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BM. [사진: 셔터스톡]
IBM. [사진: 셔터스톡]

[디지털투데이 황치규 기자]100년 넘는 역사를 가진 IBM은 글로벌 클라우드판에서 아마존웹서비스(AWS)나 마이크로소프트와 비고해 존재감이 부족해도 많이 부족한 처지다.

IBM이 클라우드에 손을 놓고 있다 이렇게 된 건 아니다. IBM도 지난 10여년 간 클라우드를 키워 보려고 나름 공을 들였다. 여러 업체들을 인수했고 연구개발(R&D)에도 많은 실탄을 쏟아부었다. 그럼에도 2019년 340억달러에 인수한 레드햇을 제외하면 클라우드판에서 IBM이 보여줄 수 있는 '거리'는 많지 않다는 평가다. 퍼블릭 클라우드 서비스 시장은 특히 그렇다.

이런 가운데 최근 IT전문 미디어 프로토콜이 전현직 임원과 직원들 10여명을 인터뷰한 내용을 기반으로 IBM 클라우드 전략을 둘러싼 시행착오 스토리를 보도해 눈길을 끈다. 현재 고객 요구사항을 중시하는 문화, 판단 착오, 내부 분열 등이 IBM이 클라우드 시장에서 주류가 되지 못한 요인으로 꼽혔다.

보도에 따르면  IBM이 클라우드에 대해 심각하게 생각한 계기는 2013년 AWS가 미국 중앙정보국(CIA)과 차세대 엔터프라이즈 인프라 구축 계약을 맺었을 때였다. 국가 안보기관이 AWS와 계약을 맺은 사건은 IBM이 클라우드 시대가 왔다는 넘어 뒤쳐지고 있다는 것을 인식하는 결과로 이어졌다.

IBM은 빠른 대응을 모색했고 2013년 6월 중소기업을 대상으로한 호스팅 서비스에 주력하던 소프트레이어를 인수했다. 소프트레이어를 앞세워  AWS와 일대일로 붙겠다는 의도였다.

당시 IBM에서 근무했던 여러 소식통들에 따르면 소프트레이어 인수는 시작부터 문제가 많았다. IBM은 소프트레이어에 상당한 재량권을 주고 독자적인 성장 전략을 추진할 수 있도록 했다.

큰틀에서 이게 잘못됐다고 볼 수는 없다. 예전이나 지금이나 인수한 회사를 독립적으로 운영하는 경우는 많다. 문제는 IBM과 소프트레이어가 다른 위치에서 클라우드를 바라봤다는 점이다. 소프트레이어는 중소 기업들에 초점이 맞춰 탄생한 플랫폼이다. 중소기업 시장은 기능이나 가용성 보다는 비용이 먼저인 곳이다. 소프트레이어 역시 비용을 중심에 놓고 클라우드 서비스를 제공했다.

IBM에 인수됐을 당시 소프트레이어는 13개 데이터센터를 운영하고 있었다. 이들 데이터센터는 상대적으로 단순한 디자인과 슈퍼마이크로 범용 서버들에 기반했다. 잘못된 접근이라 할 수는 없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메이저 클라우드 서비스 업체들은 엄격한 엔터프라이즈급 성능과 신뢰성 기준 아래 서버를 자체적으로 디자인하고 있다고 프로토콜은 전했다.

소프트레이어 인수 몇년 뒤 IBM 영업맨들은 기존 엔터프라이즈 소프트웨어 패키지와 함께 클라우드를 팔기 위해 적극 나섰다. 하지만 얼마 못가 소프트레이어는 클라우드를 쓰려는 대형 고객들이 필요로 했던 많은 서비스들을 제공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됐다. 소프트레이어 데이터센터들은 가용존 등 회복 탄력성이 부족했고 대규모 애플리케이션을 배치할 수 있을 만큼, 강력하지 않았다고 프로토콜은 전했다.

소프트레이어와 관련해 가장 큰 걸림돌 중 하나는 버추얼 프라이빗 클라우드 기술(virtual private cloud technology)을 지원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VPC는 클라우드에서 애플리케이션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사용자들이 통제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한다. AWS는 2009년 VPC를 내놨지만 IBM은 제대로된 VPC 기술을 2019년 이후에나 확보할 수 있었다고  프로토콜이 한 소식통을 인용해 전했다.

소프트레이어에 보완할 게 있다는 건 몰랐던 게 아니었다. 이와 관련해 IBM은 경영진은 문제를 바로 해결할 수 있다 봤는데, 회사 내부 문화 장벽에 막혀 시행착오 기간이 길어진 것으로 전해진다.

당시 IBM은 대형 고객들이 요구 사항이 회사 의사 결정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 특정 대형 고객만 필요로 하는 기술 개발에도 신경을 쓰다 보니 여러 고객들이 공통적으로 쓸 수 있는 클라우드 기술 개발은 우선순위에서 밀리는 상황이 벌어졌다. 이로 인해 핵심 인프라 서비스 개발이 몇개월, 심지어 몇년까지 연기됐고 지난해까지도 IBM 내부에서 이같은 일이 벌어졌다고 프로토콜은 전했다.

IBM은 분위기 반전을 위해 버라이즌 클라우드 사업부에서 여러 임원들을 영입했다. IBM 클라우드 총괄 매니저가 된 존 콘시다인은 소프트레이어를 대체할 새로운 클라우드 인프라 아키텍처 개발을 목표로 코드명 '제네시스'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제네시스도 문제를 모두 해결하기는 역부족이었다. 머지 않아 IBM 경영진들은 제네시스가 AWS나 마이크로소프트에 위협이 될 만큼 확장하기 쉽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됐다. 제네시스는 IBM이 필요로 했던 VPC 지원 역량도 부족했다.

이 과정에서 IBM 기술 전략은 두개로 쪼개지는 장면이 연출된다. 버라이즌 출신 임원들이 이끄는 그룹은 제네시스 프로젝트를 계속했고 IBM 연구소 팀들은 GC로 불리는 별도 인프라 아키텍처를 디자인하기 시작했다. GC 팀은 오리지널 소프트레이어 디자인을 사용해 VPC 기술을 구현하고 확장성 목표로 달성하는데 초점을 맞췄다.

결과만 놓고 보면 제네시스는 빛을 보지 못했다. 2017년 프로젝트가 중단됐다. 그러자 담당팀은 NG라는 새로운 프로젝트를 들고 나왔다. 이에 따라 두개 프로젝트가 공존하는 상황은 계속됐다.

거의 2년 동안 GC와 NG팀은 완전히 다른 클라우드 인프라 디자인을 개발했고 이는 영역 다툼, 자원 제약, 내부 혼선으로 이어졌다. 결국 2개 프로젝트는 2019년 일반에 공개됐다. IBM은 GC와 NG 기술 간 호환을 시도했지만 미묘한 디자인 차이로 인해 그러지 못했다. 공존은 오래가지도 않았다. IBM은 올초까지 2개 디자인 체제를 유지하다 GC 프로젝트를 중단했다고 프로토콜은 전하고 있다.

2019년 IBM이 VPC를 지원하는 2개 클라우드 인프라 디자인을 내놨을 때 시간은 IBM의 편이 아니었다. IBM이 오랫동안 의지해왔던 금융회사 등 대형 고객들은 클라우드에 대해 이해하기 시작했고 옵션을 찾고 있었다.

2017년부터 클라우드 도입을 고려한 기업들이 진행한 입찰에 시장 선도 업체인 AWS는 대부분 참여했고 다년 계약시 할인 혜택을 제공하면서 잠재 고객들을 끌어들이기 시작했다. IBM 입장에선 기술 전략을 재정비했다고 해서 판을 흔들기가 여러모로 쉽지 않은 상황이었다

투트랙으로 펼쳐지던 IBM 클라우드 전략을 교통정리 한 건 2019년 IBM 클라우드 사업 지휘봉은 아빈드 크리슈나다. 그는 지금은 IBM CEO가 됐다. 1970년대 이후 기술자 출신이 IBM 사령탑을 맡은 건 크리슈나 CEO가 처음이다. 크리슈나 CEO는 클라우드 사업을 이끌면서 투트랙 기술 전략에 종지부를 찍었고 IBM이 하나의 기술에 집중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마련했다. 

크리슈나 CEO 체제 출범과 함께 IBM은 퍼블릭 클라우드 보단 레드햇  포트폴리오를  적극 활용하는 하이브리드 클라우드 전략을 강조하고 있다. 기업들이 퍼블릭 클라우드와 자체 데이터센터에 걸쳐 효과적으로 인프라를 운영할 수 있도록 해주겠다는 것이 IBM식 하이브리드 클라우드 전략 골자다.  

IT업계에선 거의 유일하게 100년 넘게 생존해온 과정에서 IBM은 위기와 성장을 반복했다. 컴퓨팅 패러다임이 바뀔 때는 특히 그랬다. 80~90년대 PC 확산으로 클라이언트 서버(CS) 컴퓨팅이 대세가 되면서 메인프레임에 의존하던 IBM은 앞날을 예측하기 힘들 정도로 비틀거렸다.

이 과정에서 IBM은 과거와의 결별을 선택했다. 메인프레임 판매가 아니라 IT서비스를 전진배치하는 전략으로  영향력 있는 엔터프라이즈 테크 기업으로 복귀했다. 

이후 IBM은 20년 가까이 그런대로 잘나갔다. 하지만 클라우드로 컴퓨팅 산업의 판이 바뀌는 격변이 불어닥치면서 IT서비스를 중심으로 하는 IBM 전략은 먹혀들지 않은 상황이 또 연출됐다. IBM을 놓고 한물 갔다는 지적들도 쏟아졌다.

이 상황에서 IBM은 30년전과 마찬가지로 과거와의 결별 전략으로 명예 회복을 노리는 모습이다. 주력 사업인 IT서비스 사업 대부분을 떼어내 별도 회사로 분사시키고 클라우드와 인공지능(AI) 사업에 올인하겠다는 카드도 뽑아들었다.

실기한 것 아니냐는 평가가 많은 가운데, IBM은 30년전에 그랬던 것처럼 과감한 변신으로 환골탈태할 수 있을까? 이번에도 통할 수 있을까? 100년 기업 IBM의 클라우드 도전 행보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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