계약 분석의 틀, Framework for "Investment Contract" Analysis of Digital Assets, 2019)을 수립하는 등 원칙을 세워 규제의 예측가능성을 높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지금은 자금세탁과 과세 문제에 머물러 있을 때가 아니다. 가상자산과 블록체인은 본질적으로 한 몸이라는 점을 이해하고 가상자산의 유형과 특징에 따라 각 산업별, 구체적으로는 각 업별로 알맞은 정책적 접근이 시급한 시점이다. 앞으로 지킬박사와 하이드씨의 기묘한 사건이 어떻게 진행될지 주목해보도록 하자.

 

최정영 전문위원은 연세대학교 컴퓨터과학과 및 동 대학 정보대학원을 졸업했으며, 2007년 금융감독원 IT 전문직렬로 입사해 IT감독국, 자본시장조사국, 여신금융검사국 등에서 다양한 업무를 수행한 경력을 가진 핀테크 전문가다. 2021년 법무법인 (유)율촌의 기업법무 및 금융 부문(Corporate & Finance Practice)에 합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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