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유일 시각장애인 게임 개발자 황병욱씨

시각장애인용 게임, 시각 장애인이 직접 만든다

눈을 감고 컴퓨터를 조작한다. 전원 버튼을 누르고 특유의 컴퓨터 작동 소리를 듣는다. 그 다음에는 무엇을 할까. 겨우 문서 프로그램을 찾았다고 치자. 일단 자판 순서를 외웠으니 글자를 입력하는 데는 큰 문제가 없다. 그러나 오탈자인지 확인조차 어렵다. 어찌됐든 문장을 입력했다 하더라도 그 이후에는 어떻게 저장을 할까.

한마디로 눈을 감고 컴퓨터를 조작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이처럼 앞이 보이지도 않는 상황에서 프로그램까지 개발한다니 놀랍다.

게임 개발업체인 엑스비전테크놀러지의 황병욱씨(27)는 시각장애인이다. 공식직함은 대리이지만 시각장애인용 게임을 개발하는데 있어 그만큼 전문가는 없다. 인터뷰를 시작할 때 ‘지극히 단순하고 평범한 사람’이라고 자신을 먼저 소개하던 황씨. 시각장애인이라면 편견을 갖고 바라보는 사람들이 많기에 먼저 상대방에 대한 배려에서 나온 것이다.

그는 비록 눈인사를 나눌 순 없는 선천성 시각 장애인이지만 지금까지 만나본 프로그램 개발자 중에 가장 웃음이 넘쳐나는 기분 좋은 만남의 주인공이다. 시각 장애인 대부분이 안마사 아니면 특수 교육과를 졸업해 선생님으로 생활하고 있는 반면, 그는 웬만한 일반인도 열정없인 하기 힘든 프로그램 개발에 뛰어들어 자신의 꿈을 키우고 있다.

성현희 기자 ssung@ittoday.co.kr

일반적으로 게임 프로그램 개발자의 모습은 매일 같은 밤샘작업으로 눈가엔 다크서클 진한 팬더 곰 신세에, 예민한 성격의 소유자일 것으로 연상된다. 하지만 황병욱 대리의 모습은 그런 선입견을 단번에 없애준다. 컴퓨터 앞에만 틀어박혀 있는 외골수적인 성격도 아니다.

적극적이며, 다정다감하다. 단지 앞이 보이지 않는다는 작은 불편함이 있을 뿐이다.

현재 그는 엑스비전테크놀로지에 근무하고 있다. 컴퓨터 화면을 보지 못하는 시각 장애인들을 위해 스크린 정보를 음성으로 변환해 들려주는 ’스크린 리더’ 프로그램 개발업체다. 이 회사는 총 직원 11명 중 4명을 제외하고는 개발팀과 영업팀 모두가 시각 장애인들로 구성돼 있다. 그래서 이들은 시각 장애인의 불편함과 정보 습득에 대한 목마름을 어느 누구 보다도 잘 안다. 프로그램 개발에 온 열정을 쏟을 수밖에 없다. 황 대리는 여기서 시각 장애인들을 위한 게임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있는 핵심 인물이다.

’컴퓨터에 미치다’

황 대리는 태어날 때부터 시력을 결정짓는 조직이 완벽하게 형성되지 않은 선천성 시각 장애인이다. 어린 시절에는 그래도 약간의 시력이 있어 아주 가까이에 있는 것은 볼 수 있었다. 그 시절 그림 그리기를 좋아했던 그는 학교에서 컴퓨터를 접하게 되면서 컴퓨터로도 간단하게 그림을 그릴 수 있는 재미에 푹 빠져버렸다. 그때부터 그의 컴퓨터에 대한 열병은 시작됐다.

이런 그의 열병은 자연스레 컴퓨터 그래픽에 심취하게 만들었다. 그러다보니 매일 같이 모니터 앞에 눈을 붙이다시피하며 눈을 못살게 굴었다. 결국 더 이상 앞을 보기 힘들 정도까지 고장나 버렸다. 이처럼 시력을 잃어가면서도 하고 싶었던 것이 바로 컴퓨터 작업이다. 그에게 컴퓨터의 존재는 남다르다.

하지만 이런 그의 컴퓨터에 대한 남다른 열정을 맹학교에서 순수하게 받아들 일리 만무했다. 맹학교의 교육 시스템 자체는 인문 과목 위주의 교육이 아니다. 안마나 침술 위주의 교육이 대부분이다. 그렇다 보니 컴퓨터에만 관심이 있었던 그로선 적응 자체가 쉽지 않았다. 학교 또한 그를 이해하기 힘들었다.

그가 고등학교 2학년 때의 일이다. 안마 실습하시는 선생님이 컴퓨터 앞에만 있는 그를 보고는 "맹인이 컴퓨터 해서 뭐 먹고 살겠냐!"며, 핏대를 올리면서 꾸짖은 적이 있다. 그는 그 당시 친구들 앞에서 부끄럽기도 했지만 오히려 그 말 때문에 오기가 생겨 더욱 컴퓨터에만 전념했다고 한다. 분명 그의 학창시절은 선생님이 좋아하는 ’모범생’의 모습은 아니었을 것으로 상상된다. 컴퓨터를 친구삼아 학창 시절을 보냈다는 그의 얘기만 들어도 그 시절 얼마나 컴퓨터에 빠져있었는지 미뤄 짐작 할 수 있다.

불광불급(不狂不及)이라고 했던가. ’미치지 않으면 미치지 못한다’고 세상에 미치지 않고 이룰 수 있는 큰 일이란 없다. 그 역시 그 시절 컴퓨터에 몰두하며 자신의 모든 열정을 쏟아 부었기 때문에 지금의 위치에 오를 수 있었을 것이다.

국내 유일의 시각 장애인용 게임 개발

궁금하다. 앞을 볼 수가 없는데, 어떻게 게임을 개발할 수 있는 것인지. 이리저리 머리를 굴려봐도 상상이 잘 되지 않는다. 직접 그의 자리에 앉아봤다. 눈을 감고 헤드폰을 꽂았다. 키보드는 일반적인 것이다. 키보드를 치니 모든 정보들이 음성으로 들려왔다. 내가 원하는 대로 작업을 할 수는 있겠지만 답답하기 그지 없다. 속도도 느리다. 이제 그가 자리에 앉았다. 가히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일반인들과 전혀 다를 바 없는 속도로 컴퓨터를 다루고 프로그램을 만들어낸다. 적어도 컴퓨터 앞에서 만큼은 그에게 ’장애’란 없었다.

그가 만들고 있는 프로그램은 시각 장애인용 ’센스 게임’이다. 한게임과 같은 다양한 게임을 제공한다. 현재 사용자가 2000여 명에 이를 정도로 시각 장애인에게 인기 만점이다. 물론 상대적으로 시중에 나와 있는 화려하고도 입체적인 영상의 게임과는 비교할 수 없다. 그래도 통신과 사운드를 결합해 체계적으로 정리된 게임은 그가 만든 센스 게임이 국내 최초이자 유일하다. 기존 텍스트 위주의 머드 게임이나 오프라인의 단순한 게임이 전부였던 시각 장애인들에게는 분명 게임 이상의 값진 선물일 것이다.

센스 게임은 닌텐도나 플레이스테이션처럼 게임 팩을 끼우면 원하는 게임을 할 수 있게끔 플러그인 방식으로 구성돼 있다. 현재 11개 정도의 다양한 프로그램이 만들어졌다. 이 중 가장 인기 있는 게임은 역시나 고스톱과 볼링 게임이다.

IT 업계의 스티비 윈더 탄생 기대

그가 그토록 좋아하는 컴퓨터 관련 일을 하기 위해 걸어온 길은 결코 순탄치 않다. 독학하다시피 한 배움의 길도 쉽지 않았다. 대학교 역시 향후 컴퓨터 관련 일을 하는데 있어 도움이 되고자 영어 교육과를 들어갔지만 1년 만에 자퇴하고 말았다. 시각장애인이 현실에서 배울 수 있는 사회적 시스템은 없었기 때문이다.

첫발을 내딛은 직장에서도 실수 투성이었다. 그는 "우연히 한 머드 사이트의 서버 프로그램을 담당하게 됐는데, 서버에 프로그램을 올리자마자 5분도 안돼서 다운되고, 사용자들의 데이터가 날아가 혼쭐나기도 했다며, "그때 생각하면 실수도 많이 했지만 그 만큼 많은 것을 배우기도 했다"고 전했다.

맹학교 선배의 추천으로 지금의 회사에 입사하게 된 그는 요즘 프로그램 개발 일에 푹 빠져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지내고 있다. “하루가 48시간이었으면 좋겠다”고 말하는 그는 하루에 4시간 이상을 자지 않는데도 시간이 부족하다고 한다. 그만큼 일을 즐기면서 하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좋아하는 일이라도 힘든 순간이 분명 있게 마련이다. 그는 프로그램 개발업무가 혼자 해결해 나가는 자신과의 싸움이어서, 지독한 ’외로움’이 가장 큰 힘든 점이라 털어 놓는다.

그렇게 해맑게 웃는 모습 뒤에 외로움이라는 구름이 짙게 베여있을 것이라 생각하니 왠지 모르게 가슴이 찡하다. 하지만 그에게는 이런 먹구름을 단번에 없애줄 햇빛이 존재한다. 바로 그의 게임을 열렬히 사랑해주는 팬들이 바로 그들이다. 이들은 게임을 즐기기도 하고, 새로운 게임의 탄생을 기다리며 그를 열심히 응원해 준다. 단순히 새로운 게임을 탄생시키는 게임 개발자로서가 아니다. 같은 시각 장애인으로서의 꿈과 희망을 이루게 해주는 대변인의 역할이 더 클 것이다.

황 대리의 최종 목표는 단순히 게임 개발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다. 시각장애인들의 새로운 사회공간을 만드는 것이라고 한다. 그가 그리는 사회의 모습은 어떤 것일지 내심 많이 궁금했지만 더 이상 물어보진 않았다.

향후 몇 년 뒤, 황 대리의 야심찬 계획이 꼭 실현돼 세상을 놀라게 할 것이라는 데 의심의 여지가 없어 보인다. 흑인 대중음악의 산 증인으로 칭송되는 시각장애인 가수 스티비 원더가 주옥같은 노래를 선보인 것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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