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도 많도 탈도 많다. 최근 들어 가상화폐 시장을 두고 벌어지고 있는 수많은 이슈들은 관련 산업과 시장을 뜨겁게 달구고 있다. 그러나 막상 가상화폐 시장이 어떻게 발전해 갈 지, 그 근간을 이루는 블록체인 기술이 어떠한 혁신적 서비스들을 만들어 갈 지는 예상하기 쉽지 않다. 디지털투데이에서는 연중 기획으로 '블록체인과 가상화폐 완전정복' 시리즈를 통해 IT전문기자 입장에서 산업과 시장을 들여다 보고자 한다. <편집자 주>

[디지털투데이 김태림 기자] 블록체인 기술을 비즈니스 모델로 내세우는 기업들이 우후죽순 생겨나고 있다. 대형IT기업부터 중소기업까지 블록체인을 개발해 다양한 사업에 접목하고 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도 올 들어 전자투표, 축산물 이력관리 등 블록체인 기반 사업 6가지를 내놓았다.

하지만 블록체인 기술은 유통시장, 확장성 등 부분에서 해결해야 할 과제가 많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또 프라이빗 블록체인이 잘 활용될 수 있는 부분에 집중해 투자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중구난방식 투자는 예산 낭비기 때문이다.

기업들이 블록체인 원천 기술보다 비즈니스 모델에 집중하고 있는 점도 문제다. 전문가들은 블록체인 기술을 장기적인 관점으로 바라봐야 보고 원천기술에 집중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렇다면 블록체인의 난제는 무엇이고, 우리가 나가가야 할 방향에 대해 살펴볼 필요가 있다.

블록체인 (이미지=픽사베이)

“가상화폐 거래소 거래 기록 독점은 또 다른 중앙화”

블록체인은 쉽게 말해 중개자를 없애는 기술이다. 블록체인을 이용하면 은행, 중개앱 등 수수료를 떼어가는 중간 단계가 없다. 네이버, 구글 등 중간에서 정보를 독점하는 중개자도 없다. 장부를 만들기 위해 참여한 모든 거래자가 정보를 공유, 비교 검증해 위변조를 막기 때문이다. 하지만 블록체인의 기본 개념인 탈중앙화, 확장성 등 부분에서 개선점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왔다.

지난 14일 디지털투데이는 서울 안암동 고려대학교 로봇융합관에서 20년 넘게 정보보호 분야에 종사한 김승주 정보보호대학원 교수를 통해 블록체인 난제에 대해 들어봤다.

블록체인에 기반 한 비트코인을 처음 주장한 사토시 나카모토 논문에서는 장부를 위한 채굴만 기재됐었다. 발행시장은 있지만 유통시장에 대해 생각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하지만 코인을 주식시장처럼 사고팔자는 의견이 형성됐고, 거래소라는 중개업체를 둬 수수료를 떼어가는 것이 비즈니스 모델로 떠올라 주목받게 된 것이다.

문제는 거래소가 모든 거래 기록을 독점하는 데 있다. 거래소는 모든 가상화폐를 사고 파는 고객의 거래 기록을 저장한다. 이로 인해 돈의 흐름을 파악할 수 있어 하나의 권력기관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또 증권거래소와 다르게 내부의 투명성을 검증할 수 있는 수단이 없다.

예를 들어 마운트곡스 사건을 들 수 있다. 마운트곡스는 일본 가상화폐 거래소로, 2014년 4억5000만달러(한화 약 4808억2500만원) 규모의 해킹 사건이 발생했다. 당시 마운트곡스 경영진은 해킹으로 비트코인을 도난당했다고 밝혔지만 경찰당국 조사결과 횡령으로 밝혀졌다. 즉 해킹 사건이 발생했을 때 정말 해킹을 당한건지 내부 관계자가 돈을 가로챈 건지 검증할 수 없다.

지난 14일 디지털투데이는 서울 안암동 고려대학교 로봇융합관에서 김승주 정보보호대학원 교수를 통해 블록체인 난제에 대해 들어봤다.

학계에서는 해결책으로 거래소 분산화에 대한 의견이 나오고 있다. 예컨대 빗썸, 업비트, 코인원 등 거래소들이 블록체인 기반의 거래 시스템을 구축, 거래 기록을 공유하는 것이다. 거래소간 거래 기록이 공유되면 빗썸에서 거래하던 사람이 업비트에서 ‘나의 거래 내역’을 확인할 수 있게 된다.

다만 거래소를 분산화하면 거래 처리 속도가 느려져 현실에 적용하기 어렵다는 문제가 있다. 블록체인이 중앙 시스템보다 처리 속도가 느리기 때문이다. 투자자들은 단타매매를 하는데 블록체인 시스템 상에서는 거래 처리 속도가 이를 따라가지 못하는 것이다.

확장성 문제도 있다. 참여자가 많아질수록 합의를 이루기 어렵다. 또 블록체인 상에서 정보가 변동될 때마다 참여자 모두가 보유한 정보를 수정해야 한다. 하지만 현재의 블록체인 기술 수준은 실시간으로 다수의 합의를 도출하고 수정을 진행하기에 무리가 있다. 실시간 합의가 가능해진다면 인터넷투표를 할 수 있는 세상이 오는 것이다. 인터넷투표는 투표권자가 지정 거래소로 이동하지 않고, 집에서 투표하는 것을 의미한다.

블록체인 중구난방식 투자는 예산 낭비

대형 IT기업부터 중‧소기업까지 물류, 금융 서비스, 인증 등에 블록체인 기술을 적용하고, 자회사를 설립하며 차세대 기술 선점에 나서고 있다. 이들이 사용하는 블록체인은 대부분 프라이빗 블록체인이다. 프라이빗 블록체인은 퍼블릭 블록체인보다 기술 개발이 어렵지 않고, 장부 승인 권한이 한 기관에만 있기 때문에 거래 속도가 빠르다.

김 교수는 “최근 유행처럼 블록체인 기술을 내걸고 사업을 시작하는 기업이 늘어나고 있다”며 “프라이빗 블록체인 기술이 퍼블릭 블록체인보다 거래 처리 속도가 빠르지만 적재적소에 맞는 사업에 적용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에스토니아는 세계에서 블록체인을 정부 시스템에 가장 많이 도입한 국가다. 특히 의료 내역을 블록체인으로 기록해 환자들도 ‘내 의료기록’을 확인할 수 있다. 이렇게 되면 의료 분쟁이 발생할 경우 증거 제출이 용이해진다. 또 길거리에 사람이 쓰러져 응급실에 옮겨갔을 경우 해당 병원이 이 환자의 타 병원 진료 기록을 확인할 수 있어 적절한 대처가 가능해진다.

반면 블록체인 기술을 왜 적용하는지 의문이 드는 분야도 있다. 특히 물류 분야가 그렇다. 블록체인이 기록하는 것은 유통정보이기 때문에 위·변조가 불가능한 부분은 유통정보다. 중간에 실물이 뒤바뀔 위험이 있는 것이다.

최근 기업과 정부는 물류 분야에 블록체인 기술을 적용하고 사물인터넷(IoT) 센서 부착을 해결책으로 제시했다. 물류 컨테이너에 IoT 센서를 부착해 온도, 습도 등의 정보를 블록체인 기술을 이용해 기록하고, 이상 행동이 감지됐을 경우 파악해 실물이 뒤바뀌는 위험을 막겠다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중요해지는 기술은 IoT 센서가 된다. 정밀하고 비용도 효율적인 IoT 센서 개발이 관건인 것이다.

김 교수는 “문제를 해결하는 열쇠가 블록체인지 다른 기술인지 따져봐야 한다”며 “불필요한 분야에 블록체인을 접목해 예산을 낭비할 필요가 없다”고 지적했다.

블록체인 활용 및 보안 분야(가상화폐, 스마트계약, 핀테크, 전자금융, 결제시스템 등)에 초점이 맞춰져 있으며, 기반기술(합의 알고리즘, 해시함수, 확장성 등) 관련 연구는 상대적으로 적게 나타났다. (자료=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KISTEP))

블록체인 특허 출원 급증, 한국 3위…그러나 비즈니스 모델이 대부분

전 세계적으로 블록체인 기술 특허 출원이 급증하고 있다. 그 중 국내에서 출원한 블록체인 기술 특허 건수는 미국과 중국에 이어 3위를 기록했다. 인도 특허분석업체 그리드로직이 2007년부터 2016년까지 전 세계에서 출원된 패밀리 특허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2013년에 88건을 기록했던 전 세계 블록체인 기술 특허 출원이 2014년 191건으로 급증, 2016년에는 136건을 기록했다.

국가별로는 미국이 408건으로 1위를 기록, 중국 251건, 한국 120건 순으로 특허를 출원했다.

하지만 국내 블록체인 특허는 주로 비즈니스 모델 특허 형태다. 반면 해외에서는 인프라 및 플랫폼 관련 원천기술에 대한 특허 형태를 띤다. 박종대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 실장 등 전문가들은 한국이 원천기술에 힘써야 한다고 주장한다.

국내 불록체인 기술 R&D 현황도 원천기술에 대한 지원이 약하다.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KISTEP)에 따르면 2018년 1월 기준 진행된 블록체인 관련 국가연구개발사업 중 정부 R&D 규모는 총 143억원이다. 2015년 7억1000만원 규모의 R&D를 지원한 것을 시작으로 2017년 94억3000만원(2년 새 13배 증가) 규모의 R&D를 지원했다. 하지만 블록체인 활용 및 보안 분야(가상화폐, 스마트계약, 핀테크, 전자금융, 결제시스템 등)에 초점이 맞춰져 있으며, 기반기술(합의 알고리즘, 해시함수, 확장성 등) 관련 연구는 상대적으로 적게 나타났다.

김승주 교수는 블록체인 기술을 줄기세포에 빗대어 설명했다. 당장 효과를 내놓을 수 있는 기술이 아니라는 것이다. 하지만 퍼블릭 블록체인 기술로 투명성, 가용성 등을 확보할 수 있기 때문에 장기적으로 개발해 나가야 할 기술이라고 주장한다.

예컨대 예전에는 게임 기업이 망하면 내가 보유한 아이템도 사라졌지만, 블록체인 상에서는 영구 보존된다. 또 참여자 모두가 거래 기록을 열람할 수 있어 투명성이 확보된다. 분산화된 시스템으로 서버가 다운될 염려도 없다. 그는 “프라이빗 블록체인을 개발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며 “퍼블릭 블록체인을 개발하기 위해 원천기술에 집중하고, 엄격한 기술검증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마라톤을 해야지 100미터 달리기를 하면 안 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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