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년째 자신의 블로그를 운영하는 오 모씨는 오늘도 각종 IT기기를 리뷰하기 바쁘다. 출시를 앞둔 제품에서부터 막 출시된 신선한 제품까지 직접 써보고 그에 대한 느낌을 표현하는 그는 마니아급 얼리어댑터다. 블로그를 운영했던 초반에는 직접 제품을 구입해서 리뷰했기 때문에 비용도 만만치 않게 들었지만, 지금은 기업에서 먼저 제품을 써보게 해주고 리뷰를 요청하는 일이 많아져 부담이 한결 줄었다.
오 씨는 “기업에서 제품을 써보게 하며 리뷰를 요청한다고 해서 좋은 말만 써주는 건 아니지만, 기업들도 리뷰와 함께 리뷰에 달리는 댓글을 통해 다양한 소비자의 솔직한 이야기를 듣는 게 발전을 위해 더 좋다고 한다”고 전했다.

# 한 IT기기 관련 커뮤니티 운영자인 박 모씨는 다른 회원 몇 명과 함께 기업 내 제품 설계와 디자인을 담당하는 직원들과의 미팅에 참석한다. 제품을 만드는 기업에서 최근 소비자들이 어떤 기능이나 디자인을 갖춘 제품을 원하는지 듣기를 원했기 때문. 박 씨는 커뮤니티 회원들을 통해 최근 소비자들의 성향을 파악, 기업에 전달한다.
박 씨는 “기업들이 커뮤니티 등 소비자 의견을 직접 들을 수 있는 곳에 주목하고 그들의 의견을 적극 반영하려 하고 있는 것을 느낄 수 있다”고 말했다.

한 업체 관계자는 “커뮤니티를 수시로 모니터링하는 것은 물론, 커뮤니티 관계자들과의 주기적인 미팅을 통해 그들의 의견을 전해 듣고 제품 개발에 반영한다”며 변화된 기업 움직임에 대해 설명했다.

기업이 인터넷을 통해 소비자와 직접 소통하는 방식이 주목받고 있다. 이같은 기업의 소통 방식 변화는 블로그, 커뮤니티 등을 통해 소비자들 목소리의 힘이 커지고 있기 때문.

과거부터 입소문은 제품의 성패를 가를 정도로 중요했다. 사람들은 멀리 있는 이야기보다 자신의 주위에 있는 사람들의 말을 더 믿는 경향이 있다. 또 한 사람의 말보다는 두 사람의 말이, 두 사람보다는 열 사람의 말이 더 믿을 만하다고 생각한다.

최근에는 소비자들이 인터넷을 통해 문제점을 지적한 후 기업의 대응 조치가 만족스럽지 않을 경우 재차 인터넷상에서 여론화를 시도하는 경향이 뚜렷하다.

이같은 상황에서 기업은 짧은 시간에 수백, 수천 명에게 삽시간에 퍼지는 인터넷의 입소문을 가만히 내버려 둘 수 만은 없다.

실제로 소비자들의 구매패턴도 변화했다. 특히 인터넷이 생활의 일부가 된 젊은 소비자들은 곧바로 매장에 가서 제품을 구입하지 않는다. 먼저 자신이 사고자 하는 제품에 대한 최저 가격에서부터 비슷한 제품과의 성능 비교까지 인터넷상의 블로그나 커뮤니티를 통해 일일이 확인한다. 그 이후에 온라인으로 직접 구매하거나, 오프라인 매장을 찾아 구매한다.

일본 니케이 리서치가 16~69세 사이의 일본 남녀 5079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블로그를 아는 76.2%의 조사 대상자 중 남성 32.4%, 여성 47.1%가 블로그로 인해 특정 상품의 구매 행동에 영향을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 상품을 써봤더니 좋았다는 긍정적인 글 보다 ‘그다지 좋지 않았다는 블로그 글을 접했을 때, 상품 구매 행동에 일정 부분 영향이 있었다는 게 조사결과 나타났다.

한국인터넷진흥원이 발표한 ‘2007년 상반기 정보화 실태 조사’에서도, 인터넷 구매 이용자의 45%가 제품구매 결정 시 다른 사람들의 평가와 사용 후기에 영향을 받는다고 응답했다.

이같은 구매 패턴 변화는 기업이 인터넷 상의 블로그나 커뮤니티 등을 눈여겨보지 않을 수 없게 하고 있다. 특히 브랜드나 제품에 대한 부정적인 이야기는 기업에 치명타를 줄 수 있다.

국내 한 전문업체의 PMP에서 전자파가 초과방출되는 문제도 PMP인사이드라는 인터넷 커뮤니티를 통해 문제가 제기돼 전량 리콜까지 갔으며, 한 MID 업체가 출시 제품의 마감상태 불량을 지적하는 글이 블로그와 커뮤니티에 잇달아 올라오자 예약 판매했던 500대를 전량 리콜한 것은 대표적 사례로 꼽힌다.

소비자가 온라인 네트워크화 됨으로 인해 상황이 과거와는 비교할 수 없게 달라지고 있는 것이다. 특히 여러 사람에게 파급력이 큰 파워블로거나 거대 커뮤니티는 이미 기업에게 큰 존재가 됐다.

하지만 이들이 기업을 위협하는 부정적 요소로만 작용하는 것은 아니다. 이들을 통해 ‘모여진’ 소비자의 의견을 직접 듣고 기업도 제품 개발과 개선에 반영한다. 또한 이미 출시된 제품의 문제점을 빠른 시일 내에 알아채고 대응해 갈 수 있는 것.

실제로 많은 기업들이 인터넷을 상시적으로 모니터링해 제품과 관련된 소비자의 불만을 조기에 발견, 대응하려 노력한다. 제품과 관련한 긍정적인 ‘소문’을 인터넷에 확산시키기 위해 사용후기, 제품 리뷰 등에 호의적인 제품평이 실릴 수 있도록 노력하며, 부정적인 사안이 발생할 경우, 이에 대한 진정성을 담은 글이나 동영상으로 신속히 입장을 표명하는 사례도 늘고 있다.

제품 결함을 숨기기에 급급할 경우 배로 비난을 받을 수 있지만, 재빨리 인정하고 사과와 그에 따른 보상책을 내놓는다면 당장은 손해가 나더라도 브랜드 이미지가 높아지는 좋은 효과를 볼 수도 있기 때문.
실제로 UMID는 인터넷 상에 제품에 관한 비난 여론이 일기 시작하자 재빨리 리콜 공지를 올림으로써 비난을 무마시킴은 물론, 중소업체로서 힘든 결정을 한 것에 대해 좋게 생각한다는 칭찬을 받았다. 전화위복이 된 셈이다.

소비자들이 자발적으로 개설한 커뮤니티를 지원하거나 자사 제품 관련 블로그와 커뮤니케이션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기업이 직접 블로그나 커뮤니티를 직접 운영하며 소비자와의 커뮤니케이션을 주도하는 경우도 있다.

삼성경제연구소에 따르면 작년 11월 기준으로 국내에는 기업 및 제품 브랜드를 포함, 총 128개의 온라인 브랜드 커뮤니티가 활발히 운영되고 있다.

LG전자는 지난 3월 ‘더블로그’란 기업블로그를 오픈, 활발한 활동을 해나가고 있다.

더블로그는 ‘디자인’을 주제로한 고객 대화 플랫폼으로, 특히 국내 30대 기업 최초로 댓글을 오픈해 주목받았다. 이를 통해 국내 기업 블로그 중 최다 댓글 및 트랙백을 기록 중이다.

해외서는 미국 GM사의 기업 블로그인 ‘패스트레인’ 운영에 따른 비용-수익 분석 결과, 연간 28만 달러의 비용을 투입해 39만 달러의 가치를 창출했다는 분석결과가 나온 바 있다.

LG전자에서 기업블로그를 운영하는 정희연 차장은 “블로그나 커뮤니티 등 인터넷 상에서 영향력 있는 곳이 늘어나면서 이들과의 대화가 필요했다”며 “그들이 얘기하는 것이 맞는 것도 있고 오해도 있다. 오해는 풀어주고 잘못한 건 시인하는 등의 적극적인 소비자 대처가 기업에게 필요한 시대가 왔다”고 말했다.
복득규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은 “소비자들이 원하지 않거나 신통치 않은 제품을 내놓아 봐야 팔리지 않고 오히려 경쟁기업에 기회를 주는 꼴이 된다. 따라서 제품을 내기 전에 소비자들 의견을 듣고 제품을 개발한 후 실제 제품을 출시한다”며 최근 기업들의 변화에 대해 설명했다.

그는 이어 “이제 어느 기업도 소비자 반응을 고려하지 않고 제품을 개발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 됐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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