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투데이 정명섭 기자] 최근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임명한 새 연방통신위원회(FCC) 위원장 아지트 파이가 망 중립성 완화를 주장하고, SK텔레콤이 자사 고객에 포켓몬고 이용 데이터를 무료화 하는 '제로 레이팅' 서비스 선보이는 등 망 중립성 논란이 일면서 국내에서도 망 중립성 완화가 논의되고 있다. 다만 아직은 망 중립성 완화에 대한 정부와 정치권의 이견이 없고, 4차산업혁명 등 인터넷 혁신 기업 지원정책 상 망 중립성 완화 혹은 폐지는 시기상조라는 평가다.

지난 21일 방송통신위원회는 ICT 분야에서 일부 서비스를 제한하는 등의 차별 행위를 금지토록 하는 등 정부 차원에서도 기존의 망 중립성 정책 기조를 유지하는 듯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망 중립성은 인터넷 망 사업자가 인터넷 상의 데이터 트래픽을 내용‧유형‧기기 등에 상관 없이 동등하게 처리해야 한다는 원칙이다.

반면, 같은 날 SK텔레콤은 나이언틱과 제휴를 맺고 이날부터 모바일 증강현실(AR) 게임인 포켓몬고를 이용하는 자사 고객을 대상으로 6개월간 데이터 비용을 한시적으로 면제하는 이른바 제로 레이팅 서비스를 선보였다. 이는 특정 콘텐츠에 데이터 감면 등의 혜택을 주는 제로 레이팅 서비스이므로 망 중립성을 위배할 소지가 크다는 지적이다. 그러나 향후 이와 유사한 개념의 서비스가 얼마든지 출시될 수 있어 망 중립성 논란은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홍승진 SK텔레콤 마케팅전략팀장은 망 중립성과 관련해서 “양 사는 망 중립성 가이드라인에 배치되지 않는 수준에서 계약했다”라며 “단순 데이터 무료가 아니라 일부 대가를 지불하는 형태로 계약된 상태이기 때문에 망 중립성에 위배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미래부 관계자는 "SK텔레콤과 나이언틱의 협업이 타 통신사 기반 포켓몬고 이용자의 접속을 지연시키거나 차단하는 등의 행태가 없는 이상 망 중립성을 위배한 것으로 보기 어렵다"는 입장을 밝혔다. 

SK텔레콤이 나이언틱과 제휴를 맺어 모바일 증강현실(AR) 게임인 포켓몬고를 이용하는 자사 고객을 대상으로 데이터 비용을 한시적으로 면제하는 제로 레이팅 서비스를 선보였다. (사진=SK텔레콤)

미국 FCC 망 중립성 완화 움직임..."단기적으로 국내 정책 방향에 영향 없다" 

올해 초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망 중립성 반대론자인 아지트 파이를 FCC 위원장으로 임명하면서 망 중립성 완화에 대한 논란은 더 커졌다. 실제로 그는 지난 ‘모바일 월드 콩그레스(MWC) 2017’ 기조연설에서 과거 오바마 행정부의 망 중립성 정책을 비판하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 이에 미국 통신사들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통신정책이 바뀌고, 국내 정책 방향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란 전망도 제기되고 있다.

그러나 망 중립성 완화‧폐지 논의가 국내에서도 곧 진행될 것이란 전망에 대해 시기상조라고 입을 모은다. 현 정부와 정치권에서 망 중립성을 유지해야 한다는 입장에 이견이 없다는 것이다. 오히려 당장의 조기 대선을 앞두고 가계통신비 인하 등 이동통신사에 대한 규제가 오히려 추가되는 방향으로 통신정책이 흘러갈 가능성이 크다.

권오상 미디어미래연구소 방송통신정책센터장은 “미국의 공화당은 기업에게 최대한 자유를 보장해주자는 입장이 명확하다”며 “반면 국내 정치권의 보수‧진보 진영을 막론하고, 망 중립성을 바라보는 관점은 큰 차이가 없어 현 기조가 당분간은 유지될 것”이라고 말했다.

올해 초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망 중립성 반대론자인 아지트 파이(사진 우측)를 미국 연방통신위원회(FCC) 위원장으로 임명했다. (사진=위키미디어)

또한 망 중립성의 완화나 폐지가 다가오는 4차 산업혁명 시대와 맞지 않다는 주장도 나온다. 애플과 구글, 페이스북, 아마존 등 글로벌 시가총액 10위 내 ICT 사업자들도 인터넷 상에서 공정한 경쟁 환경을 제공하는 망 중립성 기반에서 성장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관할 정부부처인 미래창조과학부 또한 망 중립성 재논의에 대해 다소 수동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다.

미래부 관계자는 “망 중립성은 과거 가이드라인 정립을 통해 논란을 한 번 정리한 바 있다”며 “미국의 현재 이슈가 국내 통신정책에 미칠 영향은 단기적으로 제한적일 것으로 보인다. 다만 미국의 흐름이 세계적인 추세로 이어지면 이를 따라야 할지 여부는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어 "제로 레이팅의 망 중립성 위배 여부는 해외에서도 논란이 이어지고 있어 좀 더 지켜봐야 한다"고 덧붙였다.

SK텔레콤이 포켓몬고 제로 레이팅을 서비스를 시작한 날, 방통위는 전체회의에서 ‘전기통신사업자간 불합리하거나 차별적인 조건‧제한 부과의 부당한 행위 세부기준’ 제정안을 의결했다.

이번 제정안은 방통위가 올해 1월 31일 ‘전기통신사업법 시행령’이 위임한 내용을 고시한 것이다.

해당 조항은 일정한 전기통신서비스를 이용해 다른 서비스를 제공하려는 자에게 불합리하거나 차별적인 조건 또는 제한을 부당하게 부과하는 행위를 금지하고 있다. 제정안은 행정 예고와 규제 심사 등을 거쳐 오는 7월부터 시행된다.

이는 망 중립성 원칙을 완화하거나 폐지하는 것이 아닌 기존 기조를 그대로 유지하겠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국내에서는 2011년부터 망 중립성 및 인터넷 트래픽 관리에 관한 가이드라인으로만 통신사가 특정 콘텐츠 사업자의 트래픽 차별을 금지해왔다. 방통위의 이번 제정안이 향후 망 중립성 관련 법제화로 이어질 가능성도 점쳐지면서 망 중립성 재논의 논란은 당분간 일단락 될 것으로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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