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미엄 유료 매체 www.kipost.net에 2015. 11. 09 실린 기사입니다>

폴크스바겐 배기가스 조작 사태 이후 세계 산업 지형도가 급변하고 있다.                                  

지난 십여년간 자동차 시장을 주도했던 독일산 디젤차가 점점 힘을 잃는 대신 전기차(EV), 하이브리드카(HEV), 플러그인하이브리드카(PHEV) 등 친환경 자동차가 급성장하고 있다.                                         

과거 피처폰에서 스마트폰으로 바뀌면서 노키아가 몰락하고 애플이 스타 기업으로 부상했듯이 자동차 산업에서도 몰락하는 기업과 새로 성장하는 기업이 등장할 것으로 예상된다.                                            

우리나라 자동차 산업을 대표하는 현대기아차가 새로운 흐름 속에서도 영향력을 유지할 수 있을지 관심이 쏠린다. 삼성, LG 등 IT 대표 기업들의 전기차 시장 진출도 초미의 관심사다.

 

▲ 미국을 상징하는 자유의 여신상 / 자료: KIPOST

 

독일산 ‘클린 디젤’은 미국의 국익에 반한다

 

전기차는 배기가스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차세대 자동차로 오래 전부터 주목받았다.

하지만 전기차 등 친환경차 시장 성장은 예상보다 훨씬 더뎠다. 독일을 중심으로 한 기존 자동차 업체들의 수성 전략 때문이다.

화석 연료를 사용하는 기존 자동차 업체들은 매연 저감 기술을 무기로 환경오염 문제에 능동적으로 대응해왔다. 연비를 높이고, 배기가스 등 환경오염 물질을 적게 배출하면서 전기차 시장이 본격화되는 것을 지연시켰다. 디젤 엔진 배출가스량을 줄이는 클린 디젤 기술이 대표적이다.

소비자들은 비싸고 충전이 불편한 전기차 대신 매연 저감 기술을 장착한 엔진차를 구입했다.

그러나 미국이 폴크스바겐 사태를 계기로 디젤차에 대한 문제를 부각하면서 상황은 급반전했다. 배기가스 배출량 조작 사건이 수면 위로 드러나면서 독일차 업체들은 위기에 봉착했다.

폴크스바겐 사태의 배경에는 미국의 국익에 대한 계산이 깔려있다. 폴스크바겐 등 독일차 업체들은 20여년 전부터 디젤 엔진 배기가스 배출량을 줄이기 위해 천문학적이 자금을 투자해왔다. 글로벌 자동차 업체들은 독일 디젤차를 추격하기 위해 뒤늦게 기술 개발에 뛰어들었지만, 격차를 줄이기에는 역부족이었다.

90년대 유럽을 중심으로 인기를 끌던 디젤차가 최근 몇 년 사이 세계 곳곳으로 퍼지기 시작했다. 한국과 인도가 대표적이다. 심지어 미국에서도 디젤차가 서서히 인기를 끌면서 미국 자동차 업체들의 불안은 점점 커졌다.

자국 내 제조업 부활을 주요 정책으로 내건 오바마 행정부로서는 자동차 산업을 절대 포기할 수 없다.  

GM, 포드 등 미국차 업체들도 디젤 엔진을 채택했지만, 독일차의 기술력을 따라잡을 수 없었다. 결국 폴크스바겐이 세계 자동차 시장 1위를 차지하면서 미국차 업체들의 우려는 현실로 다가왔다.

폭스바겐 사태를 계기로 미국은 자동차 시장에서 디젤차 수요를 억누르고 전기차 등 친환경차 수요를 촉진시키는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미국뿐 아니라 중국, 프랑스, 일본 등 글로벌 자동차 업체를 보유한 나라들은 암묵적으로 지지를 보내고 있다.

에너지 전략 측면에서도 디젤차 시장이 꺾일수록 미국에 유리하다. 원유 정제시 가솔린은 21%, 디젤은 9% 가량 나온다. 가솔린과 디젤의 원가 자체는 비슷하다. 다만 국가별 정책에 따라 가격이 형성된다.

미국에서 생산되는 원유는 가솔린 생산에 유리하다. 미국이 지난 100년간 반 디젤, 친 가솔린 정책을 평온 이유다. 셰일 오일 생산 이후 친 가솔린 정책은 더욱 강화되고 있다. 일본도 미국의 정책에 적극 부응해 친 가솔린, 반 디젤 정책을 펴왔다.

반면 원유 자원이 빈약한 유럽은 친 디젤 정책을 써왔다. 세계 디젤차의 70%는 유럽에서 판매된다. 현재 유럽 차 시장 내에서 디젤 엔진 비중은 절반을 넘어선다.

미국의 반 디젤 정책 이면에는 군사적인 이유도 있다. 세계 1위 군사 대국인 만큼 막대한 원유를 전략적으로 비축해야 한다. 전쟁시 가장 많이 쓰이는 원료가 바로 디젤이다. 미국 내에서 디젤차 수요가 늘어 디젤 가격이 상승하면 군비에 부정적이다.

 

▲ ▲ 수출을 앞 둔 독일 자동차 / 자료 : 유럽한인회 홈페이지

 

코너에 몰린 독일 자동차 산업...도와줄 친구는 없다

 

그동안 환경 문제로 공격을 하는 쪽은 유럽, 수비를 하는 쪽은 미국이었다. 폴크스바겐 사태로 자동차 시장 내 공수가 완전히 뒤바뀌었다. 미국은 환경 규제를 강화하는 한편 디젤차 배기가스 문제를 꾸준히 이슈화하면서 자동차 시장 구도를 흔들 것으로 보인다.

유럽 내에서는 프랑스와 독일의 이해관계도 다르다. 두 나라는 유럽연합을 실질적으로 이끄는 양대 축이다. 최근 독일이 경제력을 기반으로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독일은 강력한 제조업을 바탕으로 금융위기 이후 유럽 경제를 주도하고 있다. 프랑스로서는 이러한 구도를 흔들 필요가 있다. 디젤차 시장을 독일 업체들이 독식하는 것도 프랑스를 불편하게 만든 이유다. 프랑스 대표 자동차 브랜드 르노 역시 디젤차 시장에서는 독일 업체에 역부족이다. 미국이 독일 자동차 업체를 거세게 몰아붙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프랑스는 중재에 나설 움직임이 전혀 없다.

오히려 프랑스는 미국의 독일차 공세를 편들고 있다. 프랑스는 2020년까지 파리에서 디젤차 판매를 금지하는 법안을 추진 중이다. 유럽 자동차 시장의 핵심인 프랑스가 디젤차 수요를 억누를 경우 독일차 업체들의 타격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미국은 독일 디젤차의 부진을 계기로 전기차 등 친환경차 산업을 적극 육성한다는 전략이다. 폴크스바겐 사태를 계기로 글로벌 자동차 산업 재편에 적극 나서는 모습이다.

미국은 테슬라로 자동차 시장에서 자신감을 찾았다. 독일차 중심의 기존 자동차 시장을 무너뜨리고 전기차 시장을 키우면, 제조업 부활과 신산업 육성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다. 테슬라의 순수 전기차 기술은 세계 최고 수준이다.

디젤차로 직격탄을 맞은 독일 기업들은 하이브리드, 플러그인 하이브리드 자동차를 출시하면서 순수 전기차 시대를 최대한 늦추는 전략을 구사할 것으로 보인다. 반면 미국과 중국은 순수 전기차 시대를 최대한 앞당기기 위해 보이지 않는 공조를 취할 가능성이 높다.

사실 중국도 반 디젤, 친환경차 육성을 골자로 하는 미국의 자동차 산업 재편안을 암묵적으로 지지하고 있다. BYD 등 자국 기업을 키워 전기차 산업을 적극 육성하고 있기 때문이다. 글로벌 자동차 시장에서 친환경차 비중이 늘어나면 중국 기업도 기회를 잡을 수 있다. 고가 시장은 미국 테슬라가 장악하겠지만, 중저가 시장에서는 중국 BYD가 위너가 될 가능성이 높다.

에너지 관리 측면에서도 미국과 중국의 이해관계는 맞아떨어졌다. 디젤차를 타던 유럽 소비자들이 가솔린차로 갈아탈 경우 중국으로서는 좋을 게 없다. 중국은 미국과 함께 대표적인 에너지 소비국이다. 가솔린 수요가 늘어 에너지 가격이 높아지고, 중국 내 인플레이션이 가중된다면 경제 성장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디젤차를 타던 소비자들이 전기차로 바꾸는 것이 중국으로서도 가장 이상적인 시나리오다.

 

▲ 삼성SDI 시안 리튬이온 배터리 공장 / 자료: 삼성SDI

 

글로벌 자동차 산업 재편, 한국 산업에 미치는 영향은?

 

세계 자동차 시장이 전기차 등 친환경차 중심으로 재편됨에 따라 현대기아차의 영향력은 점차 감소하는 대신 삼성, LG 등 IT 기업의 약진이 두드러질 것으로 예상된다.

현대기아차는 전기차, 플러그인하이브리드카 등 친환경 제품 라인업을 꾸준히 강화하고 있다.

하지만 전기차 시대에는 고가 시장은 테슬라 등 미국 기업이, 저가 시장은 BYD로 대표되는 중국 기업이 장악할 것으로 보인다. 기존 자동차 기술이  차세대 제품 시장에서는 먹혀들지 않게 됨에 따라 경쟁력 약화는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삼성, LG 등 IT 기업은 전기차 시장에서 기회를 잡을 수도 있다. LG그룹은 모터, 배터리, 인포테인먼트, 차량 경량화 소재에 이르는 전기차 소재부품 수직계열화를 완성했다. 삼성그룹도 최근 전기차용 배터리 생산능력을 확대하는 한편 삼성전기 등 계열사를 통해 전장 부품 라인업을 꾸준히 강화하고 있다.

자동차 후방 산업에서도 IT 소재부품 기업들의 시장 진입이 더욱 가속화될 것으로 보인다. 특히 LG화학, 삼성SDI 등 리튬이온 배터리 업체들의 약진은 갈수록 두드러질 것으로 예상된다. 전기차, 하이브리드카, 플러그인하이브리드카 등 모든 친환경차 차종에 리튬이온 배터리가 장착되기 때문이다.

전기차 리튬이온 배터리용 양극재를 생산하는 에코프로와 엘앤에프, 음극재를 생산하는 포스코켐텍 등 업체들도 주목받을 것으로 보인다. 전해액을 생산하는 후성, 솔브레인 등 케미컬 업체도 눈여겨 볼 만하다.

현대기아차 협력사 중 전장 부품 기술을 보유한 기업은 전기차 시대에도 여전히 경쟁력을 이어갈 가능성이 높다. 차량 카메라를 공급하는 엠씨넥스와 세코닉스, 테슬라에 부품을 공급한 한온시스템, S&T모티브 등이 대표적이다.

 

키포스트 이형수기자 goldlion2@kipost.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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