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는 불과 10년전만해도 반도체외엔 마땅히 내세울만한 IT상품이 없었다. 특히 강력한 브랜드와 글로벌 유통망이 요구되는 컨슈머 분야는 명함조차 내밀지 못했다.

이 때 혜성처럼 등장한 것이 삼성 휴대폰 ‘애니콜’이다.

애니콜은 당시 이건희 회장과 이기태 사장이 중심이 돼 ‘월드베스트 월드퍼스트(세계 최고 세계 최초)’ 전략을 전면에 내세우고 200달러 이상의 고가 휴대폰 시장을 집중 공략해 명품 브랜드 이미지를 만들어냈다.

지금이야 200달러 이상의 고가 휴대폰이 즐비하지만 당시에는 고가 휴대폰 시장은 존재조차 하지 않았다. 세계 최강 노키아와 전통 강호 모토로라가 시장을 양분하고 있는 상황에서 삼성은 초고가의 틈새 시장을 집요하게 파고 들었다.

노키아 등 세계적인 브랜드들이 중·저가 시장을 대상으로 영향력을 넓혀가는 동안 삼성전자는 콤팩트한 디자인과 한발 앞선 기술력으로 고가 시장에 집중, 명품의 이미지를 쌓았다.

삼성은 우리나라에서 모토로라를 넘어선 경험을 바탕으로 글로벌 무대에 데뷔, 세계 최강의 IT 브랜드 애니콜을 만들어냈다. 애니콜은 인간에 가장 친밀한 IT 기기 시장의 명품으로 자리잡으면서 삼성은 물론 우리나라 브랜드까지 끌어올렸다는 평가다.

최고가 아니면 팔지 말라
지난 1995년 삼성 휴대폰 공장에선 15만대의 휴대폰이 한꺼번에 소각됐다. 불량이 난 휴대폰 전량을 불태워버린 것이다. 그 유명한 삼성의 ‘휴대폰 화형식’ 사건이다. 모토로라와 피 말리는 경쟁을 하는 와중에 벌어진 일이다.

“세계 최고 기업인 모토로라와 경쟁하면서 불량품을 시장에 내놓는 것은 자살 행위와도 같습니다. 삼성 휴대폰은 이후 품질력에 관한 한 최고 수준을 갖게 됩니다. 위기가 곧 기회였던 셈이죠.” 이기태 삼성전자 전 부회장의 말이다.

당시 휴대폰 공장의 책임자였던 이 전 부회장은 90년대 후반 휴대폰 사업의 최고경영자(CEO)에 오르자마자 ‘월드베스트 월드퍼스트’를 경영 모토로 내세운다. 삼성은 이후 매년 100종이 넘는 새로운 개념의 휴대폰을 출시하며 경쟁업체들을 압도한다. 당시 노키아와 모토로라는 1년에 10여종을 출시했었다.

하지만 삼성의 월드베스트 월드퍼스트 전략이 시장에서 인정받기까지는 꽤 시간이 걸렸다. 90년대 말 유럽형(GSM) 휴대폰을 들고 유럽 시장에 처음 진출했을 때 유럽의 사업자들로부터 철저히 무시당했다. 노키아ㆍ에릭슨ㆍ지멘스 등 쟁쟁한 GSM 휴대폰 업체들이 시장을 완벽하게 장악하고 있는 데다, 통신후발국에서 이제 겨우 미국식 코드분할다중접속(CDMA) 단말기를 만들기 시작한 삼성전자를 주목하는 곳은 아무데도 없었다.

삼성전자 휴대폰사업부의 한 임원은 “지금이야 유럽시장에서 삼성 휴대폰 브랜드가 강력하지만 불과 10년전만해도 삼성이라는 이름조차 모르는 사업자들이 태반이었다”며 “유럽의 사업자와 약속하고 찾아가도 담당 부서장은 커녕 실무자조차 만나주질 않아 속을 태웠다”고 회상했다.

당시 이기태 사장은 답답한 마음에 해외 바이어들을 만나면 면전에서 애니콜을 바닥에 집어던지고 발로 밟는 등 극적인 방식으로 삼성 휴대폰의 견고함과 우수성을 알리기도 했을 정도로 글로벌 시장의 벽은 높았다.

삼성은 2000년대 들어 세계 3위 휴대폰업체로 도약하면서 전세계 시장에 휴대폰을 공급한다. 세계 최고의 제품을 만든다는 자부심은 결국 콧대 높던 유럽과 미국 휴대폰 메이커들을 밀어내고 세계 최고의 브랜드로 자리잡는다.

뉴스위크는 2004년 이례적으로 삼성 휴대폰을 소개하며 “삼성 휴대폰의 성공요인은 가장 먼저 새로운 기능을 적용해 제품의 가치를 높임으로써, 높은 가격에 판매한 것”이라며 “특히 삼성 휴대폰은 세계 최초로 TVㆍ카메라ㆍ캠코더ㆍMP3P 등 새롭고 다양한 기능들을 융·복합했다”고 강조했다.

시장을 만들어라
삼성은 90년대 후반 해외 시장 진출 방식을 놓고 고민에 빠졌다. 노키아와 모토로라의 양대산맥의 벽이 너무 높았기 때문이다. 특히 모토로라를 밀어내고 세계 최강으로 떠오른 노키아의 벽은 넘기 힘들 것처럼 보였다.

이 때 삼성은 과감한 결정을 한다. 200달러 이상의 초고가 시장을 겨냥한 것. 존재하지 않은 시장이었다. 휴대폰 메이커들이 전시용이나 단발성 행사용으로 초고가 휴대폰을 내놓기는 했지만, 그 시장을 겨냥해 상용화 제품을 만들어낸 것은 삼성이 처음이었다.

이어폰을 사용한 ‘핸즈프리’ 기능이나 음성다이얼 등 이전까지 휴대폰에는 없었던 기능들이 장착됐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전세계 사람들은 애니콜에 열광했다. 애니콜은 어느새 프라이드(자부심)가 됐다. 특히 패션에 민감한 젊은층 사이에선 애니콜은 명품과도 같은 존재가 됐다.

모바일초이스 등 IT 유력 잡지들이 비교한 휴대폰 성능에서도 애니콜은 항상 최고 수준으로 평가받으며 단시간내에 최고급 브랜드로 자리를 잡는다. 현재 휴대폰 시장의 30% 가량이 고가 제품 시장으로 분류된다. 이 시장에서 삼성은 50%에 육박하는 시장점유율을 확보하고 있다.

삼성은 새로운 휴대폰 시장을 창출했다. 노키아와 모토로라가 중저가에 집중하는 사이 세계 최고의 제품으로 고가 시장을 만들어냈다. 휴대폰의 명품 시장을 애니콜이 연 것이다. 인간과 가장 친숙한 IT기기인 휴대폰 시장의 명품을 창출한 삼성은 이후 후광효과를 톡톡히 본다. 애니콜이 없었다면 삼성 보르도TV는 존재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경영진 집념 빛났다
삼성 휴대폰이 이처럼 세계적인 IT 컨슈머 제품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이건희 전 회장을 비롯한 경영진의 ‘뚝심’ 덕분이기도 하다. 지난 93년 이 전 회장은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경영회의를 갖고 “세계 제일이 되려면 마누라와 자식만 빼고 다 바꿔라”는 말로 우리나라 경제계를 뒤흔들어 놓는다.

이 전 회장의 프랑크푸르트 선언의 중심에는 휴대폰 사업이 있었다. 당시 삼성 휴대폰은 모토로라에 밀려 고전을 거듭하던 중이었다. 이 전 회장은 프랑크푸르트 선언 이후 휴대폰 사업에 힘을 실어준다. 삼성 휴대폰 화형식도 이 전 회장의 작품이다.

이 전 회장의 휴대폰에 대한 집념은 이기태 전 부회장이 이어받는다. 이 전 부회장은 삼성 휴대폰을 세계 최고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전기를 마련한다. 이 전 회장이 “휴대폰은 이제 이기태 사장이 더 잘 안다”고 할 정도로 이 전 부회장은 삼성 휴대폰의 탄탄대로를 만들어 놓았다.

이 전 부회장이 만든 탄탄대로를 달리는 이는 최지성 현 삼성전자 사장이다. 최 사장은 애니콜을 확고한 시장점유율 2위에 올려놓으며 세계 최강 노키아마저 위협하고 있다.

주식회사 대한민국 최고 IT 제품 애니콜은 세계 최고 제품력과 신규 시장 창출 능력, 경영진의 집념이 만들어낸 최고의 산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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