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위원회가 지난해 연말까지 고령층의 금융 앱 사용에 관란 연구를 진행했다. [사진: 셔터스톡]

[디지털투데이 강진규 기자] 금융위원회가 추진하고 있는 ‘고령층 친화적 디지털 금융환경 조성 가이드라인’의 윤곽이 드러났다. 앞으로 금융회사들은 고령층 고객들에 맞춰 금융서비스 앱 등을 전면 개편하거나 고령층을 위한 전용 앱을 개발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22일 금융권에 따르면 금융위원회는 청운대학교 산업협력단을 통해 지난해 12월 말까지 ‘고령층 친화적 디지털 금융환경 조성 가이드라인 마련을 위한 연구’를 진행했다.

지난해 8월 금융위는 ‘고령 친화 금융환경 조성방안’을 추진한다고 발표했다. 이는 한국이 고령화 사회에 진입하고 있는 가운데 고령 국민들이 금융서비스를 사용하는데 어려움이 있다는 지적 때문이었다. 특히 지난해 코로나19가 확산되면서 비대면, 디지털 금융서비스가 확산되면서 고령 고객들이 디지털 금융서비스를 이용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왔다.

당시 금융위는 대책의 일환으로 금융회사들이 고령자 전용 모바일 금융 앱을 개발해 공급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그 일환으로 지난해 12월 말까지 가이드라인 연구가 진행된 것이다.

디지털투데이가 입수한 ‘고령자 디지털 금융 가이드라인 조성 최종보고서’는 실제 고령층의 어려움, 해외 사례, 가이드라인에 포함될 원칙, 가이드라인 초안 등이 담겨있다.

연구진은 서울, 인천, 경기, 부산 지역 등에 거주하는 65세 이상의 고령자와 50세 이상의 예비고령자를 대상으로 설문 조사를 실시했는데 여전히 고령 고객들은 은행지점을 이용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고령자 응답자 중 75.1%는 은행지점을 이용한다고 답했고 인터넷뱅킹, 모바일뱅킹을 이용한다는 응답은 24.9%에 그쳤다. 예비고령자 역시 은행지점을 주로 이용한다는 응답이 50.9%로 절반이 넘었다. 특히 고령자, 예비고령자들 중 온라인 금융서비스 이용이 불편하고 응답한 비율은 68.5%에 달했다.

보고서는 60~80대 8명을 대상으로 은행 앱 사용성 평가를 해본 결과 8명 모두 조작 과정에서 오류를 경험했다고 설명했다. 오류는 계좌이체 버튼 입력, 이체금액 입력, 입금계좌 입력 등 기본적인 내용이었다. 8명이 계좌조회와 이체를 하는데 평균 2.6회의 실수가 발생했고 시간은 7분46초가 걸렸다. 참가자들은 메뉴 아이콘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이해하지 못하거나 앱의 작은 글씨를 알아보지 못했다고 한다. 또 배경과 글자색이 잘 구분되지 않아 메뉴를 이해하기 더 어려웠다는 지적도 있었다.

보고서는 연구진들이 지적 사항을 반영해 앱 아이콘, 메뉴 등을 개편한 결과 계좌조회와 이체를 하는데 3분31초가 소요됐으며 실수는 평균 1.12회로 줄었다고 설명했다.

고령자 디지털 금융 앱 가이드라인에 포함돼야 한다고 지적된 10가지 항목 [이미지: 고령자 디지털 금융 가이드라인 조성 연구 보고서]

보고서는 이런 연구 내용을 기반으로 고령 고객들을 위한 디지털 금융 앱 가이드라인에 포함돼야 할 10가지 원칙과 초안을 작성했다.

우선 보고서는 고령자들이 쉽게 의미를 인식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밝혔다. 고령층의 경우 영어와 금융용어에 대한 이해도가 낮을 수 있기 때문에 앱 메뉴에 쓰이는 용어부터 이를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 그림, 아이콘 등도 고령층이 이해할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보고서는 이를 위해 금융회사들이 앱을 비롯한 디지털 금융서비스를 직관적이고 일관성 있는 구조로 만들어야 한다고 밝혔다.

또 고령자가 원하는 설정을 자유롭게 할 수 있도록 해야 하며 고령자가 실수하지 않도록 배려해야 하고 한 번에 많은 정보가 제공되는 것도 지양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고령 고객이 서비스를 이용하는데 소요되는 시간과 단계를 최소화 시켜야 하고 사용하고 있는 서비스의 진행단계 등도 알려줘야 한다고 설명했다.

보고서가 제시한 원칙을 금융회사들이 적용하기 위해서는 기존 디지털 금융서비스를 전면 개편하거나 고령 고객의 서비스를 새로 개발해야할 것으로 보인다. 당초 금융권 일각에서는 앱 메뉴의 글씨를 크게 하거나 아이콘을 일부 수정하는 것으로 대응할 수 있다는 시각도 있었다.

하지만 금융위 연구 결과를 반영하기 위해서는 사용자인터페이스(UI)/사용자경험(UX)은 물론 디지털 금융서비스 과정을 재설계해야할 것으로 보인다. 메뉴에 사용하는 용어부터 배경과 메뉴 색상을 다시 만들고 금융서비스 이용과정 단계도 직관적이고 간소하게 만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금융회사들은 앱에 다양한 서비스를 넣고 있는 추세이기 때문에 기존 앱을 고령 고객에 맞도록 바꾸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에 따라 고령 고객을 위한 전용 앱을 개발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향후 발표되는 가이드라인은 은행 뿐 아니라 카드, 보험, 증권 등 전 금융권이 적용대상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보고서에 담긴 가이드라인 예시에는 금융서비스 제공자가 고령자 등이 디지털 기기를 이용한 금융서비스를 쉽게 이용할 수 있도록 앱 등을 설계하는 내용을 정한다고 돼 있다. 금융서비스 제공자는 디지털 기기를 이용해 금융서비스를 제공하는 모든 기업을 지칭한다.

가이드라인 예시는 “금융서비스 제공자는 무리한 부담이 되지 않는 한 고령자 등이 디지털기기를 별도의 보조기기를 사용하지 않고서도 일반인들과 동등한 수준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그 기능과 내용의 설계가 이뤄지도록 한다”고 명시돼 있다. 여기서 무리한 부담은 현재 가능한 기술 수준과 적절한 비용으로 실현시킬 수 있는 정도 이상의 노력을 요구하는 것이라고 정의돼 있다.

즉 디지털 금융서비스를 제공하는 모든 금융회사, 금융기관들은 가능하면 고령자들이 일반인들과 동등하게 활용할 수 있는 서비스를 제공하라는 것이다. 은행 뿐 아니라 카드사, 보험사, 증권사, 저축은행, 공공금융기관, 상호금융 등이 고령자용 앱을 새로 만들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금융위는 연구 평가결과서에서 최종보고서 내용을 “향후 고령층 소비자의 특성 및 환경을 고려한 디지털 금융 앱 개발 준수사항으로 활용할 것”이라고 밝혔다. 금융위는 올해 안에 이번 연구결과를 기반으로 가이드라인을 만들어 배포할 것으로 예상된다.

가이드라인은 말 그대로 가이드라인으로 법적인 강제성을 가지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금융권은 사실상 이 가이드라인을 준수해야할 것으로 보고 있다.

한국이 고령화를 넘어 초고령화 사회로 가고 있는 만큼 고령층을 위한 디지털 금융서비스 개편은 불가피하다는 지적이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가이드라인이라고 하지만 금융회사들은 금융당국이 발표하는 내용을 따를 수밖에 없다”며 “더구나 이 내용은 고령 고객들의 금융서비스 이용이라는 명분도 있다”고 설명했다.

다만 이 가이드라인이 전체 금융권에 적용되는 만큼 대형 금융회사와 비교해 중소형 금융회사들에게는 부담이 될 수 있다는 시각도 있다.

또 최근 금융회사들은 금융당국에 빅테크, 핀테크 기업을 동일규제하라고 주장하고 있다. 때문에 금융회사들이 고령층을 위한 이 가이드라인을 빅테크, 핀테크에도 적용할 것을 요구할 가능성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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