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에서 2020년부터 시작된 가이아엑스 프로젝트는 많은 관심을 받고 있지만 그 실체를 정확히 이해하기 쉽지 않다. 오죽하면 가이아엑스 공식 홈페이지에는 ‘무엇이 가이아엑스이고, 무엇이 아닌가'라는 판별법이 제공되고 있다. 

가장 흔한 오해중 하나는 가이아엑스를 하나의 플랫폼으로 보는 것이다. 아마존, 구글과 같은 글로벌 플랫폼에 대항해서 유럽 기업과 산업계가 사용할 새로운 플랫폼을 만드는 것이라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그건 아니라고 한다. 또 다른 오해는 유럽 차원의 데이터 댐을 만드는 것으로 이해하는 것이다. 이 또한 ‘데이터 스페이스'(공유공간)를 만드는 것이 목적이지만 데이터를 한 곳에 모으는 것이 전부는 아니라고 한다. 여기에 더해 유럽만 참여하고 미국을 비롯해 다른 나라를 배제할 것 같지만 그것도 사실과 다르다.

 

EU는 플랫폼의 플랫폼을 지향하는 아이아엑스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다. 
EU는 플랫폼의 플랫폼을 지향하는 아이아엑스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다. 

 

가이아엑스에 대한 오해가 많은 것은 아직 한번도 해보지 않은 일을 하기 때문일 것이다. 유럽도 가이아엑스의 모습이 확정된 것은 아니고 계속 진화하는 것이라고 한 발을 뺀다. 아직 어떤 모습이 될지 정확히 모른다는 의미다.

하지만 그 본질은 ‘플랫폼들의 플랫폼'(platform of platforms)을 만드는 것이다. 여러 네트워크를 연결하는 것이 인터넷이라면, 가이아엑스는 네트워크 대신 여러 플랫폼들을 연결하는 일종의 ‘플랫폼넷’이라고 볼 수 있다. 

플랫폼은 서로 다른 하드웨어, 소프트웨어, 데이터를 함께 쓸 수 있게 한다. 문제는 플랫폼 내에서는 상호운영성이 확보되지만 플랫폼들 사이는 여전히 단절되어 있다는 점이다.

미국과 중국의 글로벌 플랫폼들도 이 문제를 해결하지는 못한다. 가이아엑스는 유럽이 이 문제를 해결해서 데이터시대의 주도권을 가지겠다는 의도를 깔고 있다.

플랫폼 간 연계를 추진할 때, 흔하게 혼동하는 개념이 ‘데이터 댐’이다. 데이터 댐, 혹은 더 일반적으로 ‘데이터 레이크’(data lake)는 기본적으로 하나의 거대한 데이터베이스를 만드는 일이다. 이런 데이터 댐으로는 데이터의 자유로운 흐름을 지원하지 못한다.

가이아엑스  프로젝트도 이 점을 분명히 인식하고 있다. 자신들의 목적이 데이터를 한 곳에 모으는 것이 아니라 데이터들이 원래 있던 곳에 있으면서 필요할 때마다 공유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라고 한다. 그리고 그런 공간을 ‘데이터 스페이스’라고 명명했다.

유럽에게 있어서 가이아엑스는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비록 유럽연합 집행부가 직접 추진하는 정부사업은 아니지만 유럽연합의 모든 회원국이 함께 참여한다. 우르줄라 라이엔 유럽연합 집행위원회 위원장은 2020년 국정연설에서 가이아엑스를 차세대 유럽의 근간이 될 것이라고 언급하기까지 했다. 물론 유럽 내에서도 가이아엑스에 대한 개념정의와 평가가 조금씩 다르다. 하지만 이것이 민간주도로 유럽의 데이터 인프라를 만드는 대표사업이라는데에는 이견이 없다.

가이아엑스를 통해 유럽이 원하는 것은 디지털 주권을 지키는 것이다. 여기서 디지털 주권은 미국과 중국이 주도하는 데이터 자본주의, 특히 그중에서도 소위 ‘데이터 채굴주의'(data extractivism)를 벗어나는데서 출발한다.

글로벌 기업들이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유럽의 데이터를 마음대로 가져다 쓰는 현상황을 타개하고 유럽의 데이터는 유럽의 시민을 위해 활용되도록 보장하는 것이 데이터 주권이다. 데이터는 비록 글로벌 기업의 클라우드에 담겨 있더라도 여기서 데이터를 꺼내 활용하는 방식을 스스로 정하자는 것이 가이아엑스의 기본사상이다.

하지만 유럽의 가이아엑스 전략은 많은 난관에 봉착해 있다. 미국과 중국의 플랫폼으로부터 자율성을 확보하려고 시작했지만 정작 미국과 중국 기업이 대거 참여하게 되어 오히려 이들의 영향이 강해지는 역효과가 나고 있다. 호랑이를 잡으러 호랑이 굴에 들어갔다가 오히려 호랑이에게 쫓길 신세가 된 셈이다. 정부는 지원만 하고 민간중심으로 추진한다는 접근법도 의도는 좋지만 이 사업의 추진력과 공정성을 약화시키는 장애요인이 되기도 한다.

가이아엑스가 성공하든 실패하든 한국에 많은 시사점을 줄 것이다. 한국이 1990년대말 IT강국으로 급부상할 수 있었던 것은 인터넷 시대를 맞이하여 인터넷 인프라를 선도적으로 구축했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데이터 시대의 강국이 되려면 데이터 인프라를 주도할 수 있어야 한다. 특히 ‘플랫폼들의 플랫폼'을 시도한 것은 유럽 보다 한국이 먼저였다. 2018년 시작된 부산 스마트시티 국가시범도시가 그 출발점이다. 한국도 많은 어려움에 둘러싸여 쉽게 돌파구를 찾지 못하고 있다. 가이아엑스는 한국이 데이터 시대 주도권을 확보하는데 좋은 참조 사례가 아닐 수 없다.

황종성  한국지능정보사회진흥원(NIA) 연구위원. 
황종성  한국지능정보사회진흥원(NIA)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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