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투데이 고정훈 기자] 추석을 맞아 직장 내 괴롭힘에 대한 관심이 다시 높아지고 있다. 그동안 출근 전이나 퇴근 후, 또는 휴가 기간에 상사의 연락을 받았던 만큼, 이번 추석 연휴에도 같은 일이 발생하지나 않을까 하는 불안감 때문이다. 더욱이 이번 추석은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이 시행(7월16일)된 이후 처음으로 맞는 명절인 만큼, 달라진 분위기를 기대하는 직장인들이 많다. 하지만 법이 시행된 지 두 달이 흐른 지금까지도 갈 길이 멀다는 평가가 나온다.

중견기업 인사팀에서 근무하는 A씨는 최근 일주일 동안 바쁜 나날을 보냈다. 추석 연휴를 앞두고 밀린 업무를 처리하기 위해서였다. 직장에서는 52시간 근무를 준수하고 있지만, 연휴 기간 전에는 이를 무조건 지킬 수 있는 상황은 아니었다. 연달아 야근이 이어졌다.  

A씨는 “추석이 대목이라 한주 동안 2주 분량의 일을 처리해야만 했다. 야근을 안할 수 없던 상황"이라며 "문제는 휴일에 직장에서 오는 연락이다. 혹시 내가 처리한 일이 문제가 생겼을까 싶어 카톡 알림음이 울릴 때마다 깜짝 놀란다"고 말했다.

지난 7월부터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이 시행되고 있다. 일선 현장에서는 이 법안을 찬성하는 목소리와 모호성을 지적하다는 의견이 함께 나오고 있다. (사진=고용노동부)
지난 7월부터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이 시행되고 있다. 일선 현장에서는 이 법안을 찬성하는 목소리와 모호성을 지적하다는 의견이 함께 나오고 있다. (사진=고용노동부)

이런 현실은 비정규직과 알바생에게 더 혹독하다. 업종에 따라서 연휴 기간을 일부만 쉬거나, 하루도 쉬지 못하는 사람들이 다수 있기 때문이다. 최근 한국노동총연맹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추석 연휴기간 동안 휴일을 온전히 다 쉰 사람은 응답자 중 절반도 미치지 못했다. 이중 하루도 쉬지 못하는 노동자 비율은 15.1%에 달했다. 이런 현상은 주로 운수업과 서비스업 직종 등에 두루 나타났다.

편의점 파트타이머로 일하는 B 씨는 "연휴 기간 동안 내 의사와는 상관없이 근무가 배정되는 일이 흔하다. 특히 연휴 기간에는 다른 알바생들도 최대한 근무를 하려고 하지 않아서 운이 없는 경우에는 추석 당일에 근무가 잡히기도 한다. 그럴 때는 고향에 내려가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고 털어놨다.

그렇다면 연휴 기간 동안 쉬지 못하는 경우도 직장 내 괴롭힘에 해당할까. 직장갑질119 오진호 대표위원은 "휴일에 근무한다고 해서 무조건 괴롭힘 금지법을 위반하는 것은 아니다"고 말했다. 이어 "괴롭힘 금지법도 어디까지나 근로기준법을 근거로 삼고 있기 때문에 사업주가 근로기준법을 위반하고 있는지 확인해보는 것이 중요하다"며 "다만 일방적으로 한 사람만 근무하기 어려운 시간대에 배치하거나, 업무 시간 외에 사적인 연락을 일삼는 경우는 괴롭힘 금지법에 해당될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괴롭힘 금지법 적용이 모호하다는 지적도 이어진다. 관련 법을 6개월 만에 입법하다보니, 아직까지 어디까지가 적정 근무 범위인지 혹은 괴롭힘에 해당하는지 판단하기 어렵다는 말이다. 때문에 일각에서는 법을 개정해 좀 더 명확하게 만들자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이와 관련해 고용노동부 관계자는 “일선 현장에서 괴롭힘 금지법과 관련된 목소리를 많이 듣고 있다. 다만 아직 시행한지 50일 정도밖에 되지 않는 법안을 개정한다는 것은 오히려 혼란을 불러올 수 있어 검토하고 있는 사항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어 “우선 현장에서 괴롭힘 범위가 모호하다는 지적에 따라 판단 기준으로 삼을 수 있는 사례집 출간을 10월 말 목표로 준비 중이다. 단순한 맞다, 틀리다가 아닌 근로기준법상 왜 금지법 위반에 해당되는지 등을 해설로 담을 계획이다. 이후에는 우수사례집을 출간, 현장에서 좀 더 쉽게 사례 위반을 확인할 수 있도록 할 예정이다. 이외에도 언론 등을 통해 괴롭힘 금지법에 대해 홍보를 이어나가고 있다”고 설명했다. 

법 개정까지 시간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한국노동연구원 김근주 박사는 "법이 시행 초기에는 긍정적, 부정적 반응이 나뉜다. 아직은 부정적인 면만 보고 법 자체를 판단하기에는 이르다"며 "괴롭힘 금지법이 현장에 안착하기 위한 시간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 박사는 "독일의 경우 괴롭힘 금지법 판례를 쌓는데 20년이 걸렸다. 일본도 5년 정도를 가이드 라인을 세우는데 보냈다. 일단 근거를 마련하고 인식개선과 같은 실천이 동반돼야만 한다"며 "그러기 위해서는 괴롭힘 금지법을 너무 부정적으로 보지 않는 것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고용노동부는 올해 10월 직장 내 괴롭힘 사례를 모은 책을 발간할 예정이다. (자료=고용노동부)
고용노동부는 올해 10월 직장 내 괴롭힘 사례를 모은 책을 발간할 예정이다. (자료=고용노동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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