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 이야기’를 보면 인프라 스트럭처의 중요성을 보여주는 사례가 나온다. 중국이 북방 유목민족의 침입을 막기 위해 만리장성을 쌓고 있을 때, 로마는 광활한 영토를 잇는 가도, 요즘 말로 하면 고속도로를 사방팔방 건설했다는 얘기다.

외부세계의 위협으로부터 자신의 문화를 지켜야 ‘세계 중심국’이 된다고 생각한 중국과 달리, 로마는 외부세계에 적극 다가가기 위해 도로건설을 ‘필수사업' (moles necessariae)으로 간주하고 대규모 인프라 스트럭처를 구축한 것이 세계 패권국으로 발돋움할 수 있던 원동력이었다고 해석한다.

사실 이런 주장은 그대로 받아들이기에는 무리가 있다. 로마도 외적의 침입을 막기 위한 성벽을 쌓았고, 중국도 실크로드를 비롯해 세계로 뻗어 가기 위한 통로를 부단히 만들었다.

하지만 로마의 성장동력을 인프라스트럭처에서 찾은 통찰력은 높이 살만하다. 그때 그때 필요에 따라 도로, 상하수도, 다리 같은 기반시설을 만드는 것과 이것을 국가의 ‘하부(인프라) 구조(스트럭처)’로 보고 체계적이고 장기적인 계획 하에 대규모 투자를 감행하는 것은 아주 다른 결과를 가져온다. 로마가 그 옛날 인프라 스트럭처를 세계 패권국으로 도약하기 위한 ‘필수사업'으로 생각한 것이 놀라울 뿐이다.

역사를 보면, 시대마다 핵심 인프라를 선도한 나라가 선진국이 되었다. 산업화 초기에는 영국이 근대도시 발전을 통해 저임금 노동자의 대규모로 공급해 주도권을 잡았고, 산업화 중기 이후에는 에너지와 교통망의 발전을 선도한 미국이 헤게모니를 잡았다.

이후 미국은 대량소비사회, 정보화시대, 우주시대 등 중요한 시대 변화의 고비마다 핵심 인프라를 선점하여 세계 패권국의 지위를 누리고 있다. 최근 중국이 인프라에 대한 대규모 투자를 추진하는 것도 패권경쟁의 관점에서 볼 때 제대로 이해가 된다.

데이터 시대의 승부도 인프라에서 결판이 날 것이다. 데이터는 다른 데이터와 합쳐질 때 더 빛이 난다. 그만큼 인프라의 역할과 중요성이 커진다.

무한히 늘어 가는 데이터를 유기적으로 관리하고 연결하는 데이터 인프라가 없다면 데이터 공유와 활용을 위한 비용이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여 데이터 경제의 실현은 불가능해진다. 로마에게 가도 건설이 ‘필수사업'이었다면, 데이터 시대는 데이터 인프라가 ‘필수사업'이 되는 것이다. 

데이터 인프라는 정보통신 인프라와 성격이 다르다. 인터넷은 세상의 모든 컴퓨터를 연결하고 그 위에서 데이터를 흐르게 하지만 데이터를 직접 연결하거나 분석하는 데 도움을 주지 못한다.

데이터를 관리, 활용하는 것은 모두 사람이 해야 한다. 정보통신 강국인 한국이 데이터 관리와 가공을 노동집약적으로 할 수밖에 없듯이 데이터 인프라 없이는 정보통신 강국도 데이터 후진국에 머물 수 밖에 없다.

이런 이유로 최근 세계는 데이터 인프라에 높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 글로벌 기업들은 대부분 기업차원의 데이터 인프라 구축을 완료했고 이를 기반으로 데이터를 전략자원으로 활용하는데 열을 올리고 있다.

국가차원에서는 유럽연합의 움직임이 활발하다. 이미 2010년을 전후하여 데이터 인프라 개념을 도입한 유럽은 데이터 스페이스로 대표되는 ‘유럽 데이터 인프라'(European Data Infrastructure) 구축을 데이터 전략의 핵심으로 삼고 있다. 스마트시티, 스마트제조 등 분야별로 들어가면 데이터 인프라를 구축하려는 사업들은 이미 각종 투자의 핵심적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인프라 측면에서 보면 한국도 결코 뒤지지 않는 강국이다. 박정희 시대의 경제개발계획은 사회간접자본계획이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로 인프라 구축에 심혈을 기울였다. 경부고속도로 같은 하드 인프라 뿐 아니라 교육과 연구개발을 위한 소프트 인프라도 대대적으로 구축했다.

한국이 GDP 대비 R&D 비율에서 여전히 세계 최고수준을 보이는 것도 이 때 구축된 인프라의 영향이라 할 수 있다. 정보화 시대에 와서는 초고속정보통신망을 비롯해 인터넷 시대가 필요로 하는 새로운 인프라를 다른 나라 보다 먼저 발전시켜 정보화 강국으로 도약하기까지 했다.

이제 한국이 도전해야 할 시대적 과제는 국가차원의 데이터 인프라를 구축하는 것이다. 유럽연합이 우리 보다 먼저 뛰어들었지만 국가데이터인프라를 만드는 것은 결코 만만한 작업이 아니다. 데이터를 공유하고 분석하기 위한 기술 기반을 만드는 것도 쉽지 않지만 수많은 이해관계자들을 협력하게 하는 것은 기술이 뛰어난 데이터 선진국들도 엄두를 내기 어려운 지난한 과제이다. 

역설적이지만 그렇기 때문에 한국이 도전할 만한 일일 수 있다. 기술력으로 승패가 갈리는 영역에서는 승산이 높지 않다.

하지만 국가전략과 정책, 그리고 국민적 지원이 중요한 영역에서는 한국의 잠재력이 얼마든지 발휘될 수 있다. 작년에 시작된 마이데이터는 개인 금융정보에 한정된 것이지만 데이터 인프라의 발전 가능성을 보여줬다. 새로운 국가 리더십을 원동력으로 하여 국가데이터인프라 구축에 성공한다면 한국이 새로운 데이터 강국으로 올라서는 것도 어려운 일은 아니다.

황종성  지능정보사회진흥원 연구위원 
황종성  지능정보사회진흥원 연구위원 

황종성 지능정보사회진흥원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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