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포통장 개설 재확산...석달새 6000건 적발
외국인 명의 대포통장 확산...대기업 사칭형 대포통장도 나타나
[디지털투데이 강진규 기자] 정부와 금융권의 대응으로 주춤하던 대포통장 개설이 다시 활개를 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범죄자들은 개인의 통장 개설 절차가 강화된 것을 우회하기 위해 외국인 통장을 대포통장으로 이용하고 있으며 학교, 종교법인은 물론 유명 기업을 사칭해 통장을 개설하고 있다. 변칙적인 대포통장 개설이 금융권 전반에 신뢰를 흔들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15일 금융감독원이 공개하는 채권소멸 사실공고에 따르면 사기에 이용돼 지급정지, 채권소멸된 계좌가 2020년 10월 1666건에서 2021년 10월 2758건으로 약 66% 급증했다.
금감원과 금융기관들은 사기이용계좌 신고를 받아 관련 계좌를 동결한 후 계좌정보를 공고하고 2개월 간 이의신청이 없을 경우 계좌의 금액을 피해자들에게 환급하고 있다.
보이스피싱 등 금융사기범들은 다른 사람 명의의 대포통장을 이용해 금품을 갈취하고 있다. 이를 막기 위해 금융당국과 금융회사들은 계좌개설 절차와 입·출금 절차를 강화했다. 처음 금융권은 개인들의 계좌개설 절차를 강화했는데 범죄자들은 법인 계좌를 개설해 대포통장으로 이용했다. 이에 법인 계좌 개설 절차도 강화됐다.
이같은 강력한 조치로 인해 대포통장이 줄어들 것으로 기대됐지만 매달 수천건의 대포통장이 적발되고 있다.
올해 9월 채권소멸된 계좌는 2071건, 10월에는 2758건, 11월 1~11일까지는 1235건으로 9월부터 11월 중순까지만 6064건의 대포통장이 적발됐다.
범죄자들은 단속 강화에 따라 틈새를 노리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중 하나가 외국인 통장을 대포통장으로 이용하는 것이다. 2020년 10월 중 채권소멸된 영어 이름 계좌는 117건이었다. 올해 10월에는 191건, 11월 중순까지는 81건이 확인됐다. 적발된 대포통장은 중국인, 동남아인은 물론 일본인, 아랍인 등의 명의로 개설된 것이었다.
그동안 외국인 근로자, 결혼이주여성 등이 은행 계좌를 많이 개설했다. 금융권에서는 이들에 대한 지원 방안을 마련하고 편의를 제공했다. 범죄자들은 금융권의 이같은 분위기에 따라 의심을 덜 받는 외국인 명의로 대포통장을 개설하고 이를 범죄에 이용한 것으로 추정된다.
또 범죄자들은 계좌개설 과정 그리고 사기 과정에서 신뢰를 주기 위해 유명 기업들과 법인들을 사칭하고 있다. 범죄자들은 삼성, 신세계 등 대기업 브랜드와 유사한 법인명으로 대포통장을 개설했다.
또 쿠콘, 비바리퍼블리카, 후오비 등 실제로 존재하는 기업들의 이름과 유사한 이름을 사용하기도 했다. 헤리티지 재단, 한양대학교, 서울대학교 등과 관련 있는 단체, 연구소로 위장해 대포통장을 만든 사례도 있었고 불교법인 등 종교단체를 내세운 경우도 있었다.
개인, 일반 법인들의 계좌 신규 개설이 까다로워지면서 이처럼 변칙적인 방식으로 대포통장을 만들어 범죄에 이용하고 있는 것이다.
금융권 관계자들은 이런 행위가 금융권 전반에 신뢰를 크게 훼손할 수 있다고 우려한다. 외국인 통장을 범죄에 활용하는 사례가 늘어날 경우 외국인 근로자, 결혼이주여성 등이 계좌개설에 어려움을 겪는 등 피해가 나타날 수 있다는 것이다. 또 대기업, IT기업, 대학, 재단 등을 사칭한 대포통장이 확산될 경우 더 큰 금융사기로 이어질 수 있다는 지적이다.
금융권 관계자는 “대포통장이 확산될수록 은행 등 금융회사들은 계좌 개설 시 확인 절차를 강화하게 될 것”이라며 “결국 불편과 피해는 일반 이용자들이 볼 수밖에 없다”고 우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