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례 = 국내 유명 소프트웨어 업체 직원 A씨는 지난 3월 큰 화를 당할 뻔 했다. 자신의 노트북 PC 배터리가 터졌기 때문이다.

“아찔한 순간이었다. 검은 연기가 사무실에 가득 차면서 아수라장을 연출한 순간이었다.” A씨는 평소와 마찬가지로 자신의 노트북PC를 들고 고객사를 찾았다. 그 노트북PC를 이용해 프리젠테이션을 준비하고 있었다. 노트북PC를 작동한 지 얼마 안돼 갑자기 쓰레드팜(노트북 타이핑을 위해 손바닥 올려 놓는 부분)이 뜨거워지면서 마우스 움직임과 프로그램 실행이 느려졌다. 순식간에 고주파 소음과 함께 팜이 뜨거워지면서 ‘퍽’하는 소리와 함께 배터리에 불이 붙어 연소됐다. 배터리 리콜을 진행하고 있던 델의 제품이었다.

A씨는 “지난 해 10월, 노트북 배터리 불량 이슈로 인해 회사에서 점검 사이트와 노트북 배터리 시리얼 넘버를 점검하라는 공지가 있었다. 하지만, 점검결과 내 노트북은 리콜 대상에 해당되지 않아 안심하고 사용 중이었다”고 밝혔다. 세 차례나 자신의 노트북PC를 반복해서 점검했기 때문에 폭발사고와는 무관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델코리아 관계자는 이에 대해 “여러번 반납을 요구했던 배터리였다”면서 “어쨌든 사건이후 제품교환 등 사용자와 문제를 해결했다”고 말했다.

국내서도 노트북PC 배터리가 폭발했다. 그동안 해외에서만 발생하는 일로 간주하고 배터리 리콜문제에 무관심했던 사용자 주의가 각별히 요구된다. 배터리의 폭발 가능성이 0.01%에 못 미친다는 전문가의 의견처럼 배터리가 안정적인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전 세계 시장의 2%~3%밖에 안되는 규모의 국내 시장에서 배터리가 터졌다면 확률만을 따져 안전하다고 말하기는 쉽지 않다.

특히 배터리 제품 교환율 90%에 달하는 델코리아 제품이 터졌다는 점에서 주목할만 하다. 대부분 노트북 PC업체의 배터리 제품 교환율이 30%를 넘지 못한다는 점에서 제2의 사고가 일어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실제 국내 노트북PC 배터리 폭발 사건을 접한 한 관계자는 “외부에 공개되지는 않았지만 최근 2~3년 전부터 지난해 중순까지 국내 한 PC 업체에서도 배터리 폭발 유사사건이 여러 건 있었다”면서 “리튬이온 배터리 폭발문제는 언제든 일어날 수 있는 일이어서 주의가 필요하다”라고 주장했다. 이 관계자는 국내 한 PC 제조업체의 노트북 PC 개발 및 서비스 담당자였다.

국내 배터리 리콜 평균30%도 안돼

국내에서도 주요 제조업체들이 지난해 10월부터 자발적으로 문제가 되고 있는 배터리를 장착한 노트북PC 교환 프로그램을 시행하고 있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보면 제품 교환률이 30%에도 못 미치는 것으로 나타나 최근 일련의 사태를 그냥 넘어갈 수 없는 상황이다.

4월 현재 도시바코리아는 총 4000대의 리콜 대상 제품 중 132건만을 접수, 교환했다. 한국레노버는 전체 6530대 중 2135대를 교환했다. 한국후지쯔는 배터리 교환 대상 중 약 13%만 교환했다. 그나마 직접 판매 방식을 택하고 있는 델코리아만이 90% 이상의 배터리를 교체해 준 것으로 나타났다.

애플코리아 측은 본사 규정을 들며, 교체 대상 수와 완료 대수를 공개하지 않았지만 평균치를 넘기지는 못했을 것으로 관련 업계는 추정하고 있다. 또한 소니코리아는 자발적 리플레이스먼트라고 강조하며, 리콜이 아니라고 주장하고 있다. 특히, 대상 라인업이 국내 소수만 들어와있는 것으로 판단하고 교환을 원하는 고객들만을 대상으로 행사를 진행하고 있다는 것이 그들의 설명이다.

어찌됐던 리콜 대상 제품 중 절반 이상의 노트북 PC가 교체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폭발 사건이 앞으로 더 이상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장담하기는 힘들다.

유통 구조상의 문제 때문에 리콜 쉽지 않아

왜 배터리 교체는 원활하게 이뤄지지 않는 것일까. 가장 큰 이유는 직접 판매가 아니라 총판, 대리점을 통한 간접 판매가 이뤄져 최종 구매자가 누구인지 파악하기가 어렵다는 점이다.

업체 관계자들은 배터리 리콜을 위해 전담반을 구성하고, 제품 등록을 한 소비자들을 대상으로 전화 및 이메일로 연락하기 위해 노력하는 등 최선을 다하고 있지만 결코 쉽지 않다고 설명했다. 국내 유통 구조상의 문제로 제품 등록을 완료한 고객에게만 연락을 할 수 있는 상황이라는 것. 그나마 제품 등록을 완료한 고객에게 연락을 한다고 해도 허위로 연락처를 작성한 고객이 많아 교체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했다.

도시바코리아 관계자는 “소비자들에게 연락한다는 것이 쉬운 일이 결코 아니다. 이메일을 보내도 반송되기 일쑤이며, 집 주소도 분명치 않은 경우가 있다. 전화번호도 존재하지도 않는 번호를 작성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전화번호가 맞다 쳐도 모르는 번호여서 안받는 고객들이 있다”고 설명했다.

델코리아가 리콜 대상 제품 중 90% 이상을 수거할 수 있었던 것도 직접 판매 방식 덕분이다. 최종 구매자가 정확히 누구인지 알고 있기 때문에 직접 연락을 통해 리콜을 할 수 있었다.

노트북PC 제조업체들이 배터리 리콜에 대해 소극적이고 안일하게 대처했다는 지적도 있다. 각종 매스컴과 프로모션을 통해 리콜 프로모션을 진행한 것은 사실이지만 지속적으로 이를 추진했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취재 과정에서 만난 한 사용자는 “대부분의 노트북 업체들이 자사 웹사이트에 리콜 관련 안내를 표시해 놓고는 있지만, 눈에 확연히 띄도록 해 놓지는 않았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웹사이트 하단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작게 텍스트로만 리콜 프로모션에 대한 소개를 해 눈에 띄지 않는다는 것이다. 한국레노버의 경우에는 웹사이트 초기 화면에 배터리 리콜과 관련한 내용은 전혀 찾아볼 수 없다.

특히 리콜을 본격적으로 시행한지 6개월이 지나면서 회사 내부에서 시스템적으로 리콜 프로모션 현황을 관리하지 않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서울시청은 최근 노트북PC 업체들의 리콜 현황을 직접 보고받으려고 했으나 업체들의 협조 부족으로 아직까지도 어느 정도 진행됐는지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서울시청 생활경제과 담당자는 “배터리 리콜이 업체들의 자발적 리콜이지만, 서울시에서 이행이 제대로 되고 있는지를 확인하기 위해 관련 자료를 요청했다”라면서 “하지만 단 한 곳도 관련 자료를 제출한 곳이 없다”고 업체들의 적극적인 협조를 요청했다.

기업 전산관리자의 관심 부재도 한 몫

기업에 판매돼 있는 노트북PC도 위험수위에 있기는 마찬가지다. 일부 정보시스템 담당자들이 제품재고 파악 등에 소홀해 현재 구입한 제품이 리콜 대상인지도 파악하지 않는 경우도 있다.

실제 국내 주요 통신사의 시스템관리를 담당하고 있는 한 사업부의 경우 노트북PC 리콜과 관련한 공문을 받거나 리콜 조치가 이뤄진 적은 없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이 회사 관계자는 “관리부서에서 노트북 리콜에 관해 내용을 전달해 준적이 없었다”면서 “노트북 리콜 사태가 있었던 것조차 모르고 있었다”고 밝혀 문제의 심각성을 더해주고 있다.

노트북PC 리콜을 담당했던 한 PC업체 관계자는 “관리팀 내에서 노트북이 몇 대가 있는지, 실제로 누가 사용하고 있는지를 파악하고 있지 않아 리콜에 어려움을 겪었다”며, “파악이 됐다고 해도 관리팀이 귀찮다는 이유로 자사 직원들이 직접 일일이 수거해 교체한 적이 있다”고 말했다.

정부의 안일한 대처도 문제를 키우고 있다. 미국의 경우, 미국 소비자 제품 안전 위원회(CPSC)가 나서 리콜과 관련한 모든 것을 주도하여 업체들에게 모든 사항을 보고 받고 있다. 하지만 국내의 경우 지난 3월에 한국소비자원에 배터리 리콜과 관련한 담당부서가 생긴 것이 전부다. 그 전까지는 소비자가 다쳤을 경우는 위해분석팀, 제품에 문제가 생겼을 경우에는 상담지원팀에서 관리하여 직접적으로 모든 사항을 총괄하는 팀은 존재하지도 않았다.

사용자의 안전 불감증이 가장 큰 문제

노트북 PC 공급업체들은 리콜 프로모션을 시행했지만 대부분의 소비자가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고 어려움을 토로했다. 이는 소비자들이 노트북PC 배터리 안정성에 대해 큰 문제를 삼지 않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대부분 그동안 배터리 문제가 발생한 노트북PC는 극소수에 불과한데다 해외에서 발생했기 때문에 ‘남의 일’로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레노버 담당자는 “배터리 결함으로 인한 노트북 리콜을 위해 고객에게 알리기 위해 신문 공고, 웹 공지, 서비스센터, 판매처를 통한 공지 등 다양한 방법으로 고객에게 리콜 안내 조치를 했다”면서 “하지만 리콜은 50% 이하만이 접수 되었는데 그 이유는 고객이 교체의 필요성을 절실하게 느끼지 않았기 때문인 것으로 생각된다”고 분석했다.

이는 한국후지쯔의 노트북 배터리 리콜 교환 비율만 봐도 쉽게 알 수 있다. 리콜 대상 제품 중 보급형 제품인 15인치 노트북의 교환이 한 자리 수에 머문 반면, 서브노트북 PC 고객들은 리콜 프로그램에 보다 적극적으로 나서 교환을 받아간 것으로 나타났다. 서브노트북 PC 사용자들은 재구매일 경우가 많고, 보급형 제품 사용자들보다는 파워유저인 경우가 많아 노트북PC 폭발 사고에 좀 더 민감한 모습을 보였던 것으로 해석된다. 일반 사용자들이 노트북PC의 리콜에 별반 관심이 없었다는 것을 간접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물론 배터리 폭발 가능성은 희박하다. 배터리의 폭발 가능성은 0.01% 수준이라는 것이 업계의 정설이다. 게다가 폭발 사건이 일어났어도 아직까지는 다행스럽게 인명 피해가 없었던 것이 사용자들의 안전불감증을 가중시키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노트북PC 배터리 폭발 사건을 접했던 이들의 주장은 이와 다르다. 다행히도 근무 중에 폭발사고를 접해 인명피해가 없었을 뿐, 만약 야간에 집에서 노트북PC를 켜놓고 다른 방에서 잠들었다고 한다면 화재로도 이어질 수도 있는 위험한 상황이라고 말한다.

다소 과장된 얘기일수는 있겠지만 배터리 폭발을 그냥 넘기기에는 석연치 않다. 결과적으로 보면 제조업체의 리콜을 위한 지속적인 노력도 중요하겠지만 무엇보다 사용자의 인식이 크게 바뀌고 리콜 운동에 적극 참여하는 것이 만약의 사태에 대비할 수 있는 최선책이다.

업계 한 관계자는 “확률상으로 배터리 폭발사고가 일어날 가능성이 희박한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혹시 모를 사고를 대비해 지금이라도 배터리 시리얼 넘버를 확인해 리콜 대상인지 아닌지 확인하고 조치를 취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유진상 기자 jins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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