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이후 한국 산업 생태계의 디지털화가 가속화되고 있다. 이로 인해 온프라인과 오프라인 업체들간 경계, 업체들의 사업 영역의 파괴 현상이 빠르게 일어나고 있다. [사진: 셔터스톡]

코로나19 장기화 속에 국내 기업들이 디지털 체력 강화에 속도를 내면서 산업 생태계 전반에 걸쳐 변화의 바람, 이른바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전환)이 거세다. 2년 걸릴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이 두달 만에 일어났다는 사티아 나델라 마이로소프트 CEO의 지난해 발언은 코로나19 이후  기업들이 겪고 있는 숨가쁜 변화를 상징하는 말로 아직까지도 회자되고 있다.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 속에 산업 분야별 업계 판세도 요동치고 있다. 오프라인 업체들과 처음부터 온라인과 모바일에서 출발한 디지털 네이티브 기업들과의 전면전이 이미 시작됐고 놀던 물과 출신 성분이 다른 회사들이 같은 시장에서 붙는 장면들도 수시로 연출되고 있다. 온·오프라인 경계와 기업들이 주력하는 사업 영역의 파괴는 코로나19 이후 점점 뉴노멀이 돼가는 분위기다. 디지털투데이가 창간 14주년을 맞아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發 변화가 한창인 한국 산업 생태계 주요 현장을 돌아봤다. <편집자주>

[디지털투데이 황치규 기자] 코로나19로 디지털에 대한 기업과 개인들 의존도가 커지면서 4차산업혁명 만큼이나 두루뭉술하고 애매모호하게 들렸던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션이 단숨에 체감할 수 있고 실체를 갖춘 패러다임으로 부상했다.

유통, 금융, 제조, 엔터테인먼트 등 한국 경제를 떠받치는 주요 산업 현장에서 디지털화 바람이 거세다. 특히 거물급 오프라인 기업들이 디지털 역량 강화를 통한 체질 개선에 나서고 디지털 네이티브 기업들이 사업 다각화에 속도를 내면서 업체 간 경쟁 구도는 예전에는 보기 힘들었던 빅매치들이 여기저기에서 펼쳐지고 있는 상황이다.

산업 지형도 빠르게 재편...별들의 전쟁 구도 두드러져

유통 산업은 이미 경계와 영역의 파괴가 한창이다. 오프라인 업체들이 이커머스를 향해 총공세를 선언하면서 업계 판세가 확 달라졌다. 이베이코리아 인수전에 신세계나 롯데 같은 대형 유통사들이 뛰어들었고 각자 분야에서 따로 따로 놀던 신세계 이마트와 네이버는 이커머스를 무대로 자본 동맹을 맺었다.

이해진 네이버&nbsp;글로벌투자책임자(GIO, 왼쪽)와&nbsp;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 [사진: 연합뉴스]
최근 유통 시장은 업체간 합종 현횡도 거세다. 네이버와 신세계 이마트 간 자본 제휴도 대표적인 사례다. 이해진 네이버 글로벌투자책임자(GIO, 왼쪽)와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 [사진: 연합뉴스]

쿠팡 등 기존 이커머스 업체들 외에 네이버와 카카오로 대표되는 대형 인터넷 업체들의 커머스 시장 공세도 두드러진다.

이미 국내 이커머스 업계 판세는 포털 1위 네이버와 이커머스로 큰 쿠팡 간 일대일 구도가 갖는 중량감이 커진 상황이다. 이마트와 네이버 제휴도 이 구도에서 해석이 가능하다. 양사 제휴는 뉴욕 증시 상장으로 한창 기세가 올라 있는 이커머스 업체 쿠팡을 견제하기 위한 합종연횡으로서의 성격도 있어 보인다.

카카오의 경우 네이버 만큼 커머스 시장에서 지분을 확보한 것은 아니지만 든든한 실탄을 기반으로 향후 언제든지 이커머스 시장를 뒤흔들 무시무시한 후보 중 하나로 꼽히고 있다. 카카오는 최근 패션 전문 쇼핑 플랫폼인 지그재그도 인수했다.

광고로 먹고 살던 인터넷 업체들이 커머스로 치고 들어오는 것은 한국만의 현상이 아니다. 글로벌 메가 트렌드다. 세계 최대 SNS 플랫폼 페이스북도 이커머스가 차세대 사업 영역 중 하나라는 점을 분명히했다. 

마크 저커버그 페이스북 CEO는 "회사의 다음 챕터를 위해 가장 집중하는 영역은 개인 간 메시징, 가상현실, 커머스&결제"라고 말했다. [관련기사]"광고에서 커머스로" 인터넷 경제의 판이 바뀌고 있다

금융도 사실상 디지털 중심으로 판이 재편됐다. 그동안 아래 제도와 규제라는 보호 장치 아래 주변에서 비교적 쉽게 사업을 해왔다는 소리를 들었던 대형 시중 은행들은 최근 그 어느때보다 디지털, 디지털을 강하게 외치고 있다. 지금 당장 먹고 사는데 큰 문제가 없을지 몰라도 앞으로는 생각하면 걱정이라는  긴장감과 위기감이 곳곳에서 엿보인다.

금융권의 디지털 위기론은 덩치나 브랜드 파워, 사업 역량 측면에서 핀테크 스타트업들과는 급이 다른 네이버와 카카오가 디지털 금융 판의 전면에 부상하면서 점점 확산되는 양상이다. 금융도 네이티브 금융과 테크 출신 금융 업체들이 물러설 수 없는 승부를 벌이는, 과거에는 보기 힘들었던 싸움판이 만들어지고 있다.

이런 가운데 테크 기업들의 공세에 직면한 금융권도 금융 밖으로의 외도(?)를 주목하는 모습이다. 신한은행은 음식 주문중개 플랫폼까지 내놔 눈길을 끈다.

콘텐츠 산업도 업계 판세 변화가 거세다. 코로나19 이후 콘텐츠 시장의 주요 무대가 온라인으로 넘어오면서 경계와 영역의 파괴는 더욱 거세지는 양상이다. 네이버와 카카오 대표되는 빅테크 기업들은 디지털 콘텐츠 유통 플랫폼 맹주을 노리고 파상공세를 퍼붓기 시작했고 네이버가 BTS 소속인 빅히트 자회사에 지분을 투자하는 등 분야별 업체 간 합종현횡도 급물살을 타고 있다. 거물급 게임 업체인 엔씨소프트와 넥슨도 엔터테인먼트로의 영토 확장에 속도를 내면서 엔터테인먼트 시장 판세는 다양한 출신 성분의 거물급 회사들이 경쟁을 벌이는 구도로 빠르게 재편되고 있다.

제조 분야도 변화가 구체화되고 있다. 대중성이 떨어지다 보니 상대적으로 유통이나 금융에 비해 체감할 수 있는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 냄새는 덜 풍기는 듯 보이지만 데이터를 활용해 프로세스를 개선하려는 제조 업체들의 행보도 빨라지고 있다.

제조업계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은 단순히 효율성을 강화하는 수준을 넘어섰다.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위해 IT를 도입하는 제조 업체들도 늘고 있다. 자동차 부품 전문기업 만도는 아마존웹서비스(AWS) 클라우드 플랫폼을 기반으로 사물인터넷(IoT) 기반 모빌리티 서비스 플랫폼(MMSP)을 구축하고 서비스 기업으로의 체질 개선에 나섰다.

AWS에 따르면 만도는 다양한 기기들로부터 데이터를 수집, 분석해 MMSP 기반으로 새로운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MMSP를 활용해 수소자동차 운전자들에게 충전소 위치, 운영 시간, 대기 시간, 혼잡도, 가격 등 맞춤형으로 수소충전소 이용 관련 정보를 제공하는 앱인 ‘H2케어(Care)’를 출시했다. 최근에는 충전소에 대기중인 차량 대수를 자동으로 파악하기 위해 AWS 완전 관리형 서비스인 아마존 레코그니션(Amazon Rekognition)을 도입해, 딥러닝 기술로 이미지 및 영상을 분석함으로써 충전소에 대기 중인 차량 대수를 파악해 알려주는 환경도 구현했다.

소유의 종말 가속...구독과 접속의 시대 확산

최근 한국 산업 생태계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 과정에서 눈에 띄는 흐름 중 하나는 구독(서브스크립션) 모델이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는 것이다.

개인 대상 서비스부터 기업용 솔루션 분야에 이르기까지 구독 기반 비즈니스 모델이 빠르게 늘었다. 요즘 들어서는 '구독 경제'라는 말도 심심치 않게 들린다.

관련 업계에 따르면 구독 경제는 광고 이후를 대표하는 비즈니스 모델 중 하나로 꼽힌다. 새로운 수익 모델로서 잠재력이 큰 데다  잘만 하면 고객들과 장기적인 관계를 맺을 수 있다는 이유로 구독 모델에 대한 관련 업계의 관심은 점점 분위기다. 이를 보여주듯 금융과 유통, 콘텐츠, 엔터프라이즈 다양한 분야에서 구독 기반 비즈니스 모델들이 쏟아지고 있다.

네이버 플러스 멤버십 [사진:네이버]
네이버 플러스 멤버십 [사진:네이버]

구독 기반 경제는 거물급 회사들이 분위기를 주도하는 모습이다. 네이버와 카카오는 그동안 무료 서비스로 성장해왔지만 지난해를 기점으로 유료 구독 사업 확대에 본격적인 시동을 걸었다. 네이버는 지난해 플러스 멤버십 서비스를 선보인데 이어 올해는 미디어 콘텐츠 쪽으로도 구독 모델을 확대한다.

카카오도 카카오톡 채널을 통해 렌탈, 정기배송을 신청할 수 있는 상품구독 중개 서비스를 시작한데 이어 독자적인 월정액 방식 구독 서비스 ‘마이 구독’도 공개했다. ‘이모티콘 플러스’와 카카오톡 대화 및 연락처를 보관하는 ‘톡서랍 플러스’를 마이구독에 먼저 투입했다.

유통 시장에서도 구독이 갖는 중량감은 커졌다. 쿠팡은 유료 구독 서비스인 와우 멤버십 강화 일환으로 동영상 스트리밍 서비스 ‘쿠팡플레이(Coupang Play)’까지 내놨다. 대형 포털 및 커머스 회사들 외에 요즘은 구독을 주특기로 내건 스타트업들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기업용 솔루션 쪽도 소유의 종말 바람이 거세다. 기업들이 쓰는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 인프라 모두 구독 모델 중심으로 판이 재편되고 있다. 서비스형 소프트웨어(SaaS)와 퍼블릭 클라우드 서비스 확산은 이같은 변화를 상징하는 대표적인 사례다.

서브스크립션 모델이 확산되고 있다는 것도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 ㅇ 일어나는 눈에 띄는 변화다.
서브스크립션 모델이 확산되고 있다는 것도 최근 디지털 화 흐름에서 눈에 띄는 점 중 하나다. [사진: 셔터스톡]

퍼블릭 클라우드 서비스가 엔터프라이즈 시장까지 파고들면서 기업 대상으로 하드웨어 장비 판매에 주력해왔던 IT인프라 업체들도 빌려 쓰는 방식인 서비스형 인프라(software-as-a-Infra, IaaS) 쪽으로 무게 중심을 빠르게 옮기고 있다. 

델테크놀로지스, HPE 등 엔터프라이즈 컴퓨팅 시장에서 내로라 하는  IT인프라 장비 업체들이 이미 구독(서브스크립션) 기반 서비스 모델을 전진배치한데 이어 이번에는 세계 최대 네트워크 장비 업체 시스코시스템즈도 서비스 모델을 승부수로 들고 나왔다. 

한국 빅테크 기업들의 글로벌 시장 대공세

한국은 그동안 '자칭반 타칭반' IT강국으로 불리었지만 한쪽에선 반쪽짜리라는 지적도 적지 않았다. 반쪽짜리라는 시선은 글로벌 시장에서 하드웨어는 강했지만 소프트웨어는 약하고, 국내 핵심 인프라는 외국 기술로 돌리는 IT사용 강국일 뿐이라는 인식을 밑바탕에 깔고 있다.

하지만 최근에는 하드웨어 밖에 있는 국내 테크 기업들이 글로벌 시장에서 갖는 중량감도 커지고 있어 주목된다. 특히 글로벌 디지털 콘텐츠 시장을 겨냥한 네이버와 카카오의 행보가 심상치 않다.

양사는 웹툰과 웹소설은 물론 K팝 기반 한류 콘텐츠를 앞세워 글로벌 미국과 일본 시장 공략에 속도를 내고 있다. 인수합병(M&A)에도 적극 나섰다.

네이버는 글로벌 웹소설 플랫폼 왓패드를 인수하며 네이버웹툰과 함께 글로벌 시너지를 낸다는 전략이다.

BTS 소속사인 빅히트엔터테인먼트와도 협력해 글로벌 팬 커뮤니티 플랫폼을 만들 예정이다. 네이버는 SM엔터테인먼트, YG엔터테인먼트, JYP엔터테인먼트 등과 굵직한 엔터테인먼트 회사들에 지속적으로 투자해왔다.

카카오가 일본을 넘어 북미로 글로벌 콘텐츠 사업을 확대하고 있다. 카카오 자회사 카카오엔터테인먼트(이하 카카오엔터)는 북미에서 서비스하는 웹툰 플랫폼 ‘타파스미디어’ 경영권 인수도 추진 중이다. 엔씨소프트도 올초 유니버스를 내놓고 K팝 기반 글로벌 엔터테인먼트 플랫폼 시장에 출사표를 던졌다. 역시 엔터테인먼트를 차세대 성장 동력 중 하나로 주목하고 있는 넥슨도 최근 미국 완구 회사 해즈브로, 일본 엔터테인먼트 계열사를 보유한 지주사 반다이남코 홀딩스, 코나미홀딩스, 세가 사미 홀딩스 등에 8억7000만달러 규모를 투자했다.

콘텐츠 및 엔터테인먼트를 겨냥한 국내 빅테크 기업들의 행보는 원천 IP를 확보해 글로벌 플랫폼을 구축하는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적지 않은 성과가 이미 나오고 있는 데다 K팝 인기로 글로벌 시장에서 한국 콘텐츠에 대한 관심도 커진 만큼, 국내 빅테크 기업들이 추진하는 글로벌 콘텐츠 사업에 대한 기대감이 그 어느 때보다 높아진 분위기다.

내수형 사업으로 인식되고 있는 이커머스쪽도 요즘 글로벌이 화두다. 이커머스 서비스 플랫폼을 제공하는 카페24는 몇년전부터 해외서도 국내와 같은 플랫폼을 제공하는데 공을 들였다. 일본, 베트남 등에선 이미 전문몰 운영자들을 상대로 카페24 플랫폼을 오픈했다.

네이버도 올해는 커머스 플랫폼 글로벌화에 본격 가세한다. 소프트뱅크 산하 Z홀딩스(이하 ZHD)에 속한 라인, 야후재팬과 협력해 국내에서 빠르게 성장한 스마트스토어 서비스를 상반기 내 일본에 출시한다.

글로벌 시장에서도 주목받는 테크 스타트업들도 속속 등장하고 있다. 인앱 채팅, 음성 및 영상 통화를 지원하는 B2B 커뮤니케이션 플랫폼 업체 센드버드는 최근 10억달러가 넘은 기업 가치를 인정 받고 1억 달러(약 1200억원) 규모 시리즈 C 투자를 유치해 눈길을 끌었다. 화상 메신저 아자르 서비스 업체인 하이퍼커넥트는 미국 업체 매치그룹에 17억2500만달러 규모에 팔리기도 했다.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 속에 한국 사업 생태계에서 영역과 경계의 파괴는 앞으로도 당분간은 거세게 펼쳐질 것으로 전망된다.

이런 가운데 업체 간 역학 관계와 서열이 바뀌면서 새로운 산업 질서가 탄생할 것으로 보인다. 지금은 나름 큰 업체들 중 일부가 레이스에서 탈락하는 시나리오가 현실화될 가능성이 높다.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이 가속화 되면서 탄생할 한국 산업 생태계 새로운 질서의 디테일이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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