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상계엄·탄핵사태에...국가사이버안보기본법 제정 안갯속
[디지털투데이 강진규 기자] 국가정보원이 추진해 온 국가사이버안보기본법(가칭) 제정이 올해 아무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내년으로 넘어가게 됐다. 비상계엄 사태, 대통령 탄핵 등으로 내년 추진도 쉽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정부 관계자들에 따르면 국정원은 올해 초 법제처에 올해 국가사이버안보기본법과 국가안보기술연구원법(가칭)을 제정하겠다는 입법 계획을 제출했다.
하지만 두 법안의 운명은 극명하게 엇갈렸다. 국정원 산하에 국가안보기술연구원 설립 근거를 마련하기 위한 국가안보기술연구원법은 올해 절차가 착착 진행돼 11월 26일 국회에 제출됐다.
반면 올해 국회 제출을 목표로 했던 국가사이버안보기본법은 전혀 진행되지 못했다. 국정원은 지난 2022년 11월 국가사이버안보기본법 제정안을 입법예고한 바 있다. 이 법안은 대통령실 국가안보실 중심으로 국가사이버안보 체계를 정립하도록 하고 민간전문가가 참여하는 국가사이버안보위원회를 구성하며 각 부처의 사이버안보 관련 역할을 명확히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과거 국정원이 사이버안보 관련 법안을 추진했지만 유관 기관들의 반대, 야당, 시민단체 등의 우려로 수차례 좌절된 바 있다. 그런데 사이버위협이 계속 증대되면서 이번에는 제정 가능성이 높다는 관측이 있었다.
하지만 사이버안보 환경이 변했고 또 법안에 공세적 내용이 반영돼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면서 2022년, 2023년 법제정 추진이 중단됐다. 새로운 법안이 준비되면서 시일이 늦어진 것이다. 국정원은 올해에는 국가사이버안보기본법 제정을 본격적으로 추진하려고 했지만 국회에서 여야 대립이 심화됐다. 이에 국정원은 야당과 각계에 대한 설득을 우선하는 것으로 방침을 정했다.
지난 8월 기자간담회에서 윤오준 국정원 3차장은 국가사이버안보기본법 추진에 대해 “제정을 안 하거나 미루는 것이 아니다. 준비는 다 돼 있다”며 “다만 법안을 발의했을 때 진정성 있게 논의가 될 수 있을지 여부 등 외부 요소를 고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사이버안보법은 만들어야 할 법이다. 제대로 만들어야 하는 법이다”라며 “공감대가 아직 부족한 상황이다. 그래서 사회 각계를 대상으로 설득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하반기 여야 그리고 야당과 윤석열 대통령, 정부의 대립은 더욱 격화됐고 국가사이버안보기본법에 대한 논의는 제대로 이뤄지지 못했다. 관계자들 사이에서는 차라리 2023년이 논의할 기회였는데 이를 놓쳤다는 지적도 나왔다. 더구나 12월 3일 비상계엄 사태가 발생하고 이어 14일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국회를 통과하면서 이제는 국가사이버안보기본법에 대해 말도 꺼내기 어려운 상황이 돼 버렸다. 국정원은 비상계엄 사태 조사에서 선거관리위원회 해킹 내용을 발표했던 것에 대한 의혹을 받고 있다.
결국 국가사이버안보기본법 제정과 관련해 올해 아무런 성과 없이 내년으로 넘어가게 된 것이다. 문제는 내년 상황이 더 어둡다는 것이다.
내년 초 헌법재판소의 탄핵 결정전까지는 국가사이버안보기본법 추진이 사실상 불가능한 상황이다. 어떤 결과가 나와도 법 제정 추진이 쉽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탄핵이 확정될 경우 대통령 선거 정국으로 들어가게 되고 국가사이버안보기본법은 차기 정부에서 다시 논의돼야 할 것으로 보인다. 탄핵이 확정되지 않을 경우 야당의 극렬한 반발이 예상돼 역시 법 제정 논의가 어려울 것으로 예상된다.
한 보안업계 관계자는 “현재 상황에서는 국가사이버안보기본법 제정 논의가 사실상 불가능하다”며 “현실적으로 향후 새롭게 법 제정을 추진해야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