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 평택캠퍼스 전경 [사진: 삼성전자]
삼성전자 평택캠퍼스 전경 [사진: 삼성전자]

[디지털투데이 고성현 기자] 낸드 플래시 시장에 승자독식 '치킨게임' 기운이 감돈다. 기업간 시장 점유율 격차가 크지않은 상황에서 주도권을 위한 양보없는 가격경쟁 양상을 예고한다.

메모리 반도체 시장은 글로벌 경기침체 영향으로 가격이 하락하고 있다. 주요 반도체 기업은 감산과 설비투자 축소를 예고하며 허리띠 졸라매기에 들어갔다. 반면 삼성전자는 기존 설비투자 집행에 나서면서 "인위적 감산운 없다"는 입장이다. 

이에 따라 업계는 삼성전자가 메모리 반도체 주도권을 공고히 하기 위한 '치킨게임'에서 나섰다고 분석한다. 메모리 기업 간 기술 격차가 줄어들고 있어서 압도적인 자금력과 공급 경쟁력을 바탕으로 시장 점유율 경쟁에 불이 붙었다고 본 것이다. 

삼성전자는 지난달 실시한 실적발표회(컨퍼런스콜)에서 '메모리의 인위적인 감산은 고려하지 않다'고 밝혔던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한진만 메모리사업부 부사장은 컨퍼런스콜에서 "이달 초 (메모리) 인위적 감산은 고려하지 않는다고 했는데 이 입장에는 변화가 없다"며 "단기적인 업황 이슈와 고객사 예상 대비 재고 조정을 크게 하고 있어서 수요가 약세다. 그러나 내년 데이터센터 증설 확대와 신규 CPU를 위한 DDR5 D램 채용이 증가할 수 있어 중장기적 관점에서 수요 회복을 대비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는 데이터센터와 같은 서버 중심 수요가 여전히 견조하고, DDR5 D램을 지원하는 신규 CPU 출시가 머지 않아 메모리 상승 사이클이 올 것이라는 의미로 읽힌다.

반면 일각에서는 삼성전자가 감산 및 설비투자 축소에 들어간 타 경쟁업체 대비 우위를 점하기 위한 출혈 경쟁 전략을 실시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현재 메모리반도체 가격은 하락세다. 수요 약세와 유통 및 고객사의 재고 확보로 공급이 넘치기 때문이다. 이 가운데 메모리 업체 생산량이 줄지 않으면 가격 하락세를 더욱 부추길 수도 있다. 메모리 감산 없이 생산에 나서면 업체들이 제품을 팔고도 이익이 남지 않아 손해를 보게 된다.

따라서 삼성전자는 최근 SK하이닉스, 마이크론 등이 감산에 나선 상황에서 홀로 메모리 가동률을 유지, 시장 점유율을 높일 것으로 보인다. 확보한 점유율이 쉽게 바뀌지 않는 점을 고려하면 기존 1위 입지를 더욱 공고히 할 수 있어서다.

실제로 메모리반도체 치킨게임 역사를 보면, 삼성전자는 2001년과 2008년, 2010년 가격 출혈 경쟁을 벌여 모두 승리한 경험이 있다. 이때 일본, 독일, 대만 등 경쟁사들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메모리 치킨 게임 재발에 힘이 실리는 배경에는 삼성전자가 보유한 자금력과 메모리반도체 글로벌 1위라는 타이틀이 있다.

삼성전자는 글로벌 메모리 시장에서 D램 40%, 낸드 30% 이상을 점유하고 있다. 제조 설비 가동률이 중요한 반도체 산업에서 규모의 경제를 실현할 수 있는 인프라를 이미 확보한 셈이다. 낸드 원가경쟁력에서도 타사 대비 우월하다는 평가다. 여기에 현금성 자산 125조원을 갖추고 있어서 수익성 이 악화돼도 재무적 손실이나 유동성에서 문제가 없다는 평가다. 

여기에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승진하면서 '뉴삼성' 비전 구축에 힘쓰고 있는 만큼, 메모리반도체 사업에 더 힘을 실을 가능성이 크다. 메모리반도체 사업으로 쌓아올린 기반에 시스템반도체 투자를 더하는 방.식으로 진행할 가능성이 높다는 이유에서다.

삼성전자가 개발한 8세대 V낸드 [사진: 삼성전자]
삼성전자가 개발한 8세대 V낸드 [사진: 삼성전자]

치킨게임은 낸드 플래시에서 벌어질 가능성이 크다. D램 시장은 이미 지난 치킨게임으로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마이크론 3사 체제로 재편됐다. 하지만 낸드 플래시 시장은 삼성전자가 33.3%, SK하이닉스가 19.9%, 일본 키옥시아 15.6%, 미국 웨스턴디지털 13.2%, 마이크론 12.6%로 기업 간 점유율 격차가 크지 않다.

낸드 시장에서 치킨게임이 시작된다면 중국 YMTC 등 점유율 하위업체가 피해를 입을 가능성이 높다. YMTC는 당초 애플이 낸드 공급처로 낙점하며 점유율 상승이 예고됐다. 그러나 미국의 강도 높은 대중국 견제에 따라 애플이 이를 철회한 바 있다. 중국 등 후발주자가 언제든지 기회가 생길 수 남아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치킨게임 가능성은 열려있는 셈이다.

SK하이닉스 역시 치킨게임 영향에서 자유롭지 못한 것이 현실이다. SK하이닉스는 인텔 낸드 사업부인 솔리다임 인수 로 지난해 2분기 2위로 올라섰지만, 계속되는 가격 하락세에 실적 부진을 면치 못하고 있다. 이에 따라 기존 투자 계획도 일부 지연되거나 축소한 상황이다.

다만 낸드 치킨게임은 예전처럼 치열한 양상이 아닐 것으로 보는 시선이 적지 않다. 삼성전자가 압도저인 시장 점유율 확보 기회를 잡은 것이 맞지만, 어디까지나 인위적 감산이 없을 뿐 증산이나 기존 대비 투자 확대를 예고한 것이 아니어서 지나친 확대 해석이 필요 없다는 의견이다.

실제로 한진만 부사장은 컨퍼런스콜 당시 "올해나 내년 설비투자는 내년 비트 생산에 직결되는 요소가 아니다. 따라서 현재 인프라 투자는 기존 계획대로 진행하려 하는 것"이라며 "중장기 수요 대응을 위해 클린룸 확보 등 인프라 투자가 예정돼 있어 설비투자 조정에 따른 전체 CAPEX 변동폭은 제한적이지 않나 생각한다"고 밝힌 바 있다.

저작권자 © 디지털투데이 (DigitalToday)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