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투데이 백연식 기자] 넷플릭스가 SK브로드밴드와 소송을 하면서까지 망 이용대가를 내지 않으려 하는 가운데, 결국 망 무임승차를 방지하기 위해서는 입법을 통한 정부 개입의 근거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업계가 목소리를 내고 있다. 이와 관련 법안이 6개나 발의돼 있지만 지난 4월 과방위 법안심사소위가 향후 공청회 등을 개최하고, 후속 논의하자는 여야 합의 이후 한발 짝도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입법을 통해 정부가 시장을 규제하는 제도가 필요한 이유에 대해 SK브로드밴드 등 통신 업계는 원론적으로 시장이 자원배분의 최적 배분을 보장하나 독과점·외부성·불완전경쟁 등 여러 요인으로 인해 시장의 실패가 발생하면 정부가 시장에 개입해 이를 교정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현재 국회에서 논의 중인 일명 망 무임승차 방지법(전기통신사업법 일부 개정안)이 한미 FTA 규정에 위반한다는 우려가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문제가 없다는 의견도 존재한다. (관련기사/SK브로드밴드-넷플릭스 공방...한미 FTA 문제 없나?)

망 무임승차 방지법이란 현재 국회에 계류 중인 6건의 전기통신사업법 개정안을 말한다. 정보통신망 서비스 이용계약 체결을 의무화하거나 부당한 계약 체결 거부 또는 부당한 계약 강요 행위를 금지하는 등 일정 규모 이상 CP들의 망 무임승차를 막는 내용을 담고 있다.

◆ 망이용 거래에서 시장 실패가 발생하는 원인은?

망 이용 거래 관계에 대해서 살펴 볼 경우, 해당 시장에서 실패가 발생하는 원인은 넷플릭스와 같은 이른바 글로벌 빅테크들이 우월적 협상력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은 한 나라가 아닌, 전 세계를 대상으로 사업을 하고 있어 압도적인 가입자와 매출, 시가총액 등을 앞세워 협상 테이블에서 우선권을 발휘하고 있다.

글로벌 콘텐츠 제공 사업자(CP, Contents Provider)들이 우월적 협상력을 가지게 되는 인터넷 시장에서 인터넷 서비스 제공자(ISP, Internet Service Provider), 즉 통신사들은 망에 대한 착신 독점력을 갖고 있지 않다. 전 세계적 연결성과 패킷 통신이라는 기술적 특성을 가진 인터넷망에서 ISP가 특정 콘텐츠를 조절하거나 차단할 수 없기 때문이다. 대신 CP들은 데이터양 등 상황에 따라 그들이 원하는 대로 다양한 인터넷 연결 방식을 선택할 수가 있다. 

구글·메타 등 빅테크 기업 등 글로벌 CP들이 제공하는 서비스는 인터넷망의 광대역화에 따라 이제는 사실상 필수재다. 넷플릭스를 포함해 유튜브, 카카오, 페이스북, 네이버, 쿠팡 등 SNS, 온라인 동영상 플랫폼(OTT), 포털, 커머스 서비스들은 이미 전 세계인들이 매일같이 이용할 정도로 실질적인 필수재가 됐기 때문에 그 영향력을 무시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한편 넷플릭스 같은 OTT 서비스 이용 고객이 서비스, 즉 콘텐츠 품질에 문제가 발생했을 때 당연히 해당 OTT 서비스 업체가 아닌 통신사에게 불만을 표출하는 것도 글로벌 CP들이 교묘히 악용하고 있는 부분일 수 있다. 글로벌 OTT 업체들에 비해 통신사들의 고객센터는 상대적으로 불만 접수, 장애 처리와 같은 시스템이 아주 잘 구축돼 있는 것이 사실이다. 예를 들어 국내 SK브로드밴드 인터넷 가입자가 넷플릭스를 시청하다 화면이 멈춘다면 넷플릭스가 아닌 SK브로드밴드에 전화 걸 경우가 거의 100%다.  

또한 전 세계적으로 통신시장은 매우 경쟁적 시장으로 경쟁이 치열해 가입자들은 통신사의 선택과 전환이 굉장히 쉽다. ISP가 특정 OTT와 협상이 안돼 전용망의 연결(Peering, 피어링 방식)으로 전달되지 않아 품질이 저하될 경우 고객들은 통신사에게 불만을 갖고 다른 통신사를 선택하는데 어려움이 없다. 이는 ISP 입장에서 글로벌 CP들과의 협상력 저하로 이어진다.

일반적으로 인터넷 서비스 제공자(ISP, Internet Service Provider)는 각자 인터넷 망을 구축해 가입자들과 콘텐츠 제공 사업자(CP, Contents Provider)를 유치한다. 하지만 다른 인터넷 망과의 연결이 없을 경우 정보교환이 제한된다. 이 때문에 ISP들은 서로 접속계약을 맺는다. 이는 직접접속(피어링, Peering)과 중계접속(트랜짓, Transit)으로 구분한다. 피어링은 계약당사자간에 교환되는 트래픽 중 제3자의 망으로 전송할 의무가 부여되지 않는 계약을 말한다. 반대로 트랜짓은 서로가 교환한 트래픽을 다른 망으로 전송할 의무가 있다.

한 ISP의 망을 쓰는 CP의 트래픽은 이처럼 접속계약에 따라 여러 개의 직접·중계접속된 통신사 망을 거쳐 이용자에 전달된다. 이런 과정에서 정산을 하지 않는 접속계약(무정산 피어링)은 사업자간에 요구가 맞아 떨어져 나타나게 된 것이다. 서로 오가는 트래픽의 규모가 비슷한 망끼리 상호간 정산 없이 트래픽을 교환하는 방식이다. 트래픽 교환비율이 비슷하다면 서로가 받게 되는 비용과 편익이 유사하고, 오히려 정산을 하는 것이 비효율적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정부의 규제도 비대칭적 협상력에 큰 영향을 미친다. 현재 국내법과 규제는 기간통신사업자인 통신사에게 집중돼 있다. 글로벌 CP, 특히 부가통신사업자로 분류되는 OTT에 대한 법규는 기간통신사업자에 비해 그 규제나 처벌 수위가 거의 없거나 매우 약한 것이 사실이다. 

넷플릭스와 같은 글로벌 CP는 이러한 비대칭적인 규제 상황을 너무나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자신들의 트래픽이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할 것을 예상했으면서도 이를 전략적으로 활용하고 있다는 것이 ISP의 주장이다. 이는 곧 인터넷 망의 이용과 관련한 ISP와 CP간의 거래관계의 훼손으로 이어지게 된다고 통신 업계는 강조한다. 

◆ 그로 인해 발생하는 경제사회적 문제는 무엇인가?

정당한 망 이용대가를 지급하지 않고 있는 일부 글로벌 CP들로 인해 발생하는 바람직하지 못한 경제사회적 상황의 대표적인 것이 망에 대한 ‘무임승차’라고 통신 업계는 주장한다. 이들은 엄연히 통신사가 비용을 들여 구축한 자산인 망(네트워크)을 소비는 하되 이를 관리하고 고도화하는 생산 과정에는 전혀 참여하지 않는다. 정상적인 인터넷 서비스 과정에서 망에 대한 소비는 계속되는데 생산에 대한 기여를 강제하지 않는 경우 망이라는 자원은 사회가 필요로 하는 만큼 재생산될 수가 없다는 논리다. 

다음은 ‘교차보조’다. 넷플릭스가 당연히 부담해야 하는 망 이용대가를 외려 약자라 할 수 있는 일반 이용자들이 부담하는 현상이 발생하는 것이다. 넷플릭스를 이용하는 구독자가 부담해야 할 비용을 넷플릭스와 전혀 상관없는 비구독자들이 부담하는 피해로 이어질 수 있다. 

이러한 망 무임승차 현상이 계속되면 아무도 관리하지 않는 목초지는 결국 황무지가 될 수밖에 없다는 ‘공유지의 비극’을 초래하게 된다고 국내 통신사 측은 주장한다. 지금까지 통신사와 CP, 그리고 이용자 간 긍정적 상호작용인 이른바 ‘공진화(Coevolution)’를 통해 잘 조성된 인터넷 생태계의 지속 가능성은 훼손되고 말 것이라는 것이 이들의 주장이다. 결국 통신사는 물론, CP와 이용자 등 인터넷 생태계에 참여하는 모든 이들의 손해로 이어진다는 얘기다. 

SK브로드밴드 관계자는 “우리나라 전기통신사업법 제1조에 이러한 정신들이 잘 적혀져 있다. 정부와 국회는 전기통신사업의 건전할 발전과 이용자 편의를 위해 입법에 적극 나서야 한다”며 “지금은 입법이 중요한 시기다. 소송은 과거를 치유하는 것이지만 입법은 미래, 즉 앞으로 발생할 일을 미리 치유할 수 있다. 지금 넷플릭스의 행태로 볼 때 최종 소송에서 SK브로드밴드가 이긴다고 해도 앞서 언급한 우월한 협상력을 내세워 불응하면 답이 없다”고 강조했다. 

이어 “가장 바람직한 것은 협상을 통해 이 이슈를 해결하는 것이다. 하지만 지금까지 상황을 돌아보면 일부 글로벌 CP는 현재의 우월적 지위에서 정상적 협상을 거부해 왔다. 이러한 우월적 협상을 정상화 시키려면 제도를 통해 대등한 협상이 가능하도록 해야 한다”며 “정부와 국회가 확고한 의지를 가지고 망 거래관계의 시장실패를 교정한 제도를 만들지 않는다면 일부 GCP의 무임승차 행위를 지속할 수 밖에 없을 것”이라고 부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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