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조세소위원회 모습 [사진: 연합뉴스]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조세소위원회 모습 [사진: 연합뉴스]

[디지털투데이 고성현 기자] 반도체 시설투자에 대한 세액공제율을 높이는 조세특례제한법(조특법) 개정안이 다시 좌초 위기를 맞았디. 다수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이 법안 통과에 제동을 걸고 나서면서다. 윤석열 대통령의 지시로 개정안의 세액공제율이 늘어난 데 따른 정부 개입에 대한 반발 및 대기업 특혜 논란 등이 주된 반대 이유다.

국회 기획재정위원회는 지난 14일 전체회의와 조세소위원회를 열고 '반도체특별법(K-칩스법)'으로 불리는 조특법 개정안의 논의를 시작했으나 민주당 반대로 의결이 무산됐다. 여당인 국민의힘은 이달 본회의 통과를 위해 의결하겠다는 입장이지만, 야당인 민주당은 세수감소분 대안 등이 필요하다는 이유로 검토가 필요하다며 대립각을 세웠다.

조특법 개정안은 국가핵심전략산업 지원을 위한 국가첨단전략산업특별법의 일부로, 반도체 설비투자에 따른 법인세 감면 등을 주된 내용으로 담고 있다.

이 법안은 당초 지난해 12월 국회 본회의로 통과됐으나 대기업 세액공제율 상승률이 2%포인트에 그친 8%에 불과해 논란이 됐다. 경쟁국인 미국, 일본 등이 25%에 가까운 수준을 감면해주는 걸 고려하면 한참 미치지 못한 수치다. 이에 윤 대통령이 기획재정부에 추가 공제율 확대를 지시하면서 대기업·중견기업 15%, 중소기업 25%로 확대된 내용을 반영해 다시 국회에 제출됐다.

야당 측은 정부 측이 법안 개정안에 관여한 점을 문제 삼는 것으로 알려졌다. 낮은 세액공제율을 제시했던 기재부가 대통령 한 마디에 입장을 급선회한 데다, 낮아진 세수에 대한 마땅한 대안이 없다는 지적이다.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 대기업의 세수를 추가적으로 감면하면서 '대기업 특혜가 아니냐'란 지적도 나온다. 기획재정위원회 소속 장혜영 정의당 의원은 13일 기자회견에서 "8%일 때 삼성은 1조7000억원, SK하이닉스는 4000억원을 감면받는다"면서 "개정안이 통과되면 삼성은 3조2000억원, SK하이닉스는 8000억원으로 공제 금액이 상향된다. 이는 삼성·SK하이닉스 특혜 법인세 감면 법안"이라고 비판했다.

삼성전자 평택캠퍼스 전경 [사진: 삼성전자]
삼성전자 평택캠퍼스 전경 [사진: 삼성전자]

이달 처리를 기대했던 업계는 이같은 야당의 반대에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격화된 미중갈등 및 주요국의 반도체 공급망 전략에 따라 우리나라 핵심 산업이 위기 상황에 접어들고 있는데, 기업들을 지원해줄 법안이 수개월 째 지체되고 있어서다.

특히 '대기업 특혜'라는 지적에 대한 문제제기가 줄잇는다. 반도체 산업의 특수성을 이해하지 못한 발언이란 게 업계 내 다수 의견이다. 반도체 산업은 핵심 기술 보호와 안정적인 생산을 위해 칩 생산자인 대기업과 부품 공급자인 중견·중소기업의 협력이 장기적으로 이어진다. 중견·중소기업이 한번이라도 고객사(대기업)의 공급망에 속하게 되면 향후 설비투자에도 공급이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즉 대기업이 국내 설비투자 부담이 경감돼 그 액수를 늘릴수록, 협력사가 소재·부품·장비 등을 판매할 기회도 동반 확대되는 것이다. 우리나라 반도체 산업이 삼성·SK하이닉스를 제외하면 대다수 협력사로 이뤄져 있기 때문에, 세액공제를 통한 파급력이 적지도 않다.

최근 반도체 업계 시황 악화로 대기업의 자금력마저 흔들리는 점도 조특법 개정안 통과를 촉구하는 이유다.

삼성전자는 지난 14일 삼성디스플레이로부터 20조원을 차입한다고 공시했다. 삼성디스플레이는 삼성전자가 지분 85%를 보유한 자회사다. 이번 삼성전자의 차입은 국내 별도 법인의 현금성 자산 보유액이 점점 줄어들고 있어서로 풀이된다.

지난해 1분기 기준 삼성전자는 별도기준 9.1조원 가량의 현금성 자산과 12.8조원 규모 단기금융상품을 포함해 총합 21.9조원을 보유했다. 하지만 국내 투자 및 인건비 확대로 2분기 16.1조원(현금성 자산 3조원+단기금융상품 13.1조원), 3분기 9.2조원(현금성 자산 6.9조원+단기금융상품 2.3조원)으로 크게 쪼그라들었다. 그러다 지난 4분기 기준 별도로는 3.9조원(현금성 자산 3.9조원+단기금융상품 1.37억원)만이 남게 됐다.

삼성전자가 자회사로부터 차입금을 확보한 것은 상당히 이례적인 일이다. 그동안 본사 자체의 현금 창출력이 높았기 때문에, 이같은 사례가 거의 없었던 탓이다. 하지만 반도체 시장 불황과 인력 확보 경쟁이 치열한 가운데, 국내 설비투자 비용은 전년(총 49조원 중 별도기준 39조원)과 비슷한 수준으로 추진하고 있어 자금 확보를 추진한 것으로 풀이된다.

SK하이닉스는 지난해 4분기 1.7조원이라는 대규모 영업손실을 기록했다. 메모리반도체 수요 악화로 재고가 급상승하면서 2012년 3분기 이후 10년 만의 분기 적자를 기록했다. 올해 시황 역시 순탄치 않다는 전망이 나오면서 금융권에서는 연간 적자 가능성도 제기하고 있다. 이에 따라 SK하이닉스는 올해 설비투자액을 작년 대비 50% 이상 줄이겠다고 공언한 상황이다.

문제는 이뿐만이 아니다. 최근 속도가 나기 시작한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 건도 있다. SK하이닉스는 국내 반도체 산업 경쟁력 활성화를 위해 용인 반도체 산업단지에 약 120조원을 투자할 계획이다. 삼성도 평택 캠퍼스 등 국내 투자를 지속하고 있어, 법인세 등 국내 세액에 대한 부담이 지속될 전망이다.

이와 관련, 한국경제연구원은 15일 '2022년 세제개편안과 국회통과안의 비교 및 평가' 보고서를 통해 국회의 행보를 비판했다.

임동원 한경원 연구위원은 "국회 통과 마지막까지 논란이 됐던 법인세율 인하와 종합부동산세 중과 폐지는 정부안대로 통과되지 못했고, 반도체특별법의 투자세액공제 확대도 처리되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국회와 정부는 기업친화적인 세제환경을 조성해 기업과 국가의 경쟁력을 끌어올리고, 글로벌 스탠더드에 부합하지 않는 세제는 철폐해 기업이 적극적인 투자와 일자리 창출에 나설 수 있는 여건을 제공해야 할 것"이라며 "정부의 반도체 투자세액공제 확대안은 조속히 국회에서 처리돼야 한다"고 말했다.

저작권자 © 디지털투데이 (DigitalToday)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