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투데이 백연식 기자] 미국 연방통신위원회(FCC)가 망중립성 원칙 폐지를 추진하고 있다. 그러나 이것이 우리나라 정보통신기술(ICT) 기업 및 시장에 미치는 영향은 거의 없을 것으로 보인다. 망중립성이란 네트워크사업자(ISP)가 망을 이용하는 콘텐츠나 서비스를 차별하면 안 된다는 원칙을 말한다.

미국 연방통신위원회(FCC)는 오는 14일(현지시각) 전체회의를 열고 기존의 망중립성 정책을 폐기하는 방안에 대한 표결을 진행할 예정이다. 5명의 FCC 위원 중 아짓 파이 위원장을 포함한 공화당 추천 인사가 3명이기 때문에 통과가 유력시 되는 상황이다.

이에 대해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지난 12일 정부과천청사에서 출입기자 대상 기자 스터디를 개최하고, 미국의 망중립성 폐기 움직임에 대해 “우리나라의 경우 가이드 라인과 방송통신위원회의 사후 규제를 통해 망중립성이 지켜지고 있는데, 미국의 상황에 대해 예의주시 하겠다”는 입장만 밝혔다.

미국에서 망중립성이 폐지될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우리나라 시장에는 그에 따른 영향이 크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이미지=픽사베이)

미국은 망 중립성 왜 폐기하나

아짓 파이 FCC 위원장의 경우 과도한 망중립성 규제가 망사업자의 네트워크 투자를 위축시킨다고 판단해 이를 없애 투자를 활성화하려는 생각을 갖고 있다. 오바마 정부의 경우 망중립성이 더 강해지며 구글, 페이스북 등 글로벌 인터넷 사업자들이 급속도로 성장했다.

미국 FCC는 망중립성을 강화할 경우 규제 비용이 과다해지고 규제 불확실성을 높여 ISP의 네트워크 투자를 위축시킨다고 분석한 것으로 풀이된다. 현재 미국 FCC는 개정안을 통해 유·무선 인터넷 액세스 서비스와 모바일 브로드밴드 서비스를 정보서비스로 환원하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

오바마 정부는 미국 통신법 706조의 타이틀Ⅰ(정보서비스 사업자)로 분류된 유무선 ISP(인터넷서비스 제공 사업자)를 타이틀 Ⅱ(기간통신사업자, Common Carrier)로 정의했다. 네트워크를 가진 통신사(ISP)를 규제가 강한 기간통신사업자로 규정해 네트워크 제공 등 의무를 강조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트럼프 정부의 경우 미 FCC는 이를 타이틀 I 으로 돌아가는 개정안을 내놓은 상태다. 유무선 인터넷 접속 서비스와 모바일 브로드밴드 서비스를 정보서비스로 정의한 것이다.

FCC의 개정안이 통과될 경우 규제 권할권이 FCC에서 FTC(연방거래위원회)로 넘어가게 된다. 관할 법령 역시 통신법(1934)에서 셔먼법/FTC법&각종 소비자보호법으로 바뀐다. 개인정보보호 규제 역시 FTC로 이관된다. 즉, FCC의 표결안이 통과될 경우 망중립성 규제가 예전보다 훨씬 완화돼 사실상 망 중립성이 폐기되는 것이다. 다만 FCC는 투명성 규제만 강화할 예정이다.

간담회 강사로 나선 조대근 잉카리서치앤컨설팅 대표는 “오바마 정부 때 FCC는 망중립성 강화를 통해 콘텐츠(CP)가 활성화되고, 이들이 콘텐츠를 잘 만들면 이용자 수요가 늘어 ISP가 이를 감당하기 위해 망에 투자할 수 밖에 없을 것이라고 봤다”며 “지금은 규제를 풀 경우 ISP가 직접 투자하는 효과가 더 크다고 본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 12일 정부과천청사에서 조대근 인카 리서치 대표가 미국과 유럽의 망중립성 원칙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전세계 주요 국가 모두 망 중립성 원칙 지킨다

과기정통부에 따르면 유럽을 포함한 대부분의 OECD 국가들은 법이나 가이드라인을 통해 망중립성을 지키고 있다. 미국 역시 아직 FCC의 표결이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에 현재는 망중립성 원칙이 운영되고 있는 상황이다. EU(유럽연합)는 지난 2015년 11월, DSM 법안 (레귤레이션, Regulation)을 발효했다. 레귤레이션의 경우 유럽 각국의 법보다 우선시 되는 상위법이다.

지난해 8월 발표된 유럽전자통신규제기구(BEREC) 망중립성 가이드라인에는 차단금지, 조절금지, 대가에 의한 우선처리 금지, 투명성 확보 등의 내용이 들어갔다.

강유석 과기정통부 통신경쟁정책과 사무관은 “대부분의 주요 국가의 경우 망중립성을 지키고 있다”며 “우리나라도 망중립성 가이드라인과 전기통신사업법에 따른 방통위의 사후 규제로 망중립성을 지키고 있다”며 “망중립성 가이드라인의 경우 법적인 강제성은 없지만 현재 잘 지켜지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예전 방송통신위원회가 지난 2011년 발표한 망중립성 가이드라인은 망 보안 · 안정성 확보, 망 혼잡으로부터 다수 이용자 보호, 법에 따른 국가기관 요청을 제외하고는 트래픽 전송을 차별하지 못하고 트래픽을 불합리하게 차별해선 안 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국내의 경우 제로 레이팅은 활성화될 가능성 있어

국내는 망중립성을 지키겠다는 입장이지만 미국의 망중립성 폐기로 인해 제로레이팅 서비스가 더 활성화될 가능성이 있다. 제로레이팅이란 통신사와 콘텐츠 사업자가 제휴를 맺고 자사 콘텐츠를 이용할 때 통신 데이터 요금을 이용자 대신 내주는 서비스를 말한다. 국내의 경우 SK텔레콤과 포켓몬 고가 제로레이팅 서비스를 한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송재성 과기정통부 통신경쟁정책과장은 “제로레이팅은 기술적으로 콘텐츠를 차별화하는 것이 아니다”며 “최근 유승희 의원이 망중립성에 대한 법안을 발의했는데, 이중 불합리한 차별 금지 조항의 경우 제로레이팅까지 포함될 수 있다. 제로레이팅의 경우 장단점도 분명히 존재하기 때문에 신중할 필요가 있다는 입장을 전달했다”고 말했다.

이효성 방송통신위원장 역시 지난 4기 방통위 정책설명회에서 “트래픽을 과도하게 유발하는 업체(CP)는 그에 맞는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고 언급한 적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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