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셔터스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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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경수 IT칼럼니스트]새해부터 미국 기술 기업을 중심으로 잇따라 대규모 감원 소식이 전해졌다. 지난해 이미 구글, 마이크로소프트, 아마존, 메타 등 대형 기술 기업은 수만 명을 해고했다. 올해도 해고 집계 사이트 레이오프(Layoffs.fyi)에 따르면 1월 한달이 지나지 않았음에도 2만명 이상 해고됐다. 

같은 시기에 이들 기업을 중심으로 뉴욕 증시는 크게 상승했다. 최근 S&P500 지수는 연일 사상 최고치를 경신했다(1월 23일 기준, 5거래일 연속 최고치). 각 기술 기업의 시가총액도 엄청나게 늘었다. 

2024년 시작부터 벌어진 아이러니한 상황의 중심에는 AI가 있다. AI에 대한 대규모 투자와 기대감에 힘입어 S&P500 지수는 거침없이 상승하고 있다. 같은 이유로 수많은 노동자가 거리에 내몰리고 있다.

불과 몇 년 전 비대면이 일상화가 됐던 코로나19 직후, 전 세계적으로 디지털 전환(DX)이 확산하면서 기술 직종은 높은 연봉과 고용 안정의 대명사였다. 하지만 생성형 AI의 등장으로 이제 기술 업계 노동자도 생계의 위협을 받고 있다. AI 경쟁이 본격화되면서 주요 기술 기업은 AI에 대한 투자를 큰 규모로 확대할 것이다. 이에 비례해 다른 곳은 수익성 확보와 효율이라는 이름 아래 대량 해고가 상시로 이어지지 않을까 싶다. 

18세기 말 이후 근현대사를 관통하며 증기기관을 통한 기계화, 전기 기반의 대량생산, 컴퓨터와 인터넷의 정보화에 이어지는 세 차례의 산업혁명이 있었다. 기술의 발전을 통해 겉으로는 생산성 향상과 자본주의 경제의 발전 등 풍요로운 진보를 겪어왔다. 

기술 혁신은 피할 수 없다. 이러한 변화의 결과로 인류의 삶은 점점 개선됐다. 동시에 한 세대의 노동자를 끊임없이 괴롭혔다. 현재의 AI 혁신도 마찬가지여서 기회와 위험을 동시에 갖는다. AI가 생산성을 높여 노동자를 보완할 수 있다. 노동자를 대체해 대량 해고와 실업을 초래할 수도 있다

크리스탈리나 게오르기에바 IMF 총재는 최근 블로그 포스팅을 통해 "AI가 전 세계 고용의 약 40% 영향을 미친다. 일자리를 대체하고 불평등을 심화시킬 수 있다"라며, "AI의 잠재력을 활용하려면 신중한 정책의 균형이 필요하다"라고 밝혔다.
 
게오르기에바 총재는 신흥 시장과 저소득 국가보다 선진국이 더 큰 영향을 받을 것으로 예상했다. AI가 고숙련 일자리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능력이 크기 때문이다. 선진국은 일자리의 약 60%가 영향을 받을 수 있다. 일자리의 절반은 생산성 향상의 혜택을 누릴 수 있다. 나머지 절반은 인간이 수행하는 주요 업무를 AI가 대신할 수 있기에 임금 하락과 고용 감소로 이어질 수 있다.

지난해 3월 골드만삭스도 ‘경제성장에 대한 인공지능의 정치적으로 큰 효과’라는 보고서에서 AI가 3억 개 이상의 일자리를 파괴할 수 있다고 했다. 전 세계 일자리에 1/4을 대체할 수 있다는 것이다. 반면, 새로운 일자리가 창출되고 생산성을 향상할 수 있다고도 했다. AI 기술 혁명이 일자리를 파괴하는 것보다 더 많은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할 가능성도 있다.

MIT 경제학자 데이비드 오터는 지난 80년간 고용 증가의 85%가 기술 덕분이었다고 밝혔다. 그는 "오늘날 근로자의 60%는 1940년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직종에 종사하고 있다. 이는 지난 80년 동안 고용 증가의 85% 이상이 기술 주도의 새로운 직업 창출로 설명된다는 것을 의미한다"라고 말했다.

물론 AI가 인류의 더 나은 미래를 위한 혁신과 성장을 촉진할 것이다. 이전에는 상상할 수 없었던 일자리를 만든다는 것에 대해서도 개인적으로 이견이 없다. 문제는 AI가 의도하지 않게 특정 자본가와 소수에게만 모든 부를 쏠리게 하고, 일반 노동자는 대부분 지금보다 더 열악한 상황으로 몰리는 극단적인 불평등에 있다. 

AI가 급격한 일자리 구성의 변화를 초래하지만, 동시에 새로운 억만장자 거물도 만든다. 엄청난 소득 불평등을 일으킬 것이라는 우려이다. AI가 생산성을 크게 높여 많은 일자리를 대체하더라도 새로운 일자리 창출을 통해 많은 이들이 생활 수준을 과연 지금보다 높일 수 있을까?

2021년 6월 전미경제연구소(NBER)가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자동화 기술이 지난 40년 동안 미국 소득 불평등의 주요 원인이었다. AI와 같은 새로운 기술로 인해 소득에 엄청난 격차를 발생하고, 불평등은 더 가속된다. 

AI에 의한 실업은 대학 교육을 받은 사무직이나 일부 전문직 종사자도 예외는 아니다. AI는 중산층 근로자가 주로 담당하는 사무직, 고객 서비스와 판매 직무 등을 점점 더 자동화하고 있다. 이에 따라 이들의 임금, 고용 기회, 협상력은 감소한다. 반면 고급 엔지니어, 관리자, 분석가 등 AI를 보완하는 고숙련 근로자에 대한 수요와 보상은 증가하고 있다. 

챗봇 서비스, 콘텐츠 제작 등 AI는 다양한 형태의 제품과 서비스를 창출할 수 있기에 소유자와 제작자는 막대한 가치와 부를 창출할 수 있다. 이러한 새로운 시장은 AI를 활용해 사업 규모를 확장하고, 방대한 양의 데이터를 수집하고 분석하며, 네트워크 효과와 규모의 경제를 활용할 수 있는 일부 대기업이나 특정 개인이 주도하는 경우가 많다. 

(오늘날 약탈적 자본주의의 속성이 그렇듯이) 문제는 AI를 통한 생산성 향상의 이익이 최상위 소수 계층에게 대부분 돌아가게 구조화됐다는 점이다. 미국 경제정책연구센터(CEPR) 수석 경제학자 딘 베이커는 “대부분 이익이 임직원이나 사회 전반에 돌아가지 않고 최고경영진, 금융가, 고임금 기술직, 의사 등 임금 사다리의 맨 위에 있는 소수에게만 돌아갔다는 것이다. 이들은 자신의 정치적 힘을 이용해 경제 규칙이 자신에게 유리하도록 설계했다”라고 말했다.

국가간 불평등의 문제도 있다. AI는 기술, 인프라, 교육의 수준에 따라 국가마다 큰 격차가 생긴다. 미국, 유럽연합 등 선진국은 AI 연구 개발에 더 많이 투자하고, 관련 애플리케이션에서 발생하는 이익과 파급 효과를 더 많이 누린다. 신흥국이나 저소득 국가는 AI에 적응하고 세계 시장에서 경쟁하는 데 많은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 이들 국가 중 상당수는 AI를 활용할 수 있는 디지털 인프라나 인력을 갖추지 못했기에 기술 격차에 따른 국가 간 불평등을 악화시킬 위험이 크다.

AI는 선진국의 일자리에 미치는 영향이 더 크지만 한편으로 국가간 AI 수준에 대한 불평등을 고려해야 한다{자료: IMF 블로그]
AI는 선진국의 일자리에 미치는 영향이 더 크지만 한편으로 국가간 AI 수준에 대한 불평등을 고려해야 한다{자료: IMF 블로그]

AI가 대부분 계층의 근로자와 국가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높다는 점에 더 큰 관심을 가져야 한다. 임금 하락과 소득 불평등의 급속한 증가라는 끔찍한 결과에 주목해야 한다. 더 늦기 전에 AI를 어떻게 관리해야 할지 진지하게 논의해야 한다.

불평등의 문제를 폭넓게 연구해 온 2001년 노벨경제학상을 수상자 조셉 스티글리츠는 규제되지 않은 AI가 불평등을 악화시킬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는 역사적으로 자유로운 자본주의와 혁신은 우리 사회의 전반적인 복지로 이어지지 않으며, 시장에만 맡겨두면 안된다고 했다. 올바른 정책만 있다면 생산성이 높아져도 불평등은 줄어들고 모두가 더 잘 살 수 있다. 하지만 정치가 작동하는 방식은 그런 방향으로 나아가지 못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옳은 일을 지속한다면 AI가 큰 도움이 될 수 있다는 희망은 있다. 과연 인류는 정책을 통해 올바른 방향으로 나갈 수 있을까? AI 기술로 인해 대량 실업과 불평등이 초래돼서는 안 된다. 그러한 문제가 발생한다면 그것은 기술 자체가 아니라 인류가 규칙을 어떻게 구성 했는지에 대한 결과이다. 눈을 크게 뜨고 올바른 규칙을 만드는 것이 정책적 선택이라는 점을 염두 해야 한다.

실업과 불평등이 발생하는 것을 완화하기 위한 실질적인 방법으로 산업 재배치와 교육 시스템을 재구성하는 것이 있다. 산업 재배치는 노동집약적인 산업을 수요가 많은 지역으로 이전해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하는 것이다. 교육 시스템의 재구성은 고용 시장의 변화하는 요구에 맞게 조정하고, 수요가 높은 AI 기술에 초점을 맞춘 교육 프로그램을 제공한다. 불평등의 증가를 제한하거나 예방하기 위한 세제 개혁의 필요성도 고려되고 있다. 이를 통해 .모든 사람에게 기본소득을 보장하고, 불평등 보험을 제공하는 아이디어도 있다. 

실업과 불평등은 총체적인 접근이 필요한 다면적인 문제이다. 단순한 금전적 지원을 넘어 포괄적인 전략이 필요하다. 갈수록 벌어지는 부의 격차를 해소하고, 더 포용적인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특히 AI로 대체되거나 착취에 취약한 노동자의 권익을 보호하는 공정한 시장을 위한 조치도 선행돼야 한다. 

AI가 책임감 있고 투명하게 사용되며, 그 혜택이 광범위하고 공유될 수 있는 장치를 마련할 필요도 있다. AI 혁신과 경쟁을 지원하면서 동시에 시장 지배력과 부의 소수 집중을 방지하고 공공에 도움이 될 수 있는 AI 서비스가 나왔으면 한다. 

[사진: 셔터스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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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초 1차 산업혁명 당시 영국에서 러다이트(Luddite)가 등장했다. 번성했던 섬유산업 노동자들이 증기기관 도입에 따른 생계의 위험에 대항해 일으킨 기계 파괴 운동으로 알려졌다. 이후 그들은 무능하고 시대착오적인 기계혐오자로 명명돼 오늘날까지 신기술과 혁신을 거부하는 이들로 취급 받았다. 하지만 러다이트는 기술에 반대하거나 기술적으로 무능한 사람들이 아니었다. 그들은 단지 자신들의 생존을 위협하는 약탈적인 산업가에 반대한 것이다. 

러다이트는 무식하지 않았고 혁신에 반대하지 않았다. 그들은 인간에게 불리하게 기술을 사용하는 지점을 정확히 찾아내어 조직적으로 대응했다. 파괴 직전에 놓인 사랑하는 가족과 공동체를 지키려는 절박한 호소였다. 심지어 기술과 공존할 수 있다고 믿었다. 어떤 기술도 그 자체로 신성한 것이 아니라 사회에 도움이 될 때만 가치가 있다고 이해했다. 

오늘날 러다이트는 디지털 자본주의가 초래한 폐해에 맞서고, 자신의 삶을 구성하는 기술 시스템에 더 많은 책임을 부여함으로써 이를 해결하고자 한다. AI 기술에 대해 비판적으로 면밀히 검토해 민주적 가치가 있는 정치경제적 현상으로 관리해야 한다. 

새로운 기술 혁신에 대한 공포는 항상 있어 왔다. AI가 오늘날 인류에게 불안과 절망, 분노를 요동치게 할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은 AI의 잘못이 아니다. AI 기술이 투명하고 책임감 있게 개발돼 운영되게 하는 것은 인간의 몫이다. AI가 개인과 인류 전체에 엄청난 해악을 끼치지 않고, 신뢰할 수 있는 공존과 번영을 위한 기술로 나갈 수 있게 우리 모두의 지속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오해 없는 올바른 의미에서, 나는 ‘러다이트’가 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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