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야흐로 콘텐츠 전성시대다. 좋아하는 아이돌 그룹의 디지털 싱글을 들으며 운동을 하고, 온라인 포털에 올라온 인기 웹툰을 보며 출근을 하며, 콘텐츠 크리에이터의 튜토리얼 영상에 따라 식사를 준비하는 풍경은 이미 더 이상 낯선 모습이 아닐 것이다. 이와 같이, 우리는 일어나서 잠에 들기까지 음악·만화·게임·영상·지식 정보 등 다양한 콘텐츠를 소비하고 있으며, 이제 콘텐츠 산업은 단순한 스낵 컬처를 넘어 삶의 질을 높이고 국가의 경제 성장을 촉진하는 핵심 요소로서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하지만, 최근 5년간 꾸준한 성장을 기록한 콘텐츠 산업의 이면에는 그림자도 있다. 저작권자의 동의 없이 무단 복제된 불법 콘텐츠 유통 역시 기승을 부리고 있기 때문이다.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한국저작권보호원이 작년 5월 발간한 ‘2017 저작권 보호 연차보고서’에 따르면, 2016년 한 해 웹하드·P2P·토렌트 사이트 등에서 적발된 온라인 불법복제물은 223만 건 이상이었으며, 콘텐츠 불법 복제로 인해 발생한 피해액은 무려 2조 3,800억 원에 달하는 것으로 집계되었다.

이문열 이글루시큐리티 컨설턴트

역설적으로 디지털 기술의 발전은 불법 복제 콘텐츠 유통을 촉진시키는 요소로 작용하고 있다. 종이·비디오 등의 매체를 통해 콘텐츠를 복사한 까닭에 복제본의 질이 떨어졌고 또 복제용 매체를 구매해야 하는 비용적 부담이 있었던 과거와는 달리, 거의 모든 콘텐츠가 디지털화 된 지금은 PC만 있다면 누구나 비용을 들이지 않고 쉽게 복제 콘텐츠를 만드는 것이 가능해졌기 때문이다. SNS나 기타 온라인 플랫폼을 통해 이를 빠르게 확산시킬 수 있다는 점도 불법 콘텐츠 유통을 부추기는 요소 중 하나다.

다시 말해, 디지털 기술의 발전에 따라 원본에 거의 가까운 고품질의 불법 콘텐츠를 아주 쉽고 저렴하게 접하고 또 배포할 수 있게 된 만큼, 많은 사람들은 콘텐츠 창작자(저작권자)에게 콘텐츠 사용에 대한 대가를 지불하는 대신 불법 콘텐츠를 유통하며 수익을 얻거나, 불법 콘텐츠를 원본 콘텐츠에 비해 훨씬 낮은 비용으로 구매하고 있다. 불법 콘텐츠 유통과 구매 모두 콘텐츠 저작권자에게 막대한 피해를 입힐 수 있음은 물론이다.

이에, 콘텐츠 저작권자들은 무분별한 불법 복제 콘텐츠 유통과 구매 행위에 맞서 저작권을 안전하게 보호하고자, 다양한 콘텐츠 보호 기술과 솔루션을 적용하고 있다. ▶유료 방송에 가입해 수신료를 지급한 가입자만이 특정 채널 및 프로그램을 시청할 수 있도록 한 CAS(제한 수신 시스템), ▶다른 저장매체나 기기로 복제된 디지털 콘텐츠의 사용을 제한하는 DTCP(디지털 전송 콘텐츠 보호), ▶전자문서 생성부터 유통까지 전 과정을 관리하는 DRM(디지털 저작권 관리)이 대표적이다.

그러나, 이러한 노력에도 불법 복제 콘텐츠 유통으로 인해 피해를 입는 사례는 갈수록 증가하는 추세로, 법과 기술, 그리고 사회적 측면에서 보다 실효성 있는 대응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높아지고 있다. 가장 시급한 것은 콘텐츠 저작권자들의 권익을 보호할 수 있는 법적·제도적 장치 마련이다. 콘텐츠 생산과 유통, 소비를 위한 기술이 빠르게 발전을 거듭하는 것과 달리, 콘텐츠 무단 복제 행위를 처벌하고 재산권 분쟁을 해결할 수 있는 실효성 있는 저작권보호 정책 도입은 아직 미진한 상황이기 때문이다.

레진코믹스에 따르면, 해외에 서버를 두고 국내 주요 웹툰 콘텐츠를 불법 복제해 유통하는 해적사이트의 경우, 짧게는 한 달 길게는 6개월에 걸쳐 사이트 차단 심의가 이뤄지는 현행 제도의 한계로 인해 적극적인 대응이 어려운 것으로 나타났다. 이와 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작년 7월 국회에서 국내 법망을 피해 범죄를 저지르고 있는 해외 불법사이트들의 통신망을 신속하게 차단하는데 초점을 둔 ‘저작권법 일부개정법률안'이 발의되었지만, 해당 법안은 아직 국회에 계류 중인 상태다.

국가적 정책 지원과 더불어, 디지털 기술의 장점은 충분히 살리면서도 불법 콘텐츠 복제는 어렵게 만드는 기술적인 발전 역시 병행되어야 할 것이다. ▶한 대의 PC에서만 파일 실행이 가능하거나 열람 횟수가 정해져 있는 등 제한된 조건에서만 디지털 파일을 실행할 수 있게 하는 ‘슈퍼디스트리뷰션’, ▶인증된 사용자의 사용 내역과 과금 과정을 모두 저장하는 ‘클리어링’, ▶디지털 콘텐츠의 위·변조와 무결성을 검증할 수 있는 ‘블록체인’ 기술 등을 꼽을 수 있다.

마지막으로, 콘텐츠 저작권에 대한 사회적인 공감대가 형성되어야 한다. ‘2017 저작권 보호 연차보고서’에 따르면, 2016년 한해 국민의 42.4%가 불법 복제물을 이용한 것으로 나타났다. 많은 사람들이 타인의 콘텐츠 저작권을 침해할 시 저작권자에게 심각한 피해가 발생할 수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한 채, ‘한번인데’, ‘나만 하는 거 아닌데’라는 생각으로 타인의 콘텐츠를 가볍게 여기고 있는 것으로 보여진다. 소비자의 디지털 저작물 권리에 대한 인식 강화가 절실히 필요한 시점이다.

‘산업 생산의 시대가 가고, 문화 생산의 시대가 오고 있다’. 미래학자 제레미 리프킨은 앞으로는 특정 상품이 아닌 광범위한 문화 체험을 파는 산업이 각광받을 것이라며 콘텐츠의 중요성을 강조한 바 있다. 그러나, 콘텐츠 저작권이 존중되지 못하고 보호받지 못하는 환경에서는 뛰어난 콘텐츠가 만들어진다 할지라도 수익으로 연결되지 못해 결국 산업 기반 자체가 허물어지는 결과가 초래될 수 있다. 법, 기술, 사회적 측면을 아우르는 유기적인 대응책 마련을 통해, 콘텐츠의 경쟁력을 더욱 높일 수 있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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