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투데이 박근모 기자] 지난 2003년 AMD가 서버 및 HPC(고성능컴퓨팅)용 CPU(중앙처리장치) '옵테론'를 출시하며 인텔의 '제온' CPU가 독점하고 있는 X86 시장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결과적으로 AMD 옵테론은 시장의 선택을 받지 못하며 처참한 실패했다. 이후 14년간 인텔 제온이 X86 시장의 99%를 차지한 가운데, AMD는 그동안 절치부심 개발해온 새로운 '젠(Zen)' 아키텍처를 무기로 다시 한번 '에픽' 시리즈를 내놓으며 시장 공략에 나섰다.

AMD는 먼저 개인용 PC 시장에 젠 아키텍처 기반의 '라이젠' 시리즈를 공개하며 인텔 i 시리즈와 기대 이상의 성과를 보이며 X86 서버 및 HPC 시장에서도 성공을 자신하는 모습이다. 인텔은 기존 제온 시리즈를 대폭 업그레이드 시킨 '제온 스케일러블' 시리즈를 출시하며 X86 서버 시장을 두고 주도권을 잡기 위한 경쟁이 본격화될 것으로 보인다.

제온이나 에픽 등 워크스테이션이나 서버에서 사용하는 CPU의 경우 일반 PC의 CPU에 비해 월등히 높은 성능과 안정성을 기본으로 하고 있다. 특히 강력한 컴퓨팅 파워뿐만 아니라 미션크리티컬(작동이 멈추면 안되는 작업)한 작업시에도 중단되지 않는 안정성과 신뢰성, 내구성 등은 필수 항목이다. 일반적으로 워크스테이션이나 서버, HPC는 기업들이 대단위 업무용으로 사용하는만큼 문제 발생시 기업 전체에 큰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업계에 따르면 현재 엔터프라이즈용 X86 시장 점유율은 극단적으로 갈린 상태로 인텔 제온 시리즈가 전체 시장의 약 99%를 차지하고 있는 상태다. 물론 지난 2003년 AMD가 옵테론을 통해 서버용 제품을 출시한 이후 제온 말고는 시장에서 선택할 수 있는 제품 자체가 없었던 이유가 크다.

그래서 이번 AMD 에픽이 시장에서 기대하는 바가 크다. 기업 입장에서는 경쟁사가 없는 만큼 인텔 제온 시리즈를 울며 겨자먹기로 비싼 가격에 구입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실제 구입으로 연결될지 알 수 없지만 업계에서는 AMD가 일반 PC 시장뿐만 아니라 서버·HPC 시장에서도 분발해 주길 바라는 눈치다. 전례를 봤을때 무엇보다 가격적인 측면에서 인텔 제온에 비해 AMD 에픽이 절반 가량 저렴할 것으로 예상된다.

제온 스케일러블과 에픽의 대표 제품 사양표 (자료취합=디지털투데이)

AMD, 32코어-64스레드 '에픽' 출시

AMD가 젠 아키텍처를 기반으로 개발한 PC용 CPU 라이젠의 성공적인 시장 안착을 시작으로 X86 서버 시장에서도 에픽 시리즈를 내세우며 서버 제품이 본격적으로 출시될 올 하반기 인텔과 경쟁을 선언했다.

 

AMD가 에픽을 통해 서버 및 HPC 시장에 도전한다. (사진=AMD)

에픽은 AMD가 라이젠에서 보였던 전략과 유사한 멀티코어와 상대적으로 저렴한 가격을 무기로 내세우고 있다.

에픽 시리즈 중 최고 사양인 7601 모델은 현재 출시된 X86 서버 제품 중 코어가 가장 많이 탑재된 제품이다. 특히 32코어와 64스레드뿐만 아니라 AMD 인피니티 패브릭 기능으로 2개의 7601 CPU를 결합해 사용할 수 있어 성능뿐 아니라 확장성에도 이점이 있다.

AMD에 따르면 2개의 7601을 결합하면 최대 47%의 성능 향상이 가능하며 경쟁사(인텔 제온 E5-2650 v4)에 비해 코어당 최소 45% 이상 성능이 뛰어나다.

지금까지 AMD CPU의 약점으로 꼽혔던 TDP(열설계전력)은 인텔 제온보다 낮은 180W(와트)로 나타났다. TDP는 컴퓨터 속의 열이 빠져나오는데 필요한 시스템 냉각의 최대 전력을 나타내는 것으로 TDP가 낮을 수록 CPU 동작시 발열이 낮다는 것을 의미한다. 발열이 높을 수록 내부 회로의 손상 가능성이 높아지는 만큼 고성능과 미션크리티컬한 작업을 위해서는 낮은 발열이 필수다.

인텔, 28코어-56스레드 '제온 스케일러블' 출시

AMD의 젠 아키텍처 기반의 개인 PC용 라이젠의 분발로 인텔의 발걸음이 바뻐진 모양새다. 개인 PC 시장에서 1% 남짓하던 AMD의 시장 점유율이 라이젠 출시 이후 24.8%(6월 다나와 기준)까지 치고 올라오면서 그 원인으로 인텔이 AMD의 멀티코어 전략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다고 판단해 코어수를 대폭 늘린 i9 시리즈를 출시한바 있다. 이런 추세는 X86 서버 시장에서도 그대로 이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인텔이 코어를 늘린 제온 스케일러블 시리즈를 출시한다. (사진=인텔)

AMD 에픽이 32코어 64스레드로 X86 서버용 시장에 멀티코어 경쟁의 서막을 열면서, 인텔도 기존 제온 시리즈에서 코어를 늘린 '제온 스케일러블' 시리즈를 출시했다. 제온 스케일러블의 최고 사양인 제온 플래티넘 8100 시리즈는 28코어 56스레드를 탑재해 기존 최고 사양이었던 제온 E7-8894 v4의 24코어 48스레드에서 코어를 늘린 형태로 구성됐다.

아쉬운 점은 인텔의 7세대 아키텍처인 카비레이크를 적용하지 않고, 6세대인 스카이레이크를 적용했다는 점이다. 물론 서버용 제품은 신뢰성과 안정성이 무엇보다 중요한만큼 검증 된 아키텍처 사용은 당연해 보인다.

인텔에 따르면 제온 스케일러블은 하드웨어 가속화 기능을 통해 워크로드 처리와 데이터 전송을 향상 시키는 '통합 퀵어시스트(QAT) 기능과 함께 MVMe SSD 핫스왑을 지원하는 인텔 볼륨 관리(VMD) 기능 등을 탑재해 실제 처리 속도뿐만 아니라 안정성도 향상 시켰다. 또한 암호화 등 스토리지 운영을 최적화해 스토리지 성능을 높이는 '지능형 스토리지 가속화 라이브러리(ISA-L)' 기능도 포함돼 SHA, AES 암호화를 사용하더라도 속도 저하가 발생하지 않는다.

AMD와 인텔의 X86 시장 격돌...가격 vs 신뢰도

업계에서는 AMD 에픽과 인텔 제온 스케일러블의 강점으로 각각 가격과 신뢰도를 꼽고 있다. 반대로 말하자면 각각 신뢰도와 가격에 약점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먼저 인텔 제온 스케일러블의 공식 출시가가 공개되지 않은 상황에서 이전 제온 최고 사양 제품인 E7-8894 v4의 가격은 8898달러(한화 약 1001만원)에 달했다. 아마 제온 스케일러블 8100 시리즈가 나온다고 하더라도 크게 달라질 것으로 보이진 않는다. 반면 AMD 에픽의 최고 사양인 7601 시리즈는 4200달러(한화 약 472만원)로 책정된 상태다. 인텔 제온 스케일러블이 최소 4000달러(한화 약 450만원) 이상 높은 가격으로 책정이 예상된다.

정석호 VM웨어코리아 프리세일즈엔지니어링 이사는 "현재 VM웨어도 다양한 가상화 관련 제품을 위해 에픽을 내부적으로 테스트 하고 있다"라며 "고객의 입장에서 비슷한 성능을 보인다면 가격이 저렴할 것으로 예상되는 AMD 에픽을 선택하지 않을 이유는 없다"고 전했다.

인텔 제온의 강점은 10년이 넘는 기간동안 압도적인 시장 점유율을 바탕으로 기업 고객의 요구를 만족시켜왔다는 점이 강점으로 꼽힌다. 반면 AMD는 옵테론 실패 이후 오랜만에 X86 시장에 재도전한 상태로 다양한 고객의 요구를 만족 시키는 어려워 보인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AMD 에픽이 하반기 출시 된다고 하더라도 다양한 서버 제품이 나올 것 같진 않다"라며 "에픽이 제온에 비해 상대적으로 가격이 저렴하겠지만, 기업 고객들이 가격이 저렴하다고 에픽을 무턱대고 선택하진 않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이어 "AMD 에픽이 X86 시장에서 성공하기 위해서는 시장의 신뢰를 쌓는 과정이 필요해 보인다"고 덧붙였다.

AMD 측은 "지금까지 X86 시장에 제온만 있다보니 서버 제조사뿐만 아니라 기업 고객들도 선택권이 없었던 상황이었다"라며 "에픽이 탑재된 서버나 HPC가 본격적으로 출시되면 고객들은 저렴한 가격에 비슷한 성능의 제품을 선택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박민진 인텔코리아 이사는 "인텔은 경쟁사 제품에 대해 항상 진지한 자세로 받아들이고 있다"라며 "출시한 제품이나 앞으로 출시할 제품의 성능이나 여러면에서 우리 제품이 경쟁사보다 우위에 있다고 생각하는 만큼 앞으로 좋은 제품 출시를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전했다.

한편, 현재 델EMC나 HPE, 레노버 등 서버 및 HPC 생산 라인업에는 AMD 에픽 탑재 서버 제품이 없는 상태다. 하지만 확인 결과 AMD 에픽 탑재를 위한 다양한 내부 테스트를 진행 중으로 델EMC, HPE, 레노버에서는 올 하반기 에픽을 탑재한 서버와 HPC 제품을 시장에 본격적으로 출시할 계획이다.

저작권자 © 디지털투데이 (DigitalToday)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