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교부, 디지털 이슈 직접 대응 나선다...왜?
인공지능·사이버보안 등 디지털 분야 정책연구 잇단 진행
[디지털투데이 강진규 기자] 외교부가 디지털 분야 국제 대응을 강화한다. 그동안 디지털 관련 국제 문제는 전문성을 고려해 과학기술정보통신부, 국가정보원 등이 주로 담당했는데 중요성이 확대되면서 외교부가 직접 나선 것으로 보인다.
2일 정부 관계자들에 따르면 지난해 하반기 외교부가 디지털 분야 관련 정책연구를 진행했다.
우선 외교부는 지난해 7월부터 12월까지 한국정치학회를 통해 ‘디지털 분야 주요국 경쟁과 우리의 외교전략 모색’ 연구를 했다. 이 연구는 미국, 중국, 유럽(EU) 등의 디지털 분야 주도권 경쟁이 심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한국의 디지털 분야 외교전략을 모색하기 위해 진행됐다. 외교부는 디지털 산업 규제와 무역 문제는 물론 이슈가 되고 있는 글로벌 플랫폼 규제, 망 이용대가 문제, 글로벌 디지털 공급망 등에 대해서도 분석했다.
또 외교부는 10월부터 12월까지 전북대학교 산학협력단을 통해 ‘유럽연합인공지능 법안연구’를 진행했다. EU는 지난 2021년 세계 최초로 AI 규제 법안을 발표했다. 외교부는 이 법안이 한국과 유럽의 외교, 통상에 영향을 주는 것은 물론 향후 국제규범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연구를 추진했다.
전북대 연구진은 유럽은 물론 미국, 일본, 중국 등의 AI 관련 법제를 분석하고 한국의 AI 관련 법률 현황도 확인했다. 연구진은 EU AI 법안이 국내에 미칠 영향과 대응 방안을 제시했다.
외교부는 10월부터 12월까지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을 통해 ‘유엔 사이버범죄협약 임시위원회 의장 질의목록 분석 및 한국 정부 대응방안 검토를 위한 기초연구’ 추진했다.
유엔은 2022년 정보통신기술의 범죄악용 대응에 관한 국제조약 초안을 위한 임시위원회를 통해 의제별 의장 질의목록을 토대로 논의를 진행하고 있다. 외교부는 국내 관련 법령, 기존 국제협약 등을 고려해 임시위원회 의제 및 쟁점별 한국 입장에 대한 점검과 준비를 위해 연구를 추진했다.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은 연구 결론에서 유엔의 새로운 협약 논의 뿐 아니라 한미 사이버안보 동맹 등 국제 협력을 통한 외교적 전략적 사이버 범죄대응 역량을 강화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외교부는 10월부터 12월까지 디지털 공공외교와 관련된 연구도 진행했다. 이 연구는 외교부가 디지털, 뉴미디어 기반 공공외교를 강화해 우호적인 온라인 정책 환경을 조성하고 신기술을 활용한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영향력 확대를 위해 이뤄졌다.
같은 기간 외교부는 ‘유엔신기술과 인권결의 후속조치’ 연구 역시 추진했다. 지난 2019년 7월 유엔 인권이사회는 제41차 회기에서 ‘신기술과 인권’에 관한 결의를 총의로 채택했다. 여기서 신기술은 인공지능(AI), 블록체인, 클라우드 컴퓨팅 등 새로운 디지털기술을 뜻한다. 외교부는 신기술과 인권 의제를 주도하기 위해 연구를 진행했다.
외교부가 지난해 하반기 진행한 정책연구들은 과기정통부가 추진한 연구로 보일 만큼 IT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외교부는 정책연구 뿐 아니라 최근 IT 관련 이슈 대응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지난해 12월 12일(현지시각) 외교부는 제6차 한·미 사이버정책협의회가 미국 워싱턴D.C.에서 개최했다.
한국에서는 조현우 외교부 국제안보대사가 수석대표로 참석했고 미국에서는 나다니엘 픽 국무부 사이버공간․디지털정책 담당 특임대사가 참석했다. 한국에서는 외교부, 국가안보실, 국방부, 국정원, 대검찰청, 경찰청, 한국인터넷진흥원 등 관계자들이 함께 했다.
12월 8일 외교부는 국가정보원, 과학기술정보통신부, 통일부, 고용노동부, 경찰청, 공정거래위원회 등과 북한 IT 인력을 고용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는 내용의 합동주의보를 발표했다. 또 12월 6일에는 외교부는 디지털 공공외교 강화를 위해 민간 사이버 외교사절단인 반크와 상호협력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
외교부는 그동안에도 디지털 분야 국제 문제를 다뤄왔다. 하지만 해당 분야 전문성을 고려해 과기정통부, 국정원 등의 국제 협력 부문의 역할이 컸다. 그런데 이제는 외교부가 디지털 이슈에 대해 연구하고 배우며 자체적인 역량을 강화하고 있는 것이다.
정부 관계자들은 국제 문제에서 디지털이 차지하는 위상이 커지면서 외교부가 적극적으로 나선 것으로 해석한다. 최근 미국과 중국의 갈등 핵심은 통신기술, 반도체, 디지털 공급망이다. 또 국제적으로 사이버보안에 대한 협력 논의도 강화되고 있다. 더 이상 디지털을 모르고서는 외교도 할 수 없는 시대가 됐다는 지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