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투데이 홍하나 기자] 미국 연방통신위원회(FCC)가 지난달 망중립성 원칙 폐기안을 공식 발표한 가운데 망중립성 폐지 수순을 두고 미국 통신망 사업자, 인터넷 및 콘텐츠 사업자들의 찬반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망중립성 원칙을 지키고 있는 국내에서는 폐지를 위한 움직임은 없으나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소속 위원들간의 입장 차이는 조금씩 드러나고 있다.

1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망중립성 원칙과 관련해 여야 간의 입장차이를 보이고 있다. 정부의 기조대로 망중립성 원칙을 이어가야 한다는 의견과 데이터 트래픽이 날로 증가하는 점을 고려하면 통신사에만 망 비용을 떠넘길 수 없다는 의견이 상충되고 있다.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사진=위키미디어)

지난 29일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는 제2차 정보통신방송법안심사소위원회를 열었다. 이날 망중립성 가이드라인 법제화와 관련해 유승희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발의한 법안은 자유한국당 의원들의 반대로 처리되지 못했다.

유승희 더불어민주당 의원실 관계자는 “정부와 국회에서 마련한 망중립성 원칙의 훼손을 최소화해야 한다는 입장”이라면서 “망중립성이 과거 지향적, 규제성이 아니라 원래 있던 가이드라인을 지키자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이어 “망중립성은 기존의 망을 차별없이 사용하자는 목소리를 반영해 만들어진 가이드라인"이라면서 “망중립성 원칙을 트렌드로 따라가야 하는 것이 아니라 분리해 따로 봐야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망중립성 강화에 대해서 더불어민주당은 당내에서도 의견을 좁히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유승희 의원과는 달리 같은 당원인 변재일 의원은 망중립성을 일부 완화해야 할 필요가 있다는 입장이다. 사실상 더불어민주당에서 이를 당론으로 정하지 못한 것.

자유한국당에서는 5G, 사물인터넷 시대 등 더욱 많은 트래픽이 요구되고 있는 시대가 다가오면서 망중립성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다는 의견을 제기했다. 김성태 자유한국당 의원실 관계자는 “정부에서 내년도 개최되는 평창올림픽, 5G 서비스에 대해 관심을 갖고 있는데 현재 5G 서비스가 민간주도로 이뤄지고 있는 점을 고려하면 망중립성은 과거 지향적”이라고 말했다.

이어 “최근 김성태 의원이 포털 사업자를 규제하는 뉴노멀법을 발의했다. 망중립성과 뉴노멀법은 상충되는 점이 많다”면서 “따라서 망중립성 강화 법안에 대해 의견수렴을 거쳐야겠다고 판단한 부분”이라고 설명했다.

이처럼 자유한국당에서는 추가 의견 수렴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이러한 배경에는 지난 대선 때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가 통신비 인하 정책으로 망중립성 완화를 들고나온 데 있다.

현재 찬반 의견이 분분한 유승희 의원이 발의한 법안은 망중립성 가이드라인을 법제화하는 것이 골자다. 통신사가 자신이 제공하는 역무, 경쟁관리에 있는 콘텐츠 등에 대해 트래픽 차단이나 이용 가능한 서비스 양의 제한 등 차별을 하지 못하게 하고 콘텐츠의 유형, 제공자 등에 따라 합법적인 트래픽을 불합리하게 차별하지 못하는 것 등의 내용이 포함됐다.

이처럼 여야간 입장차를 좁히지 못하자 법안소위에서 결국 이를 통과시키지 못하고 추후 공청회를 한 뒤 다시 법안을 심사하는 것으로 결론을 냈다. 이달 중순 망중립성 지지를 법제화하는 내용의 ‘전기통신사업법 개정안’ 공청회가 열린다.

망중립성을 둘러싼 입장차이

미국서는 망중립성 폐기 수순...거의 ‘확정’

망중립성 정책은 2015년 버락 오바마 미국 전 대통령이 법제화하면서 미국서 시행됐다. 이후 정권이 바뀌면서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1월 아지트 파이를 FCC 위원장으로 임명했다. 아지트 파이 위원장은 버라이즌 출신으로, 위원장 임명 당시 통신사에 유리하도록 망중립성 정책을 폐기할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었다.

예상대로 아지트 파이는 지난 4월 인터넷에 대해 가벼운 터치의 규제 체계로 돌아가기 위해 광대역 인터넷 액세스를 통신법상의 타이틀2 대신 타이틀1로 변경할 것을 제안했다. ISP를 공공 서비스가 아닌 정보 서비스로 변경해 시장원칙에 따라 작동되도록 하는 것이다.

아지트 파이 FCC 위원장 (사진=테크크런치)

지금까지 망중립성 정책은 ISP를 공공 서비스로 분류했다. 따라서 인터넷에서 데이터를 주고받을 때 데이터 내용이나 양에 따라 속도, 망이용료를 차별하지 못하도록 했다. 하지만 변경된 새로운 법안에서는 통신사 등 ISP가 합법적으로 인터넷 트래픽에 우선순위를 부여하거나 특정 앱, 서비스를 차단할 수 있다.

FCC는 망중립성 폐기에 대해 찬반 여부를 묻는 투표를 이번 달 14일 진행한다. 이 안은 현 FCC 아지트 파이 위원장이 주도해 만들었기 때문에 업계에서는 무난하게 통과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망중립성 폐지에 미국 통신사, 인터넷 기업 대립 

망중립성 폐지 소식에 미국 통신사, 인터넷 및 콘텐츠 기업들은 입장차를 보이고 있다. 통신사들은 과도한 트래픽을 유발하는 콘텐츠 사업자들로 인해 망투자라는 부담을 져야 한다. 특히 향후 5G 서비스가 상용화되면 부담은 더욱 커진다. 새로운 망 구축 비용을 통신사에만 완전히 맡겨서는 안된다는 것.

게다가 몰리는 트래픽을 통신사에서 조정하면 망을 더욱 효율적으로 관리할 수 있다는 것이 통신사들의 주장이다. 

반면 구글, 넷플릭스, 페이스북, 트위터 등 인터넷 기업들은 다른 입장이다. 망사업자가 특정 콘텐츠를 차단, 우대할 수 있다는 것. 예를 들어 통신사의 콘텐츠 자회사나 많은 비용을 낸 특정 콘텐츠 기업의 속도를 높여주는 차별이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경우 약육강식의 생태계가 구성, 흔히 말하는 '돈있는 자만 살아남게 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인터넷, 콘텐츠 서비스를 하는 스타트업들은 사업을 하기가 어려워질 뿐더러, 혁신적인 서비스도 나오지 않을 것이라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국내서도 인터넷 기업 vs 통신사...‘입장차’ 

국내에서는 지난 2011년 망중립성 가이드라인이 만들어져 지금까지 시행중이다. 현 정부에서도 망중립성 원칙을 고수하자는 입장이다. 문재인 정부는 후보시절 망중립성을 강화하는 공약을 내세웠다. 따라서 미국이 망중립성을 폐지한다하더라도 당장에 큰 변화는 없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인터넷 업계에서는 우려하는 분위기다. 미국의 영향을 많이 받는 우리나라의 특성상 가능성이 아예 없지 않다는 것이다. 인터넷기업협회 차재필 정책실장은 “우리나라가 해외사례중 가장 많이 인용하는 국가가 미국이다. 망중립성 폐지 영향이 미칠수 있을 것 같다”고 시사했다.

이어 “망중립성이 폐지된다면 시장지배력이 망사업자에게 전이되어 통신사 위주의 자회사 성장, 인터넷 기업의 혁신 저해, 스타트업 성장저해 등의 문제가 생길 것”이라면서 “또 망사용료에 대한 글로벌 기업들의 무임승차 문제도 해결되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통신사에서는 인터넷 기업의 주장에 난색을 표했다. 인터넷, 콘텐츠 기업의 트래픽이 점차 늘어가는 상황에서 망 비용에 대한 부담은 고스란히 통신사의 몫이라는 것.

한 통신사 관계자는 “같은 생태계에 참여한 사업자들이 함께 비용을 내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면서 “고속도로(망) 이용자(사용자)들이 늘어나다보니 휴게소(인터넷기업) 들이 막대한 수익을 창출하고 있는데, 이 휴게소 때문에 고속도로 이용자들이 많아지면 그에 상응하는 비용을 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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