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 세계에서 볼 때 지금 불고 있는 웹2.0 바람은 한마디로 혁명이다.”
디지털과 아날로그의 합성어 ‘디지로그’라는 용어로 화두를 던졌던 이어령 석좌교수(73)는 웹2.0을 단순히 IT 측면에서만 바라보는 것을 경계했다. 이 교수는 경제, 정치, 문화 등 2.0의 영향력이 사회 전반적으로 커지고 있으며, 이를 위해 참여하는데 주저하지 말고, 유연한 사고 등을 가질 것을 주문했다.
이 교수는 90분이 넘는 인터뷰 시간동안 웹2.0을 ‘소프트웨어 업그레이드와 같은 버전 업그레이드 수준으로 바라보는 것은 잘못’이라는 메시지를 유지했다. 웹2.0은 옛날 인터넷이 아닌 컨셉이 완전히 다른 패러다임의 변화라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정보를 제공하는 측과 받는 측이 뒤바뀌었는데 어떻게 그것을 혁명이라고 하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이 교수는 2.0 시대를 맞이해 개인이나 기업, 정부 등 다양한 계층이 패러다임 변화에 맞춘 준비를 해야 한다는 것을 강조했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격’이 되지 않으려면 다른 나라보다 먼저 고민하고 실천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가 제시하는 해법을 들어보면 결국 참여, 공유, 개방이라는 웹2.0의 3대 키워드와 연관돼 있다. 국내 최고 석학으로 꼽히고 있는 이 교수의 웹2.0 이야기는 정보기술(IT) 측면에서만 바라보던 편협한 시각을 넘어 사회 문화적인 현상으로 깊이를 느낄 수가 있다.
이병희 기자 shake@ittoday.co.kr

웹2.0이 단순 업그레이드가 아니라 혁명과도 가깝다고 말씀하시는 배경은 무엇입니까 ?
“웹2.0은 인터넷 거품을 이겨낸 구글을 비롯해 여러 기업을 차별화하기 위해 만든 이름입니다. 옛날 인터넷이 아니죠. 한마디로 말하면 패러다임의 변화입니다. 정보를 제공하는 측과 받는 측이 뒤바뀌었습니다. 사용자가 직접 발신을 한다는 것이죠. 공급업체로부터 일방적으로 푸시(push)를 받았던 사람들이 콘텐츠를 비롯해서 자기네들이 편집을 하고 프로바이더들이 구축한 환경에 생산을 하는 것이 현실입니다. 생산과 소비의 환경의 뒤집혔다고 하니 혁명이 아니고 뭐겠습니까. 오프라인에서는 상상도 안되는 일이 온라인에서 벌어지는 것입니다. 현실 방송국은 힘들겠지만 IT쪽에서는 가능한 일이죠.”

웹2.0이 IT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사회문화적으로 큰 영향을 끼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인류역사상 생산, 소비관계를 새로운 형태로 뒤집어 본적은 없습니다. 웹2.0은 IT모델이 인터넷뿐만 아니라 전체 사회를 바꿀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셈이죠.
가장 민감하게 언론 민주주의 형태도 바꾸었다고 봅니다. 기존 방송, 신문들은 기사를 대중에게 보내는 것인데 이제 웹2.0의 대표적인 형태인 블로그가 거꾸로 방송사, 신문사로 메시지를 보내고 있습니다. 그것을 받아 쓸 수 밖에 없는 현실이 됐으니 웹2.0은 뉴미디어를 만든 셈이죠. 기존 방송이 매스 데모크라시(Mass Democracy)라고 한다면 블로그는 퍼스널 데모크라시(Personal Democracy)를 지향하게 되는 겁니다.”

퍼스널 데모크라시의 재미있는 일화가 있다고 하셨는데요. 어떤 것인지요.
“최근 예를 하나 들어볼게요. 미국에서 대선을 준비중인 힐러리 의원이 음치라는 것이 사용자제작콘텐츠(UCC)를 통해 퍼져나갔습니다. 힐러리 측에서는 이러한 상황에 대한 대응경험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처음 준비한 것이 ‘음정은 엉망이었지만 가사는 정확하지 않았느냐’로 컨셉을 잡았습니다. 그러다 작곡가 등 일부 다른 곳에서 말이 나올까봐 최종적으로 ‘대통령직을 수행하는데 있어 가창력을 갖고 하는 것이 아니다’라고 대응했다고 합니다. 물론 기성신문이나 방송에서는 절대 나오지 않을 것입니다. 후보자가 음치인지 아닌지가 중요한 것도 아니고 알아차렸다 하더라도 필터링 돼서 언론에 노출이 되지 않게 됐을테죠. 그만큼 블로그나 UCC 등 웹2.0의 부산물들은 개인 관심사에 기반을 두고 있고 사회적 관념을 깨는 것도 있습니다.”

롱테일 법칙이라고 해서 웹2.0을 경제학 관점에서도 이해하려는 사람들이 늘고 있습니다.
“기존 인터넷이 자본주의 시장 경제를 기반으로 하고 있다면 웹2.0은 증여시장을 기반으로 하고 있습니다. 인간은 독점하려는 욕심도 있지만 증여하려는 욕심도 갖고 있습니다. 블로그는 아무런 대가 없이 아무런 목적없이 퍼주는 경제입니다. 자본주의 원리에 웹2.0이 나오면서 독자참여형, 시장 증여형으로 바뀌고 있는 것이죠.
증여경제가 신경제입니다. 즉 웹2.0은 경제모델이 되는 것입니다. 이른바 8대 2의 파레토의 법칙도 바꾸지 않았습니까. 롱테일 법칙을 보면 웹2.0 환경에서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자연스럽게 알수 있게 됩니다.
경제학 관점에서 볼 때 참여자들의 역할이 중요합니다. 2.0일때 업로드하는 사람이 없으면 안됩니다. 그건 무상 행위입니다. 어린 시절 길가에서 뱀을 본 후 집에 들어와 자랑을 하는 것처럼 자기의 경험을 무상으로 공유하는 것이 웹2.0입니다. 특히 지식인층의 변화가 필요합니다. IT강국이다 하면서도 위키피디아에 가보면 국내 지식인 층의 참여가 저조합니다. 외국의 경우 내로라 하는 학자들이 대거 모여 쓰고 있는데 국내에서는 아직 권위주의 틀이 박혀 있어서인지 그러한 참여는 잘 이뤄지고 있지 않습니다.”
구글을 웹2.0 대표 업체로 꼽으셨는데 어떻게 보십니까.
“2006년 6월 6일은 잊지 못할 날입니다. 구글이 지금까지 플랫폼은 PC안에 들어있다는 것을 바꿔버린 날이죠. 구글은 PC상에 있는 애플리케이션을 웹에서도 제공하겠다고 나섰습니다. 얼마나 획기적입니까. 인터넷에 들어가면 애플리케이션이 다 있고 자기 정보가 무한정 지워지지 않고 있는데 얼마나 놀랍습니까. 검색도 엔진 기계가 자동으로 하고 있어 프라이버시 침해 문제도 크지 않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구글은 많은 변화를 가져오고 있습니다.

웹2.0이 학문시스템에도 변화를 가져오고 있을까요.
“최근 학문 시스템이 민간분류법, 즉 사용자 편리에 의해서 이뤄지며 객관적 분류법이 사라지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이전에는 물리학, 생물학 등 학문체계가 기승전결을 갖고 학과로 분류됐는데 이제는 학문영역간에 상호연동 혹은 파괴현상이 일어나 섞이고 있는 것이 대세입니다. 아마도 사물을 바라보는 분류법 변화에 따른 것일 수도 있습니다. UCC는 똑같은 그림을 보더라도 사람마다 관심사가 다릅니다. 결국 태그를 어떻게 달 것인지가 많은 독자를 확보하는 관건인데, 이 때 필요한 것이 폭소노미입니다. 전통적인 분류법인 텍소노미가 아니라 독자의 민간분류법인 폭소노미가 돼야 합니다. ‘할아버지’하면 ‘할머니’가 아니라 ‘할아버지하면 대학생’, 이런식으로의 분류도 나와야 한다는 얘기죠.”
웹2.0이 사회문화적으로 영향을 끼친다고 한다면 학교 뿐만 아니라 사회에서도 많은 변화가 있어야 할텐데요.
“학교에서 물리시간에 ‘얼음이 녹으면 물이 된다’가 맞는 것입니다. 그러나 ‘얼음이 녹으면 봄이 온다’도 답변으로 어느 정도 인정하는 것도 필요합니다. 학교 교육자체에서 다양성과 개별성을 중시하자는 것이죠. 틀린 답이라도 인정해주는 새로운 평가분위기가 필요합니다.
실제 미국 예일대 인터뷰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무인도에 가면 무슨 책을 갖고 가겠느냐라는 질문에 어느 한 학생이 뗏목 만드는 책을 갖고 가겠다고 대답했답니다. 원래 질문의 취지는 그게 아니죠. 암튼 예일대에서는 그 친구를 합격시켰고, 그는 재학 중 윈드서핑에 기발한 아이디어를 내서 백만장자가 됐다고 합니다. 그것이 웹2.0시대에 맞는 유연한 사고입니다. 우리에게 꼭 필요한 것이죠. 
기업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전통적인 자본주의에 대기업들이 짝짓기를 하는 것은 블로그의 링크와 같습니다. 경제와 협력이라는 코피티션(copetition)의 관계는 앞으로도 더욱 중요해질 겁니다.”

관계 기술(Relation Technology)이라는 말도 내놓으셨는데, 어떤 의미입니까.
“상호 연동되는 관계성을 보자는 것입니다. IT가 RT로 바뀌는 징후가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미국 타임지가 지난해 올해의 인물로 선정한 You는 조금 잘못됐습니다. You는 한사람 한사람 개별이 이뤄진 것입니다. 이전부터 있어왔던 객체죠. 문제는 YOU와 YOU 사이의 관계가 중요한 것인데, 너와 나 중간에 있는 무엇인가가 바로 현재의 네트워킹 사회를 만든 요인이 됩니다. 중간에 존재하는 것. 반쪽이어야 합니다. 정확히 표현하자면 하프유(Half you)가 맞는 것이죠. 도저히 볼 수 없는 관계죠. 예를 들어 모바일로 전화를 걸면 반은 상대방 것이고 반은 내 것입니다. 2분의 1밖에 안되는 것입니다. 즉 하프유가 중요합니다. 보세요. 인터넷 세상에서는 블로그나 링크 저작권 관계도 애매하잖아요. 이게 바로 내 글이기도 하고 너의 글이기도 한 중간자의 특성 때문입니다.”

후기정보화 시대 부작용도 많이 있습니다. 가장 쉬운 것으로 하나 예를 들어주시죠.
“요즘 이슈가 되고 있는 소셜네트워킹서비스(SNS)를 봅시다. 이전 인터넷의 동호회와는 다릅니다. 이전 인터넷 동호회는 모르는 사람끼리 모인 것이지만 SNS는 아는 사람끼리 모이는 것입니다. 익명성이 아니라 아날로그 집단이 그대로 사이버 세상에 들어가서도 또 짝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다보니 부작용도 생깁니다. 나이가 들수록 새로운 환경과 친구들에 익숙해져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게 되는 것이죠. 사회의 급격한 환경 변동에 성숙하게 대응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나오게 될 수도 있습니다. 새로운 환경, 새로운 인물에 익숙하지 못하게 되는 것이죠. 특히 최근에는 사이버 세상에서 게임에 지고 현실에서 패싸움 하는 기이한 일이 많이 발생합니다.”

웹2.0 시대에 우리들은 무엇을 준비해야 할까요.
“문화란 국민성 수준이 질을 좌우합니다. 독자참여, 소비자 참여가 클수록 웹2.0이 자리 잡을 겁니다. 미국의 유명 칼럼니스트는 ‘세상은 평평하다’고 말하고 있으나, 블로그 등 웹2.0이 오픈된 것이지만 사회가 오픈되지 않으면 더 힘들어질 수 있습니다. 지렁이가 여름 비가 왔다고 해서 길가에 나왔다가 쨍쨍한 해를 만나 말라 비틀어집니다. 후기정보사회증후군도 여기저기 일어나고 있습니다. 거기에 대비해야 합니다. 사용자와 공급자들이 새로워진 환경을 사회와 어떻게 연결시키느냐. 공급자와 수요자 양쪽 모두 반성하고 흐름을 맞춰야 하는 중대한 기로에 서 있습니다. 이대로는 안됩니다. 허물어져가는 인터넷, 공격적 미디어를 새로운 시대에 맞도록 바꿔놓아야죠.”

후기 정보 사회의 문제점이 나오고 있다면 정책적으로도 어떤 준비를 해야 하지 않을까요.
“우리의 현실과 사이버 현실에 미치는 온도차이가 이중적입니다. 정부 및 일부 기업들에서는 자신의 위치나 시설물 등을 보안상의 이유로 벽을 쳐놓고 못보게 하지만 지금의 세상은 구글에 들어가 위성지도를 이용하면 많은 것을 알아낼 수 있는 세상이 됐습니다.
또 e메일이 재판할 때 증거로 채택이 가능하느냐의 문제도 나올 수 있죠. 이렇게 되면 e메일을 프린팅해서 도장받는 일도 생길 것입니다. 법리적인 문제가 저작권 문제보다 훨씬 복잡하게 될 것입니다. 이러한 일에 대해 다양하게 고민하고 준비해놓아야 할 것입니다. 프라이버시 침해권 문제도 마찬가지입니다.
디지털과 아날로그의 연합이 서로 죽고 살릴 수 있습니다. 그게 바로 디지로그입니다. 사회 전반적으로 관료의식을 버려야 합니다. 일방적으로 푸시하는 시대는 지났습니다. 이제는 끌어당길 수 있는 여유도 가져야 하고 그것을 위해서는 관료주의를 버릴 때만이 살아남습니다.

[IT TODAY 2007년 창간호(6월) 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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