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 희토류발 韓 반도체 공급망 위기..."정권마다 바뀐 자원정책이 근원"
희토류 등 70% 중국 수입...일본은 연 2000억 투자로 의존도 낮춰 국회미래연구원 "정제시설 투자·대체소재 개발 동시 추진해야"
[디지털투데이 석대건 기자] 중국의 희토류 수출통제로 한국 반도체 산업이 공급망 위기에 처한 가운데, 정권 교체마다 오락가락한 자원정책이 오히려 중국 의존도를 키웠다는 지적이 나왔다.
국회미래연구원이 최근 발표한 '핵심광물 자원안보 정책 평가와 미래 전략'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 반도체 산업의 핵심소재인 갈륨과 게르마늄의 중국 의존도는 70%를 넘는다. 희토류 역시 60% 이상을 중국에서 수입하고 있다. 갈륨의 경우 2020년 43%였던 중국 의존도가 2024년 98%까지 치솟았다.
자원 의존 문제는 반도체 공급망 전반에 걸쳐 있다. 갈륨과 게르마늄은 차세대 전력반도체와 AI칩 제조의 필수 소재다. 희토류 중 테르븀은 스마트폰 진동 모터와 고정밀 센서 소형화에 쓰이고, 스칸듐-알루미늄 합금은 마이크로칩의 열 응력을 줄이는 역할을 한다. 중국이 이들 물질의 수출을 막으면 한국 반도체 산업은 직·간접적인 타격을 받게 된다.
국회미래연구원은 이번 사태의 근본 원인을 정권 교체마다 달라지는 자원정책을 꼽았다. 2008년부터 2013년까지는 해외자원개발에 적극 나섰다가, 이후 정권에서는 자산 매각과 구조조정으로 방향을 틀었다. 그러다 공급망 위기가 닥치면 다시 확대 정책을 펴는 식이라는 것.
보고서는 "정권 교체 때마다 공기업 주도의 확장, 기능 축소, 자산 매각, 위기 재확대로 정책 진폭이 컸다"며 "공공과 민간의 역할 분담이 불명확해 업스트림 역량이 취약해졌다"고 분석했다. 해외자원개발이 통상 10~15년 이상의 시간이 필요한데도 5년 단위로 정책이 뒤바뀌니 성과를 낼 수 없었다는 지적이다.
실제로 한국광물자원공사의 투자 사례가 이를 보여준다. 멕시코 볼레오 구리광산과 마다가스카르 암바토비 니켈광산에 2조원 이상을 투자했지만, 정권이 바뀌자 '부실 투자'로 낙인찍혀 매각 대상이 됐다. 이런 과정이 반복되면서 민간 기업도 해외자원개발을 기피하게 됐다.
중국은 이미 4월 사마륨, 가돌리늄, 테르븀 등 7종 희토류에 대해 수출허가제를 도입했다. 중국이 세계 희토류 정제의 85~90%, 자석 생산의 92%를 장악한 상황에서 이는 사실상 수출 중단 선언이다. 반도체 산업에서 엔비디아 등 미국 기업에 수출 비중이 높은 한국 반도체 산업으로서는 이중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정부는 현재 6개월분의 희토류 비축량을 18개월분으로 늘리겠다고 밝혔다. 호주 등 대체 공급국과의 협력도 강화한다는 방침이다.
정제·제련 시설 미비도 숨겨진 문제로 거론됐다. 원광을 확보해도 이를 산업에 쓸 수 있는 형태로 가공하는 기술과 시설이 없으면 무용지물이다. 중국이 희토류 시장을 지배하는 것도 채굴보다는 정제 기술 때문이다.
또 연구원은 산업계와 정부가 따로 움직이는 현실도 문제로 지적했다. 보고서는 산업계는 갈륨·게르마늄 소재 국산화에 나서고 있지만, 정부가 제시한 반도체 미래소재 기술 로드맵에는 희토류 사용 저감이나 대체 기술이 빠져 있다.
◆국회미래연구원 "일본처럼 연 2000억 R&D 투자 필요"
다른 국가의 경우 수년 전부터 장기적인 대책을 실행했다. 일본은 2010년 중국의 희토류 수출 중단 사태 이후 공급망 다각화에 성공한 대표 사례다. 당시 중국 의존도가 90%를 넘었던 일본은 호주, 인도, 베트남 등으로 수입선을 다변화하고, 희토류 사용량을 줄이는 기술 개발에 집중 투자했다. 그 결과 10년 만에 중국 의존도를 60% 수준으로 낮췄다.
유럽연합도 2023년 제정한 핵심원자재법을 통해 2030년까지 특정국 의존도를 50% 이하로 낮추고, 역내 제련·정제 역량을 40%까지 확대하는 목표를 세웠다.
국회미래연구원은 "공급국 다각화와 국제공동연구, 제련·정제 시설 투자, 재활용 기술 고도화, 대체소재 개발이 동시에 추진돼야 한다"고 제언했다. 보고서는 특히 호주, 캐나다 등 자원 부국과의 장기 공급계약 체결과 함께 미국, 유럽, 일본 등과 공동 기술개발 프로젝트를 추진해 기술 격차를 줄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대체소재 개발에서는 희토류를 사용하지 않는 영구자석, 갈륨·게르마늄을 대체할 수 있는 반도체 소재 개발이 시급하다고 분석했다.
국회미래연구원은 "일본이 2010년 희토류 위기 이후 대체기술 개발에 연간 2000억원 이상을 투자한 사례를 참고해야 한다"며 "정부 주도의 대규모 R&D 투자와 함께 민간 기업의 참여를 유도하는 인센티브 정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