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티투데이 김효정 기자] 단말기유통구조개선법(단통법) 덕분에 기자들은 정보통신기술(ICT) 분야 기사 아이템 찾기에 대한 부담이 많이 줄었다. 조금만 파고 들어도 비판할 내용이 넘쳐나고, 시장과 소비자의 불만을 담기만 해도 나쁘지 않은 기사가 완성된다.

기자들에게 정부가 마감 스트레스를 대폭 줄여준 꼴이 됐으니, 직장인 기자로서는 그저 감사할 따름이다. 그러나 산업의 건전한 발전을 위해 글을 쓰는 기자로서는 단통법을 보는 시각이 편하지 않다.

 
정부의 정책은 시장과 국민을 위해 재정되고 시행된다. 그러나 단통법은, 적어도 지금까지는, 그러하지 않아 보인다. 휴대폰 단말기의 소비 주체인 국민들은 체감 구입가격이 훨씬 높아졌다 말한다. 중소상인들의 일터인 유통현장에서는 매출이 줄어 먹고 살기 힘들다고 아우성이다. 마치 불법 좌판에서 판매하는 장사꾼처럼 정부 단속반을 피해 도망다니는 일도 벌어지고 있다.

반면 단통법으로 혜택을 받은 곳은 이동통신사업자와 같은 대기업이다. 단통법 시행으로 타 이통사로 옮기는 번호이동 가입자가 줄어 보조금 지급액이 감소됐다. 가입자 이탈은 낮아지고 마케팅 비용까지 줄어들었으니 '손 안대고 코풀기'다.

삼성전자나 LG전자와 같은 대기업 제조사들도 따지고 보면 큰 손해는 아니다. 이들은 이제 프리미엄 제품 전략에서 벗어나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샤오미 등 중국 업체들이 중저가 제품으로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국내 판매량에 급급하지 말고 더 싸고 좋은 제품으로 국내 소비자들에게 검증을 받고, 세계로 진출할 수 있는 기회가 자의반 타의반 만들어졌다.

이들 대기업은 단통법으로 국내 시장 판매량이 줄어들었다고 호들갑을 떨고 있다. 그러나 호들갑을 떠는 이유는 다른 곳에 있어 보인다. 지난 2012년 삼성증권 보고서에는 삼성전자의 휴대폰 판매량 중 국내 비중은 4.9% 밖에 안 되지만 영업이익 기여도는 25% 이상으로 추정된다. 우리나라 소비자들이 '호갱'이었을 수도 있다.

지금까지 상황으로만 보면 피해자는 소비자와 중소상인이다. 물론 정부가 주장하는 대로 시간이 더 지나 단통법이 시장에 안착하고 선순환 생태계가 형성될 수도 있다. 현 상황이 정말 시행착오일 지도 모른다. 누구나 똑같은 가격으로 단말기를 구매하는 것이 정부의 정책 기조다. 이는 또 어찌보면 친기업적 정책 같아 보이기도 한다.

기업이지만 또 다른 피해자가 있다. 바로 팬택이다. 정부는 단통법의 긍정적 신호로 일부 이통사의 위약3 폐지와 법정관리 중인 팬택의 파격적인 출고가 인하를 앞세우고 있다.

그러나 베가아이언2와 베가 팝업노트 등 최신 스마트폰의 출고가를 대폭 인하한 팬택은 단통법의 혜택을 전혀 못 봤다. 법정관리 중이라는 특수상황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단통법 이후 단말기가 더 팔리지 않자 고육지책 끝에 나온 전략이다.

최근 팬택은 매각을 위한 본입찰에서 유찰됐다. 매각 주관사인 삼정회계법인 관계자는 유찰 이유에 대해 "해외 투자자가 국내 휴대폰 유통구조와 시장을 부담스러워 한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정부는 단통법의 30만원 보조금 상한과 월 7만원 이하 요금제를 쓰는 사용자들에게 보조금을 축소지급하는 원칙을 유지한다는 방침을 고수하고 있다. 이 2가지 내용은 단통법이 '이통사 특혜법'이라고 비난 받는 핵심 내용이다. 소비자는 결국 적응하는 수 밖에 없다.

그리고 법정관리 중인 팬택은 재고 소진 차원에서 출고가를 더 인하하고, 마진 보다는 생존을 위해 더 싼 가격의 제품으로 소비자에게 호소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해 있다.

저작권자 © 디지털투데이 (DigitalToday)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