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티투데이 정일주 기자]창창하던 레진코믹스의 하늘에 먹구름이 꼈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방심위)가 레진코믹스 내 만화작품을 불법 음란물로 규정했기 때문이다. 레진코믹스 측은 이에 대한 의견진술을 곧 할 예정이지만 작심한 방심위가 태도를 바꿀지는 미지수다. 심의의 핵심인 음란물 여부를 어떻게 정의하느냐가 레진코믹스와 웹툰 업계의 미래를 결정지을 것으로 보인다. 

지난 달 24일 웹툰 플랫폼 레진코믹스 사이트 접속이 갑작스레 차단됐다. 레진코믹스 내 등록된 일부 만화가 음란물로 신고되자 방심위가 심의 후 레진코믹스 사이트 접속을 막은 것이다. 레진코믹스를 운영하는 레진엔터테인먼트(레진) 측에는 한마디의 사전통지도 없었다.
 
▲ 지난 달 24일 웹툰 플랫폼 레진코믹스 사이트 접속이 갑작스레 차단됐다
 
2013년 6월 서비스를 시작해 ‘2013 글로벌 K스타트업 최우수상’, ‘2014 대한민국 인터넷대상 국무총리상’을 수상하고 누적매출 100억 원 돌파로 성공가도를 달리던 레진코믹스에게 빨간불이 켜졌다.
 
방심위 측에 따르면 해당 조치는 “레진코믹스가 게재한 만화 중 일부에 대해 성기가 그대로 노출되는 등 음란성이 있다고 판단될 뿐 아니라 성인인증 조치도 취하지 않고 있어 청소년의 무분별한 성인물 접근을 막기 위하여 긴급히 이루어진 것”으로 전해졌다.
 
레진 측은 스토리 전개상 필요한 경우에만 노출신이 있으며 이 조차도 모자이크 처리를 하고 있다고 반박했다. 게다가 레진코믹스는 방심위가 권고하는 아이핀 및 이동통신사 공인인증을 통해 성인인증을 거친다. 방심위로부터 지적받은 청소년의 ‘무분별한 성인물 접근’이 차단되고 있는 것이다.
 
이후 레진 측 입장을 듣지 않고 과도한 처분을 내렸다는 방심위를 향한 여론의 비판이 거세졌다. 결국 방심위는 지난달 25일 오후 레진코믹스 사이트 접속차단을 해제했다.
 
차단은 풀렸지만 레진코믹스 내 콘텐츠가 불법 음란물로 방심위에 낙인찍힌 점은 달라지지 않았다. 방심위원들은 레진코믹스 내 일부 일본만화가 불법 음란물 소지가 상당하다고 의견을 모은 상태다.
 
■ 이미 작심한 의원들... '음란물' 정의에 달렸다
 
▲ 레진코믹스 내 음란물 논란이 된 대표적 작품은 하즈키 카오루라는 일본 작가의 만화 ‘진짜로 있었던 H한 체험담’ 시리즈다
 
레진코믹스 내 음란물 논란이 된 대표적 작품은 하즈키 카오루라는 일본 작가의 만화 ‘H 체험담’ 시리즈다. 방심위 측은 해당 만화가 단순 성행위 뿐만 아니라 근친상간, 불륜 등 반사회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고 전했다. 이어 성기를 모자이크 처리하였으나 윤곽 등에 비추어 성기임을 식별할 수 있어 문제가 된다는 것이 방심위 측 입장이다.
 
이와 같은 방심위의 음란물 규정에 대해 지난 13일 사단법인 오픈넷은 대법원의 판례로 정면 반박했다. 대법원 판례에 따르면 ‘음란’은 ① 성적 흥분을 유발하고 정상적인 성적 수치심을 해해 성적 도의관념에 반하는 것으로 ② 인간성을 왜곡하는 노골적이고 적나라한 성 표현 ③ 오로지 성적 흥미에만 호소하고 문학적, 예술적, 사상적, 과학적 가치를 지니지 않은 것(대법원 2008.3.13, 선고, 2006도3558 판결 등 참조)로 정의된다. 즉 이 세 가지 요건을 모두 충족해야 불법음란물로 금지될 수 있다는 것이다.
 
오픈넷 측은 이 정의를 기반으로 논란이 된 해당 만화가 성적흥미에만 호소하는 것이 아니라 전후 서사를 지니며 일정한 예술적 가치가 있다고 주장했다. 문제가 된 근친상간이나 불륜 등의 소재도 유명 영화들의 모티브로 자주 쓰여 예술적 소재로 볼 수 있다. 마지막으로 오프넷은 성기부분 모자이크 처리에 대해 지적한 것도 그간 ‘성기노출’ 여부를 기준으로 음란물을 결정했던 방통심의위의 기준과도 다르다고 강조했다.
 
오픈넷 측은 “방심위가 ‘건전한 통신윤리의 함양’이라는 추상적인 기준으로 심의를 해왔기 때문에 엄격한 법적 요건들을 숙고함이 없이 안일한 기준들로 자의적 판단을 행하고 있다”며 “방심위는 이제라도 엄격한 법적 기준에 따라 음란 및 불법정보를 심의하고 근본적으로는 방통심의위의 통신심의제도 자체가 개편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런 지적에 방심위 측은 “모자이크 처리를 했다지만 윤곽으로 충분히 모양 유추가 가능하고 방심위 의원 분들은 오픈넷이 제시한 판례를 미리 숙지하고 상정한 상태서 레진코믹스 콘텐츠 음란물 판단을 내린 것”이라며 “의원 분들이 이미 지난 심의서 레진코믹스 내 콘텐츠를 불법 음란물임으로 의견을 모은 상태이기 때문에 큰 변동은 없을 것”이라고 답했다. 다만 문제의 콘텐츠가 음란이란 정의에 부합하지 않는 부분에 대해서는 구체적 답변을 제시 하지 않았다.
 
방심위로부터 의견진술 기회를 받은 레진 측은 오는 16일로 정해졌던 재심의 일을 28일로 연기하고 해당 논란에 대한 자사의 입장을 정리 중이다. 28일 레진코믹스 측이 의견을 진술하면 방송심의위원회 참여 의원들의 판단 하에 결과가 나올 예정이다
 
레진 측은 재심의 결과에 따라 법적 대응도 고려중이다. 만일 방심위가 레진코믹스의 차단이나 콘텐츠 삭제와 같은 부정적 결과를 내놓을 경우 일본 성인 콘텐츠를 다루는 국내 웹툰 업계에도 한바탕 칼바람이 불 가능성이 높다. 심의의 핵심인 음란물을 어떻게 규정하는지에 따라 레진을 비롯한 국내 웹툰 시장의 미래가 달라질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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