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투데이 정명섭 기자] 연초부터 보편요금제 도입에 대한 정치권과 시민사회의 압박이 거세다. 추혜선 정의당 의원과 시민단체 등은 정부 입법안보다 더 강력한 수준의 보편요금제 도입을 주장하고 있다. 이동통신 3사는 연간 영업이익의 절반 이상이 감소하고, 5G 설비 투자 비용이 적지 않아 보편요금제 도입에 난색을 표하고 있다.

추혜선 정의당 의원과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 한국소비자연맹, 참여연대 등 소비자‧시민단체는 3일 국회의사당 정론관에서 보편요금제 도입 촉구 기자회견을 열었다.

보편요금제는 월 통신요금 2만원에 음성 200분, 데이터 1GB를 제공하는 요금제로, 현재 이동통신 3사의 3만원대 요금제를 1만원에서 1만5000원 가량 내리는 것이 골자다.

주무부처인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지난해 8월 23일 보편요금제 도입을 담은 전기통신사업법 개정안을 입법예고했고, 그 해 10월 2일까지 의견수렴을 마쳤다. 그러나 이동통신 3사와 알뜰폰업계가 적극 반대하면서 규제개혁위원회 규제 심사를 목전에 두고 공을 가계통신비 정책협의회로 넘겼다.

추혜선 정의당 의원(사진 중앙)이 3일 국회 정론관에서 보편요금제 도입 촉구를 위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협의회는 지난해 12월 22일 보편요금제 논의를 처음 시작했고, 오는 12일 두 번째 회의를 개최할 예정이다.

아직 협의회에서 보편요금제 논의가 한창 진행되고 있음에도 정의당과 시민단체가 새해 초부터 기자회견을 연 이유는 보편요금제에 대한 합의가 이뤄지지 않을 것을 우려해서다. 협의회 첫 번째 논의 주제였던 단말기 완전자급제도 다수의 참여자가 반대하면서 사실상 도입이 무산되는 방향으로 무게가 기울었다. 보편요금제 또한 단말기 완전자급제와 같은 길을 걸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어, 협의회에 참여하고 있는 경실련과 한국소비자연맹, 참여연대 등은 선제 대응에 나선 것이다.

이들은 월 2만원에 음성 200분, 데이터 1GB를 제공하는 정부의 안은 국민의 통신권을 보장하기에 부족하다며 같은 가격에 음성과 문자 무제한, 데이터 2GB까지 제공량 확대롤 요구하고 있다. 보편요금제 도입을 위해 국회 설득 작업에도 착수한다는 방침이다.

추혜선 정의당 의원은 “정부 안이 국회로 넘어오면 내가 낸 법안과 어떤 것이 실질적으로 통신비 인하 효과가 있는지 따져보고 상임위에서 결정할 것”이라며 “통신비 인하는 민생을 위한 시급한 과제다. 자유한국당 등 야당 의원을 설득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이들은 보편요금제 도입을 반대하는 이동통신사도 강하게 압박하고 있다. 이동통신 서비스는 국민 대다수가 사용하는 필수 서비스로, 정보격차 해소를 위해 최소한의 사용권이 보장돼야 하므로 이동통신사가 이에 협조해야한다는 것이다.

또한 이동통신 3사의 고착화된 구조는 경쟁의 제한을 야기해 저가요금제 사용자와 고가요금제 사용자간 차별로 이어지고, 자발적인 가계통신비 인하보다 보편요금제 도입을 통한 정부 개입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보편요금제 도입 시 이통 3사 연간 영업이익 절반 이상 차지

보편요금제는 단순히 하나의 요금제를 신설하는 것이 아니다. 보편요금제를 중심으로 상위 요금제에 대한 개편도 진행될 수 있는 등 요금제 전반의 패러다임이 바뀔 수도 있는 중차대한 정책으로 꼽힌다. 이동통신사가 적극 반대하고 있는 이유다.

보편요금제 도입 시 이동통신 3사의 부담은 과기정통부 추산 연간 최대 2조2000억원이다. 한국투자증권 추산(2조1602억원)도 이와 같은 수준이다. 금융정보 분석업체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2017년 이동통신 3사의 예상 매출(에프앤가이드 추정)액과 영업이익은 각각 52조3024억원, 3조8000억원이다. 매출액 대비 보편요금제로 인한 손해액은 4.2%, 영업이익 대비 57.9%다. 보편요금제 도입으로 이동통신 3사는 영업이익의 절반 이상에 해당하는 비용을 부담해야 하는 셈이다.

또한 3사는 정부의 계획에 따라 2019년 상반기에 5G를 조기 상용화도 추진해야 하는 입장이다. 정부는 2019년 상반기 5G 상용화를 위해 주파수 경매도 당초 계획보다 반 년 앞당긴 올해 6월로 결정했다. 주파수 경매 비용을 포함한 5G 설비 투자 비용(CAPEX)은 LTE 대비 최소 25% 이상 들어갈 전망이다.

LTE 상용화 전후인 2011년과 2012년에 이동통신 3사의 연 CAPEX 규모는 각각 7조원, 8조원이었다. 박정호 SK텔레콤 사장이 지난해 10월 국회 과학기술정보통신부 국정감사에 증인으로 출석해 밝힌 예상 5G 설비 투자비는 10조원이다.

과거에는 도달거리가 상대적으로 긴 700MHz, 800MHz 대역이 이동통신 부문에서 황금주파수로 활용됐다. 5G 시대에는 더 빠른 전송속도를 구현할 수 있는 28GHz 등의 고주파수대역이 사용된다. 그러나 고주파대역은 직진성이 강해 전파가 멀리갈 수 없어 지금보다 더 많은 소형 기지국이 필요하다. LTE 등이 도입될 당시보다 더 많은 투자비가 필요한 이유다.

자발적 통신비 인하 나선 이통사...그러나

이동통신사들은 보편요금제를 막기 위해 데이터중심 요금제의 혜택을 강화하는 등 자발적 통신비 인하에 나서고 있다. SK텔레콤은 지난달 15일부터 12시간 단위 로밍 요금제를 출시했다. 이전에는 24시간 단위여서 출국 날짜에 따라 불필요하게 비용을 지불하는 경우가 있었으나 이를 개선한 것이다.

LG유플러스는 지난달 20일 8만원대 요금제의 혜택을 11만원대 요금제 수준만큼 올렸고, KT 또한 새해부터 8만원대, 10만원대 요금제에 미디어 서비스를 추가하고 세컨 디바이스 요금 혜택을 부여했다. 그러나 정부는 여전히 보편요금제 수준의 통신비 인하를 원하고 있다.

전성배 과기정통부 통신정책국장은 “이동통신사가 보편요금제 수준으로 가계통신비를 내리면 우리가 보편요금제를 도입할 이유가 없다”라고 말했다.

피규제기관인 이동통신사들은 미래 기술 투자와 규제 이슈 사이에서 공식적인 입장도 밝히지 못하고 있다.

이통사의 한 관계자는 “정부와 국회에서 보편요금제 도입을 강하게 요구하고 있어 어떤 말도 할 수 없는 입장”이라고 말했다.

이동통신 3사 연간 CAPEX 규모 (사진=SK증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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