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09년 영국 광고표준국(ASA)은 삼성전자 ‘LED TV’ 광고에 방영 금지 처분을 내렸다. LED TV에 사용된 발광다이오드(LED) 기술이 아주 일부분임에도 불구하고, 마치 TV 자체가 LED 디스플레이인 것처럼 오도한다는 이유에서다. 실제 소비자들 중에는 삼성전자 LED TV를 기존 LCD TV와는 전혀 다른 ‘종(種)’으로 알고 구매한 경우가 많다.

그러나 일반 LCD TV 광원으로 쓰이던 형광램프(CCFL)를 LED로 바꾼다고 해서 LCD TV가 LED TV로 바뀌는 것은 아니다. 이 때문에 삼성전자는 영국 내에서 LED TV라는 용어를 사용하지 못했다.

안석현 기자.

같은 논리라면 최근 삼성전자가 내놓은 ‘QLED TV’ 역시 비슷한 논란에 휘말릴 수 있다. 삼성전자 QLED TV가 기존 LCD TV와 다른 점은 TV 광원에 ‘양자점개선필름(QDEF)’ 한 장이 추가된 것 뿐이다. QDEF에 코팅된 적⋅녹색 양자점은 TV 색감을 개선해주는 역할이다. QDEF가 사용된 것은 삼성전자가 지난달까지 판매했던 ‘SUHD TV’도 동일하다. 이름만 SUHD에서 QLED로 바꿨다.

그러나 당초 디스플레이 업계가 구상한 QLED 디스플레이는 이와는 사뭇 다르다. 양자점(QD)을 단순히 색상 보조제 정도로 사용하는 게 아니라 QD 자체로 각 화소를 구성하는 게 핵심이다. 이를 위해서는 TV 광원이 아닌 화면 자체에 QD가 빼곡하게 배치되어야 한다.

이는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TV가 가지고 있는 수명 문제를 해결함은 물론, 기존 LCD TV의 명암비⋅잔상 문제를 획기적으로 개선할 수 있는 방식이다. 다만 이처럼 진정한 의미의 QLED TV 상용화는 아직 요원하다. 색의 3원색 중 하나인 청색 QD 개발이 진척을 보이지 않고 있는데다, QD를 각 화소에 안정적으로 배치하는 기술 개발도 난제다.

그럼에도 삼성전자가 SUHD TV라는 이름을 버리고 QLED TV라는 용어를 미리 갖다 쓴 이유는 무엇일까. 이는 삼성전자 TV 사업이 외통수에 걸려 있기 때문이다.

평면 TV 시장이 수년째 연간 2억대 규모에 갇혀 있는 상황에서, 고가 시장은 LG전자의 OLED TV가 사실상 석권했다. 지난해 2500달러 이상 고가 TV 시장에서 LG전자 점유율은 43.1%(IHS 집계)다. 삼성전자 점유율은 20.3%로 LG전자의 절반도 안 된다. 중저가 시장은 중화권 업체가 주도하는 시장이다.

그렇다고 LG전자를 따라 OLED TV를 출시하기도 어렵다. 삼성디스플레이가 TV용 OLED에 투자할 마음이 없기 때문이다. 지난해 삼성전자 영상디스플레이(VD) 사업부는 삼성디스플레이의 TV용 OLED 투자를 ‘독려’하기 위해 LG디스플레이 OLED TV 패널을 구매하는 방안까지 검토했을 정도다.

삼성전자는 어떻게든 LCD TV 기술로 OLED TV와 경쟁해야 하는 처지에 놓여 있는 셈이다. 삼성전자가 찾은 궁여지책은 ‘마케팅’인 것 같다.

삼성전자가 2009년 LED TV 시장에서 LG전자 보다 앞서 치고 나갈 수 있었던 비결은 삼성전기가 LG이노텍보다 TV용 LED를 먼저 양산했기 때문만은 아니다. LED TV라는 단순명료한 마케팅 용어를 먼저 선점하면서 소비자 뇌리를 잠식한 덕분이다.

삼성전자는 이번에도 QLED TV라는 마케팅 용어를 통해 외통수를 벗어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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