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티투데이 김효정 기자] 마치 담합이라도 한 듯이 국내 이동통신 사업자들의 요금제는 거기서 거기다. 음성통화 시간과 데이터 용량, 혜택 등 이통 3사는 비슷한 요금을 내기 때문에 '요금'만을 갖고 이통사를 바꿀 수는 없다. 결국 누가 브랜드 마케팅을 잘 했느냐가 이통사를 선택하는 기준이다. 서비스나 품질과는 무관한 TV 광고 등에 소비자의 선택이 갈린다.

일각에서는 이통사 간 비슷한 요금제를 두고 '요금제 베끼기' 관행이라는 표현도 서슴지 않는다. 이통사들은 각자 내부 전문가들이 오랜 시장 조사와 분석으로 상품을 개발했다고 한다. 그러나 소비자들 눈에는 그놈이 그놈이다. 결국 요금제 베끼기 논란 역시 소비자에게 좋을 것은 없다.

이통사들은 분기 마다 수천억원의 마케팅 비용을 쓴다. 그러나 이통 3사의 2015년 1분기 마케팅 비용은 2조465억원, 2분기 1조8808억원에 이른다. 단말기유통구조개선법으로 인해 이 비용이 줄어들고 있다. 마케팅 비용 절감으로 이통3사의 지난 3분기 총영업이익은 1조원을 넘어설 것으로 보인다. 사업자들은 배를 채우지만, 소비자들은 단말기 구입비용이나 요금제 측면에서 무엇이 더 나아졌는지 혹은 어떤 차별화가 있는지 체감하기 힘들다.

 

최근 이통사에서 출시한 군인 대상 요금제 역시 이러한 비슷한 요금제 사례로 볼 수 있다. SK텔레콤은 지난 7일 군인 고객들을 대상으로 신규 요금제 '지켜줘서 고마워'를 출시했다. 군 복무 중인 군인들이 휴가나 외박을 나와 음성과 데이터를 무제한으로 이용할 수 있도록 한 부가 서비스 형태의 요금제다. 부가세 포함 하루 2,200원에 데이터 2GB가 기본으로 제공되고 이를 초과시 3Mbps 속도의 데이터를 무제한으로 사용할 수 있다.

SKT의 군인 대상 요금제는 KT가 두 달여 전에 출시한 ‘올레 나라사랑 요금제’와 상당 부분 유사하다. KT는 국군의 날인 지난 10월 1일 국내 최초의 군인 전용 요금제를 표방하며, 매월 무료통화 200분과 군 장병들이 휴가 중 사용할 수 있도록 무한 이월이 가능한 ‘휴가 데이터’를 제공하는 새 요금제를 발표했다. KT는 기가급 속도의 올레 와이파이를 통해 전국 어디서나 요금 부담 없이 데이터를 이용할 수 있도록 하고, 군 부대 공중전화로 전화를 걸어도 본인 휴대폰 번호로 대신 표시해주는 ‘본인 휴대폰 번호표시’ 등 새 부가서비스 제공에 나섰다.

KT 요금제를 이용한 병사들에게 월 이용요금의 10%를 돌려주기로 한 ‘나라사랑 포인트’ 혜택 역시 SKT의 ‘지켜줘서 고마워’ 요금제에서도 그대로 찾아볼 수 있다. SKT는 이용요금의 50%를 포인트로 적립해 주겠다고 홍보했다. 물론 적립된 포인트는 KT와 마찬가지로 요금 납부와 단말기 구입에 사용할 수 있다.

■ 관행처럼 굳어진 '요금제 베끼기'...  "소비자에 이득"vs"통신시장 발전 저해"

'허니버터칩' 대신 '허니통통', '초코파이' 대신 '가나파이'... 흔히 유행하는 과자나 음료를 모방해 경쟁사에서 비슷한 제품을 출시하는 것을 이른바 '미투 상품'이라고 한다. 하지만 이같은 현상은 비단 유통업계만의 문제가 아니다. 경쟁이 치열한 통신업계 역시 이처럼 엄연한 '미투 서비스'가 존재한다. 이처럼 상품명도 다르고 가격과 서비스 내용에도 조금씩 차이가 있지만 그 본질은 같은 통신업계의 이른바 ‘베끼기 요금제’ 가 숱한 논란 속에서도 끊이지 않고 있다.

지난해 4월 LG유플러스는 음성과 문자, 데이터를 무제한으로 즐길 수 있는 ‘LTE8 무한대 요금제’를 출시했다. 3개월 동안 극비리에 팀을 꾸려 수많은 시뮬레이션과 검증을 거쳐 만든 상품이라는 것이 LG유플러스 측 설명이다. 그런데 처음 요금제를 공개하는 기자간담회 도중 이와 유사한 SKT의 요금제 출시 소식을 들어야 했고, 이날 오후 KT 역시 비슷한 요금제를 출시했다. 당시 유필계 LG유플러스 부사장은 “상도의에 어긋난다”며 강도높게 비판했다.

이를 두고 통신업계 관계자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엇갈린다.

이통사의 한 관계자는 “자세히 살펴보면 각 통신사 별 요금제가 서로 다 다르다”며 오랜 베끼기 논란 자체를 부인했다. 이와 함께 “어찌됐든 통신사들이 서로 경쟁을 통해 내놓는 것이기 때문에 소비자들로서는 조금이라도 더 저렴하게 이용할 수 있어 오히려 이득이 아니냐”고 반문했다.

다른 경쟁사 관계자 역시 "각 통신사가 현재 시장 상황에 맞게 충분히 차별화되는 요금제를 내놓고 있는 것"이라며 "막상 통신3사가 요금제 베끼기 금지 협약에라도 나선다 하더라도 현재의 통신시장 상황에서 과연 어느 통신사에서 동의를 하겠느냐"고 되물었다.

반면 또다른 이통사의 관계자는 “어느 기업이 시간과 돈을 들여 경쟁력있는 상품을 개발했을 때 소비자들이 몰리게 되면 파이가 그만큼 커지고 그 시장은 블루오션이 된다. 그런데 다른 기업이 똑같은 상품을 내놓게 되면 결국 가격경쟁으로 이어지게 된다. 그렇게되면 결국 서로 나눠먹는 시장이 돼 버리는 것이다. 근본적인 경쟁을 하기보다는 ‘미투 서비스’에 치중하는 그런 ‘요금제 베끼기 경쟁’이 소비자들에게 득이 된다는 게 말이 되지 않는 건 통신시장이 건강하게 발전해야 하는데 당장 눈 앞에 보이는 매출이나 이득에만 혈안이 돼 있는 것은 전체적인 시장 상황으로 봤을 때 현명한 발전이라고 할 수 없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 금융 최대 6개월, 보험 1년 '타사' 상품 베끼기 금지..."업계 합의 우선" 

그렇다면 보다 직접적인 해결법은 없을까. 통신업계의 베끼기 요금제 이슈가 불거질 때마다 함께 거론되는 분야가 바로 금융과 보험 분야다. 통신업계와 마찬가지로 직접 상품 개발을 하고 업체 간 경쟁 역시 치열하지만, 각 사 간 합의와 업계를 총괄하는 기관의 제도가 뒷받침되어 있어 일정기간 기업의 신상품 보호가 가능하다.

한국금융투자협회는 2009년 6월부터 회원사 동의 아래 별도의 신상품심사위원회를 구성해 회원사 상품의 독창성(40%), 국민경제 기여도(30%), 고객 편익 제공 정도(15%), 상품개발에 투입된 인적·물적 자원 투입 정도(15%) 등을 고려해 배타적 사용권을 주고 있다.심사 결과에 따라 1개월에서 최대 6개월간 경쟁사들이 베끼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박동필 금투협 자율규제본부 약관심사실장은 "금융감독원의 제안으로 신상품에 대한 배타적 사용권 심의를 하게 됐는데 법으로 보호하기 어려운 혁신적인 신상품에 대해 일정 기간 아이디어를 보호해 주자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금투협의 신상품 배타적사용권은 해당회사가 상품을 출시하면서 신청서를 내면 심사가 이뤄지고 경쟁사들의 이의신청도 가능하다. 지난해 5개 상품이 받았고, 올해에는 교보증권의 '일일손익 확정형 ELS'가 3개월의 배타적사용권을 인정받았다.

보험업계 역시 기존 6개월이던 보험상품의 타사 신상품 ‘베끼기’ 금지 기간을 1년으로 연장했다. 보험 신상품 보호를 통한 경쟁사의 무임승차를 방지하고 보험상품 개발유인을 강화한다는 취지다. 금융위원회가 지난 10월 발표한 ‘보험산업 경쟁력 강화 로드맵’에 따르면 기존의 보험회사들이 새로운 상품 경쟁보다는 마케팅 경쟁에 치중하고 있다고 자평했다. 보험사 간 경쟁 유도를 통해 소비자 수요와 환경 변화에 대응한 새로운 상품이 다양하게 출시되도록 유도해 소비자의 선택권을 제고한다는 의미다.

현행 통신업계에 이같은 제도를 도입하려면 한국통신사업자연합회나 한국정보통신진흥협회 등을 중심으로 한 통신3사 간 합의가 우선돼야 할 것으로 보인다.

한편, 시민단체 경실련 소비자정의센터 박지호 간사는 “통신사들이 다양한 요금 경쟁을 통해서 건강한 통신시장을 만들어야 하는 것이 기본인데, 현재 통신3사가 한정된 시장에서 파이 나눠먹기 식으로 가다보니 굳이 서로 경쟁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이러니 특색있고 경쟁력 있는 자신들 만의 요금제를 개발하기 보다는 타성에 젖어 서로 베끼거나 조금 고쳐 내는 것이 현실이다. 만약 지금보다 훨씬 더 많은 사업자들이 나온 상황에서 치열한 요금 경쟁이라면 모를까, 현재의 통신3사 구조에서 이런 ‘요금제 베끼기’는 소비자들에게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며 통신3사의 문제 인식과 자체 개선 의지,  정부의 통신요금 원가 공개 등을 통한 적극적인 개입 등을 해결책으로 제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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