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투데이 고정훈 기자] #1. 식품 공장에서 일하는 A씨는 '윗선' 때문에 스트레스가 많다. 주말이나 명절, 신규오픈식 등 이들이 공장을 방문할 때면 주변 음식점과 슈퍼마켓에서 판매하는 제품을 자사 제품으로 바꿔놔야 하기 때문이다. A씨는 "뻘짓도 이런 뻘짓이 없다"고 하소연한다. 

#2. B씨는 게임회사 직원으로, 경력 8년차인 배테랑이다. 그동안 집에 귀가하는 시간은 늘 저녁 10시로 똑같았다. 개발 마감 등이 겹치는 날에는 아예 집에도 가지 못했다. 최근 이 문제가 사회에 알려지면서 논란이 됐지만, 그 뿐이었다. 오히려 이 회사 직원들은 남들 눈에 띄지 않게 야근을 하고 있다. B씨는 "회사에서는 일찍 퇴근하자고 하지만, 맡고 있는 일은 절대 제 시간에 끝낼 수 없는 양이다. 거기다 윗사람들도 집에 잘 안가는 상황에서 혼자 가기 어렵다"고 했다. 

#3. C씨는 직장 상사로부터 듣는 말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는다. 문제는 직장 상사가 하는 말이 폭언인지 아닌지 구분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주로 다른 직원들 앞에서 "똑바로 해라"라는 말투로 핀잔을 주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C씨는 남들로부터 자기 실수만 지적받을 거 같아 아직 아무런 말도 못하고 있다.

최근 직장인 커뮤니티로 불리는 '블라인드'에 올라온 내용이다.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괴롭힘 금지법)'이 시행(7월16일)된 지 100일이 훌쩍 넘었지만 "뚜렷한 효과를 내지 못한다"는 게 다수 직장인들의 목소리다. "보다 적극적인 처벌이 필요하다"는 주장까지 나온다.

아직까지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을 바라보는 시선은 부정적인 부분이 크다. 실제로 지난달 인크루트가 직장인 722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69.3%가 ‘최근 직장갑질을 경험했다’고 답했다. 남성(39.2%)보다는 여성(60.8%)이, 대기업(16.0%)이나 중견기업(16.5%)보다는 중소기업(61.6)에서 갑질이 일어나는 비율이 높았다.

괴롭힘 유형으로는 업무과다(18.3%)가 1위에 꼽혔다. 이어 욕설·폭언(16.7%), 근무시간 외 업무 지시(15.9%), 행사·회식 참여 강요(12.2%), 사적용무·집안일 지시(8.6%), 따돌림(6.9%), 업무배제(6.2%), 성희롱·신체접촉(5.4%) 순으로 집계됐다.

이런 갑질에도 신고한 직장인은 적었다. 이번 조사에서 "신고했다"고 답한 직장인은 15.3%에 그쳤다. 그 중 10.8%는 신고했지만, 이마저도 회사에서 받아주지 않는(반려) 경우가 많았다. 제대로 신고한 직장인은 4.5% 수준에 불과했다. 나머지 84.7%는 괴롭힘을 당했지만 신고조차 하지 않았다.

그 이유로 한 유통기업 인사팀 관계자는 "처벌 규정이 없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괴롭힘 금지법은 정부가 직접 나서 가해자를 형사처벌 하는 것이 아닌 사업장에서 자체적으로 조치하도록 돼 있다. 즉 처벌보다는 계도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현재까지 전국 고용노동청에 접수된 괴롭힘 관련 진정은 1000건이나 되지만, 처벌받은 사례는 알려지지 않은 이유다.

고용노동부 관계자는 "괴롭힘 금지법은 세간에 알려진 것과는 달리 실제 어떤 처벌이 있는 법은 아니다. 실제로 처벌이 가능한 경우는 괴롭힘을 당한 피해자가 신고로 인해 인사조치 등 불이익을 받았을 때만 가능하다"며 "처벌 규정이 없기 때문에 사업장에서 자율적으로 조치하도록 규정하고 있다"고 말했다.

괴롭힘 금지법이 보다 효력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적극적인 처벌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민주노총 관계자는 "지금까지 갑질 관련 신고로 불이익을 받은 사업장은 하나도 없다. 사업장 입장에서는 고용부가 정해준 방안을 지키는 척만 하면 아무런 불이익이 없다"며 "때문에 언제든 직장 내 갑질은 다시 일어날 수 있다"고 꼬집었다.

이어 "괴롭힘 금지법이 시행된 이후 현장에서 말 조심하자는 분위기가 조성되긴 했다"면서도 "하지만 뿌리 뽑기 위해서는 보다 강력한 처벌 규정이 필요하다"고 했다.

지난 7월부터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이 시행되고 있다. 일선 현장에서는 이 법안을 찬성하는 목소리와 모호성을 지적하다는 의견이 함께 나오고 있다. (사진=고용노동부)
지난 7월부터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이 시행되고 있다. 일선 현장에서는 이 법안을 찬성하는 목소리와 모호성을 지적하다는 의견이 함께 나오고 있다. (사진=고용노동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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